"내 이름은 음.....미하일이다."
왠지 모르지만 '오 자히르'에 나오는 스무 한살 먹은 청년의 이름이 마음에 든다.
내 눈가에 음울한 빛이 돌 때,
일주일의 피로가 심장 앞에서 거만한 발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릴 때,
혹은 내 영혼이 축축한 장맛비를 예고 할 때
나는 산으로 오른다.
가면의 세상
세상은 본질적으로 가면과 가면의 마주침이다.
세상과 마찬가지로 인간들도 서로 각자의 가면속에 갇혀사는 것이다.
가면의 벽을 부수고 나올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스러울 수 있다.
가면을 벗어던진 인간들의 오수가 편해 보인다.
법수원 계곡의 다리
법수원은 사법 연수원이 아니다.
인간들의 세상을 비껴 서 있는 수행처다.
법의 세계에서 삶의 답을 찾으려 수행하는 이에게는
저자의 번다함이 떨침의 대상이지만
범인에게 법수원은 단지 호기심의 대상이다.
아무튼 이곳에서는 정숙하는 것 만으로도 일종의 시주가 될것같다.
도라지
보라색은 정교한 품위를 지닌다.
연
역시 여름하면 연꽃이다.
염천의 하늘 아래 어찌 저리 곱고 부드러운 꽃을 피울까!
고난을 이겨낸 아름다움이기에
더 고아하고 숭고하게 보이는것이 아닐까.
때죽 나무
땅이 우리의 몸이라면 물은 피이다.
거친 바위산과 아침이슬,향기로운 풀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이런 생명과 생명을 이어주는 끈과 같은 것이다.
저 맑은 개울 소리와 한가히 지저귀는 산새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인생에 과연 남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늘 말나리
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 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처럼
한가로이 오래 동안 바라 볼 틈이 없다면.....
가던길 멈춰 서서/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산정에서는 자유를 느낍니다.
오래 참았던 오줌이 한꺼번에 배출되는듯한 자유!
그러나 사실
자유란 어디에서도 있는 것입니다.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기분일지도 모르죠.
진정한 자유란 책임의 부재가 아니라
나에게 최선의 것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능력입니다.
서로를 찾아 떠나는 길
어쩌면 우리는 서로 다른 하나의 조각인지도 모릅니다.
합쳐져 하나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섹칼레...
산은 情이요,의리이며,외침이다.
법수원의 고요한 정경
큰까치 수영
큰까치 수영은 까치 수영의 잎보다 그 끝이 더 뾰족하다.
까치 수영이나 까치 수염이란 이름은 다 같이 통용된다
千聖山에는 없는게 없다.
천성산의 千은 많다는 뜻일테니
물과 바람과 계곡과 바위가
너무도 오밀 조밀해 신들의 성찬 같다.
천성산은
이 땅의 축복이자 부처의 자비이다.
한 번 만지거나 보고나면 결코 잊을 수 없고
우리의 머리 속을 완전히 장악해 광기로 몰아 가는 그 무엇.
오 나의 자히르
산은 나에게 자히르이자
산티아고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례의 길이다.
낮은 산이던 높은 산이던
부드러운 산이던
거친 산이던
첫 발자국을 떼는 그 순간 부터
마지막 발자국까지.
미하일.
내가 보는 것들을 내 똑딱이는 다 보지 못한다.
내 또딱이가 본 많은 세상의 기호들을 나는 또 제대로 읽지 못한다.
내가 본 모든 세상과 내 똑딱이의 시각이 일치 될 때
나는 최대한 시각적 만족감을 느낄터이지만
나는 지금 그 어느것에서도 만족을 못하고 있다.
이것이 지름신을 부르는 또 하나의 병태임을 나는 안다.
내 나이 쉰을 넘어서자 나는 스스로의 변신을 감지했다.
더 이상 오로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애쓰는 기능적 인간이 아니라
햇살이 너무 밝아,
바람이 너무 달콤해,
하늘이 너무 푸르러
새삼 내 가슴 속 존재 의식이 꿈틀됨을 느끼는
벌레가 아닌 진정한 인간으로의 탈바꿈을...
어질고 성실한 이분의 자세야 말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
노각나무
노각나무 꽃 지고 남은 유일한 한송이
내년에는 좀 이르게 천성산에 가 봐야겠다
산꿩의 다리
둥글레
하얀 여로
하얀 여로
고들빼기
양지꽃
바위 채송화
"아름답게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게"
모짜르트 음악의 전문가의 한 사람인 부르너 발터는
모짜르트를 연주할 때 이렇게 주문했다고 한다.
"아름답게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게"
천상에서 모짜르트의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 넘치는듯
하늘 가까이서 그의 음악이 오묘하게 느껴진다.
세레나데 10번 그랑파르티타 4악장 아다지오
살아 가면서 얻는 감정을 너무 오래 끌어서는 안된다.
경기에 이기던 지던 그 기쁨과 안타까움은 24시간이 지나면 깨끗이
잊어버리고 새 출발을해야 한다고 어느 프로 야구 감독이 말했다.
산정은 새로움을 향한 또 하나의 출발점이다.
산 아래에서의 출발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을 가져다 준다.
까뮈는 별들이 드리운 밤을 눈앞에 보며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스런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고 했다.
나는 완만하거나 혹은 가파른 산들을 눈 앞에서 보며
세상은 내가 가진 관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느꼈다.
물소리, 새소리,매미 소리도 마찬가지일것이다.
세상의 모든 눈 앞은 암흑이다.
우리는 그 암흑이 품고 있는 본질,
궁극적으로 자신의 자아와 마주치기 전까지는
결코 소통할 수 없었던
미지의 중심을 향해 소리지른다
비로소 마음과 귀와 눈이 열린다.
원적암
초행길인 이 여자분의 상기된 얼굴에서
무념 무상이 느껴진다.
- 비로소 후기-
죽은자가 산자의 마음 속에 묻히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죽고 만것이다.
산에서 돌아 올 때 참으로 산을 가슴에
담아 돌아올 수 없다면
그 산은 산이 아니라 티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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