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대숲 앞에서면 살 속을 스며드는 실존의 바람 소리를 느낀다.
몸과 마음이 맑아진다.
그 바람 속에는 세상을 재단하거나 과장하거나 하는 허세가 없다.
맑은 찻물같다.
가을 길은 평화롭다.
단절과 차단의 겨울은 아직 멀리있다.
바람이 불고 날이 저물면
가을은 몸을 낮추어 순리의 시간을 좇아갈 것이다.
세월이란 해가 저물면 밤이되는것 만큼 자명한 일이거늘
그것을 알아가는 일에는 이렇게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산과 함께,산을 데리고 돌아오는것이 산행이다.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것이 산행이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산을 품었다하여도 산은 좀처럼 따라오지 않는다.
아껴 마시는 커피처럼 가을을 한모금 마신다.
산은 단풍의 사태로
가을이 흘러 넘치는듯 한데
나는 조바심에 두손을 모은다.
한 무더기의 잎이 진다.
잎들은 떨어 지면서도
흔들린다.
흔들리지않고 떨어지는 잎은 없다.
흔들리며 살아가는 인간사도 다 자연을 닮은것인가 보다.
가을이 떠나가야 할 시간을 재촉한다.
단풍은 노스텔지어다.
나는 슬픔을 외면한다.
아직 피는 젊고 뜨겁다.
감정을 죽이는것 만큼
다스려 순화시키는 일이 더 힘들다.
선암사는 절집과 벽들이 만들어내는 내밀한 공간 해석이
여간 아기자기 하지 않다.
벽은 신들의 대지를 인간의 공간으로 품어 안는 두팔이다.
벽은 공간을 정의하는 생명이다.
물과 다리의 상징은 같은 것이다.
그것은 곧 소통이다.
그래서 다리의 표정은 그 아래를 지나는 물의 표정을 닮는다.
산간 계류를 지나가는 홍예의 모습이
너무도 아담하고 격조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저 벽과
문이 주는
신비한 색과 구조의 조화가
내 발을 멈추게한다.
의도하지 않는 가운데 얻는 새로움의 발견은
어디에 비할 때 없는 기쁨이다.
원근법 속의 세상은 순하디 순하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에 대한 진지한 해석은 아니다.
자신이 위치한 세상의 입지를 버릴 때
세상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
중앙 아시아의 스탭에 사는 유목민들은
회색의 하늘을 푸르다고 말한다.
그들은 회색빛 모래 구름 뒤의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빛속으로 들어가면
빛은 한발 먼저 달아나 버린다.
그래서
빛 속에서 빛을 느끼기 보다는
한 발 멀리
혹은
반쯤 열린 문이나 담 이쪽에서
다만 빛을 회상하는 마음으로으로 빛을 느껴본다.
선암사 해우소
도지정 문화재로 정해질 만큼 운치있다.
삼청교와 우화각
대단한 공간 배치이다.
선조의 공간 감각을 짐작할 수있는
송광사 대표 건물.
물은 풍문처럼 흘러왔다
풍문처럼 흘러간다.
시간은 낡은 흔적을 물위에 남기지 않지만
물 위의 건물은 이미 역사가 되었다.
그 역사가 물 위로 힘없이 내려앉는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화엄은 인간의 존재를 일시에 열어 젖혀
모든 티끌과 모든 순간속으로 나아가게한다.
화엄의 세상 속에는
크고 작음의 분별이 없고
짧은 순간과 긴 영원의 차이도 없다.
그리고 그 반대도 아니다.
화엄의 세상 속에서
티끌과 우주가 하나되고
찰라와 영원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곳에
부처의 나라를 세운다.
자유의 터전이다.
해우소
어릴때 우리는 화장실을 정랑간이라 불렀다.
화장실이란 이름에는 왠지 분칠 냄새가 난다.
분이 들어오고 화장실이란 단어가 생겼나보다.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곳에 머물거나
그것을 설명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풍경을 설명한다는것은
일종의 허영심이다.
오히려 그것을 들여다 보면
풍경은 침묵을 명하는듯하다.
가을의 빛들은 태어나자마자 곧 부수어진다.
그 잔잔한 빛들은 단풍들의 빛이된다.
딘풍은 빛의 이탈이다.
자유라기 보다는
일종의 나른함이다.
시대정신이 깨어지면 조형이 무너진다는 것은
역사로부터 배운 일반화이다.
파괴와 기만이 끝갈 때 없는 지금
한적한 담아래에서 동시대를 생각한다.
생각은 금방 지친다.
이것이 오늘날의 시대정신인 모양이다.
길들이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시간은 생사가 날고드는 길 위를 흐르면서 낡은 흔적들을 남겨놓는다.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들이 합쳐지면
나도 어느새 가을속 풍경이 된다.
여름에는 가을의 길들을 믿을 수 없다.
가을에는 겨울의 길들을 믿을 수 없다.
나에게 모든 길은 다시 가야할 시작 길이다.
나는 내 몸이 가지 못하는 길을 가지 못한다.
길은 몸 안으로 흘러 자꾸 나를 재촉하지만
지금 나아가고 있는것은 몸이 아니라
길일 뿐이다.
송광사 해우소.
앞으로 두번 다시 지금보다 더 젊은 나를 볼 수는 없을것이다.
내 젊음 이전의 젊음
나 이전의 내 진면목은 무엇일까.......
- 후 기-
희망이 길이다.
희망이란,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되는것이다.
-루신의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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