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문경 새재 신선봉과 마패봉.

poll™ 2008. 7. 2. 14:32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라는 표현을 한다.

이 경우 그림과 경치 중 어느 편이 더 아름답다는 걸까.

세상은 세치 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크고 복잡하다. 나 역시 그러하다.

위 작품의 제목은 "봄이 오는 들판"이다.

작가(최선호)는 봄을 이렇게 그려낸다.

 

단순하고 솔직함.

나는 그속에서 오히려 자연의 원시성을 발견한다.

  

  

 

 

세상은 바야흐로 표현의 시대다.

사람들은 그들이 현실 생활 속에서 보고자 하는것들을

사진이나 그림 속에서도 보기를 원한다.

동시에

사진 찍기가 쉬워지고 보편화됨에 따라

표현의 욕구도 더 강열해 져 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나는 불행히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산행 중에는 일행을 쫓아다니느라 사진을 찍을 겨를이 없다.

눈 또한 돋보기를 착용한지 이미 오래되고 보니

카메라의 상이나 조작 버턴의 작은 글씨가 제대로 보일 리 만무하다.

 

사진은 순간의 포착이 생명이다

그러나 순간의 감각에만 너무 사로 잡힌다면

자연이 주는 굳건하고 지속적인 형태에 소홀하기 쉽다.

 

 

 

 

 

 

         

 

                                                                  산  행

 오늘도 산행을 떠나는 나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또 산에 가냐"

"네"

"늬 아버지를 닮아 가는구나"

 

그렇다.아버지는 참 산을 좋아하셨다.

가시는 날 아침 아버지는 즐겨찾던 구봉산 하늘 한번 보시고 운명하셨다.

 

나에게 山行은 산과 공간이 이루는 삼차원적 얼개를 향해 가는 길이 아니다.

" 나 이전의 나"를 찾아가는 小路이자 간화선이다.

行深般若波羅蜜 의 이다.

 

 

 

 

 

                                      

 

에구 모르겠다 쉬어가자!

등산에 대한 나의 유일한 철학적 아포리즘.

 

 

           

 

 나는 세잔을 좋아한다.

그의 그림의 특징은 확고하고 견실한 입체,웅대하고 평온한 분위기일것이다.

그의 산들은 빛나고,풍경은 누구도 넘볼 수 없이 명료하고 견실하다.

그러나 피카소를 거쳐 야수파에 이르자 마티스는 색채가 주는 즐거움을 위해

일시에 명암을 희생 시켜 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사조가 되었다.

 

세상은 버림과 채움의 이중주다.

형체가 파괴되고

마침내 들이 버려질 때

無明이 주는 담백함.

흑백의 그 무한한 확장성을 나는 사랑한다.

 

 

         

 

                                                               

- 다시 산으로 돌아가 -

 

대간의 개념을 처음 만드신 분들은 얼마나 위대한가.

나는 지금 백두 대간 위에 당당히 서 있다.

저 도도한 산들의 파도를 보라!

대지의 호흡을 보라!

 

 

     

  

마패봉에서의 나.

금메달 시상대가 부럽지 않다.

 

나에게 금지 된것.

 저 금단의 담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해방감이 있기에  나는 또 산에 오르나 보다.

 

          

 

산은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이미 산의 이데아다.

모름지기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산을 뛰어 넘어 산과 산들이 만드는

이념에 충실한 자 일것이다.

 

산!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것이 서로 뒤엉킨 유전자 처럼 공존하는 곳.

보편적인것,상식을 뛰어넘어  끊임 없이 확대되는 사유로의 비상구.

어두운 밤을 밝히는 빛처럼 내 삶의 오롯한 촛불같은 곳.

그곳이 산이다!!!

 

                

 

산길을 걷고 또 걷는다.

산길은 그 자체가 은유이고 네레이션이다.

그래서 산길을 걷다보면 혼자서 걸어 왔다기 보다 동시에 누군가와 함께 걸었다는 생각이든다.

내 가슴을 톡톡치며 나를 깨우는 소리.

내 내면의 소리. 이 얼마나 은밀한 즐거움인가!

 

 

유영국의 그림처럼 산을 몇개의 삼각형과 몇개의 정열적 색깔로 소유하고 싶다.

산이 저 만치 멀어지고 있다.

옅어져 가는 산의 실루엣을 보고 있노라면 산이 던져주는 비장미가 물씬 묻어난다.

이별은 어디에도 서글프다.

 

한숨을 돌리고 난 여유일까. 세상을 단순하게 살고 싶어졌다.

 

         

 

                                    

 

산에 오르는일이 내 생에 그리 신명나는 일도 아니었을것이고

무엇보다 무거운 발걸음 머뭇세우고

 산정을 향해 마음을 밀어내는 일이

아! 그것이 나에게 금단의 열매가 아니었다면,

늘어진 나무처럼 담을 넘는 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오늘 여기 서지 못하였으리라.

 

 

 

 

 

 

 저 멀리 내가 지나온 할미봉이 보인다.

공포의 오르막이 끝나고 능선을 따라 내딛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흔들리지 않는 삶이 어디있겠는가.

문득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꽃이 생각난다.

내 삶의 끝도 이렇게 달콤한것이었으면.

 

 

 

 마패봉에서 바라본 주흘산 육봉.

산세가 참 아기자기하다.

이산 저산 명산의 경연장이다.

 이봉을 보면 저봉을, 저봉을 보면 또 이봉을 오르고 싶다.

잘 잡은 화투패같다.

 

 다왔다.

 

힘든 만큼 큰 평화가 찾아왔다.

육봉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쉬어본다.

 

물색없이 육조 혜능이 떠오른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고, 거울 또한 받침대가 아니다.

 불성은 늘 청정하거늘 어디에 먼지나 티끌이 붙을 수 있으랴.”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라. 부지런히 털고 닦아, 티끌 일지 않게 하리라.”
이 두 게송의 차이를 나는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

 내게 필요한것은 보리수가 아니라 한잔의 시원한 보리차이다.

 

        

 

                   

 

 문경 세제 관문에서

 

 

                                            

                               

                            

                                                    

  - 마침내 후기 -

 

  내 얼굴 사진 귀퉁이에 수줍게 묻어있던 조그만 풍경하나.

얼마나 정갈하고 아름다운 실루엣인가.

 

한 장의 사진을 놓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사진 속에 보고자하는 대상이 정해지면

나는 그 대상을 위해 모든것을 버린다.

색과 빛 마져도.

 

내 삶 또한 그렇다.

사진 속의 피사체들이 숨 쉬듯 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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