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습니다.
해무가 피어오르는 바다위로 배가 한척 떠다녔습니다.
배는 어릴 적 만들어 놀던 종이배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종이배의 삼각형 고깔 위에는
자그만한 산이 하나 놓여있었고
그 산은 마치 연꽃봉오리 처럼 아름다왔습니다.
하늘에는 상달 보름을 알리는 만월이
바다에 교교한 달빛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메밀꽃 같이 서늘한 달빛이 선창에 내리자
산은 천개,아니 만개의 얼굴로 모습을 달리했습니다.
꿈속의 나는 너무도 황홀하여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조차 몰랐습니다.
고도 400m 쯤에서 본 나주 평야.
정비가 잘된 논이 쵸코렛처럼 보인다.
황금색 혹은 간간히 섞힌 녹색이 몽드리앙의 그림같이 기하학적이다.
월출산 최고봉인 천황봉은 기껏 해발 806m의 높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의 해수면에서 부터 산행이 시작되는 관계로
806m를 무시하다가는 큰코 다칩니다.
게다가 등로가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듯 부침이 심한 관계로
산세에 반해 심심파적으로 산에 올랐다가는
하산길이 저승길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월출산 산행은 마치 구절 양장을 헤집고 가듯
이리 저리 정신없이 돌아다니는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껏 인생을 그저 무난하게,무리없이, 두드러질것 없는 태도로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도중에 무언가 잘못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일은 없었습니다.
매번 산을 오르며
잘해보자, 그래 잘해보자
이런 능동적 암시를 끝없이 내 자신에게 불어넣었습니다.
결심이 능동적일 경우 결과에 관계없이 후회할 건더기 없어
유쾌한 법이니까요.
그런 기분으로 나는 산을 오릅니다.
산을 오르다보면 경치는 다소 쓸슬하더라도
솔솔한 속맛이 별난 산도 있지만
월출산은 외경부터가 범상치 아니한
일종의 야외 조각물같은 인상을 우선 받게됩니다.
그러나 그 인상이 처음 받은 놀라움에 그치리라 생각한다면
당신의 상상력은 크게 빈곤한 것입니다.
월출산에 가면 상상의 끈을 놓아서는 아니됩니다.
연방 나타나는 신비한 경관들로 인해
두눈에 불꽃같은 축제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천황사지 지나 한 이십분 오르면
갑자기 정체 구간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혹은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기 위해 줄기차게
기다려야합니다.
이 다리를 건너는 자는 통행료를 대신해
모두 기념사진 하나 찍고 갑니다.
아래를 보면 예쁜 단풍이 스스로 몸을 태우고
바위 절벽은 가을 햇살에 붉은 빛을 더해 갑니다.
세월은 한번 가면 그만이라지만
그것은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이고
아팠던 과거 기억들은 생채기처럼 아리게 남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신나고 즐거운 순간을
영원히 잊지 않으려는듯 자꾸 돌아온 길에 눈길을 주게됩니다.
붉은 구름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다리에 즐거움이 흐릅니다.
그 긴 구름다리의 정체를 뚫고 사자봉지나면
하늘을 지나는 통천문이라는 좁은 틈새가 나옵니다.
이 길을 지나는자 누구라도
마태복음 7장 한귀절은 떠올릴터.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작고 그 길이 좁아서...."
이 좁은문이 분명 생명으로 인도 되는 문이기를.
통천문 지나면서 나타나는 시원한 스케일.
저 아래 나주 평야의 논들이 꿈속에 잠긴듯 합니다.
천항봉 날파리 떼 속에서도 맛있게 점심 식사를 하는 미련한 산님들을 뒤로하고
곧 바로 하산길.
이른 아침 출발이어서 그런지 벌써 허기가 집니다.
오르내리는 사람으로 인해 좁은 산정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극심한 정체 끝에 겨우 산정을 내려갑니다.
기암 절벽을 타고 넘치는 가을을 바라 봅니다.
바위 끝에 앉아 무심히 흐름새를 바라 보노라면
가을이 강물처럼 산기슭을 떠내려 가는듯 느껴지기도 하고
문득 내 자신이 저 단풍의 강물에 떠다니고 있다는
착각을 느끼기도 합니다.
가슴에서 다짐한 오기가 눈으로 부터 풀어져 내립니다.
마냥 이 조밀한 바위틈에서 머물고 싶어 지고
걷고 싶은 의욕들이 소리 없이 사라집니다.
사지 육신에 힘이 다 달아납니다.
바람재 가는 길의 조망.
여기 어디쯤 앉아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허기 끝에 만나는 식사여서인지
연신 물을 들이킵니다.
세상 천지에 어디 이런 별천지가 있겠습니까.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소년처럼 기분이 덜뜹니다.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옵니다.
세상이 다 꿈속만 같습니다.
월출산은 산들의 여왕입니다.
바람재 지나며 나는 비로소 자연과 하나됨의 경지를 맛봅니다.
자연에 안길 때의 그 포근한 느낌같은것을 느꼈고
그대로 잦아들어 하나의 돌이나 혹은 하잖은 관목이라도 되어졌으면 하는 느낌.
느낌이라기 보다는 그런 충동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한낱 쓰잘머리 없는 감상이라 하여도 좋았읍니다.
산은 환상처럼 주위를 압도하여
저 산과 하늘의 경계로 부터 부드러운 마사토의 땅바닥까지
천지를 가득메운 모든 기운들을 불러
호흡을 시원하게,핏줄을 부드럽게, 두눈을 초롱거리게 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처량한 길 고섶에 바위가 자라 오르고
그 바위들은 사방으로 활개치며
오기있게 �아 오릅니다.
산을 오르내리며
나는 내 지친 육신에 다짐합니다.
오기가 나의 힘이라고.
오기 없이 오른 산이 있었냐고.
오기로 두타산을 넘고
오기로 비내리는 남산을 넘어가지 않았느냐고.
그때 동료들은 세월이 모든것을 해결해 주리라고 위로했습니다.
앞으로 얼마 만큼의 세월이 더 흘러야 마음껏 산을 타는 자유를 보장받게 될까요?
세월과 함께 내 다리의 힘도 자라
내가 감내 해 낸 그 이후의 여력마져
더 커 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더 멀리, 더 오래 걸을 수 있는 자유를 위하여!!
수컷처럼 묘하게 생긴 바위 틈을 새로 이름단 데니스님이 지난다.
멀리 있는것이 더 아름답다고 합니다.
무지개가 아름답듯이,
밤하늘의 별이 아름답듯이
이별 또한 멀어져 가는것.
산과의 작별이 아쉬워 산님들은 연신 풍경을 줏어 담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다는것은
멀리서 사랑을 바라 볼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을 이 산님들은 아시는지...
나는 뿔달린 보리 곱삶이처럼 한낮의 빛이 싫습니다.
빛들은 심술 사나운 사춘기 소년처럼 거칩니다.
나는 짠지 한자밤 목구멍에 욱여넣듯
얼른 빛 한조각 카메라에 담고는
그 빛도 싫어져 아예 문질러 버리고 맙니다.
내 마음에 뿔 두개가 돋아납니다.
아쉬워 뒤 돌아보는 천황봉.
마지막 편지를 읽기위해 돋보기가 필요하듯
지나간 산그림자 두눈 지릅뜨고 다시 돌아 봅니다.
산은 등 뒤에서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암컷처럼 생긴 바위 앞에
앤디는 묘한 포즈를 잡고있습니다.
대저 숫컷들의 암컷에 대한 관심은
만국 공통입니다.
음기가 구멍 속에서 쏴하고 쏟어져 나올것 같습니다.
음기를 너무 많이 쐬는것은
건강한 성인 남자에게 위험하다고 합니다.
앤디가 불쌍합니다.ㅠㅠ
구정봉
아홉개의 구멍이 뚫려져 있다.
가뭄에 구멍들도 말라버렸다.
구정봉 꼭대기에서 니나님이 올라오라 연신 손짓을 한다.
내 발이 나를 붙들고 놓지를 않는다.
향로봉
소담스런 연꽃처럼,
잘 빚어 만든 향로처럼 정교해 보인다.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한 백제 대향로의
수미산을 그대로 옮겨논 듯하다.
이 봉우리 지나면 본격적인 하산길이다.
오래된 책속에서 툭 떨어지는 엽서처럼
옛 기억 한 조각을 하산길에서 만납니다.
지금보다 훨씬 외로왔을 때,
지금 보다 훨씬 미숙했을 시절의 일들을.
생각의 양이 많아지면 사랑이 된다고 합니다.그 많았던 상념의 시간들은
다 어디가고
지금은 박무보다 엷은 생각들이 푸새처럼 떠돌다 맙니다.
사랑은 다 밀어내고 오기만 넌더리나게 남아있는 삶.
나는 그 넌더리 나는 오기에 기대어
산을 내려가고 있읍니다.
가쁜 숨이 생각을 밀어냅니다.
물마져 떨어지고 나자
늦고 헐한 저녁이 찾아왔습니다.
세상이 모두 나를 외면한듯 나는 정처 없습니다.
나는 있을것 같지 않은 무언가에 약속하고 자신을 걸어봅니다.
내 다짐이 낡고 후지게 느껴집니다.
매번 새롭다면 그것은 약속이 아니라 변명일것입니다.
사랑처럼 나의 약속도 그것이 그것이라는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미왕재 억새밭 지나면 이제 본격적인 하산길.
일행은 달음질치듯 뱀처럼 길게 난 숲길을 어느새 빠져나갔습니다.
어둠이 눅눅하게 내려 앉은 산길은
긴 사유의 길처럼 아득합니다.
하나의 아름다움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하나의 슬픔이 고독과 같이 깊어져야하듯
수고 없이 얻어지는 감동이 어디있겠습니까.
나는 내 고통의 깊이를 감동의 크기라 가늠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두번 다시 이런 고통을 겪어 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고려 풍의 탑이다.
신라의 삼층 석탑과는 엄연히 구분된다.
날씬하지만 안정감과 상승하는 수직미는
신라탑만 못하다.
그래도 조상의 순박한 숨결을 느낄수 있는 귀한 조형물이다.
마침내 도갑사.
단청을 올리지 않은 나무의 속살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산행을 마친 내가 나에게 말합니다.
오늘 산행은 단지 다음 산행의 약속일 뿐이라고.
오장육부를 적시는 시원함이
허세에 가득찼던 나의 숫기를
부드럽게 식혀줍니다.
산행에서는 언제나 나 자신을 보호해
동료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아야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이
나무 끝에 달랑 달린 까치밥처럼
철없이 얼씬거립니다.
생각이 다 덧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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