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적석산

poll™ 2008. 11. 3. 11:54

 

 

행에 앞서 시작부터가 우울하다.

낮은 산을 힘들게 오를 때의 절망감은 더 큰 법이다.

언제 나에게 만만한 산이 있었더냐.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해 본다.

그러나 세상은 위로를 호락 호락 받아 주지 않는다.

자비란 베풀어 주는 자의 것이다.

그것을 요구하는 쪽에서는 구걸이 된다.

오늘따라 他人들에게 걸리적거리는 내 처지가 새삼 싫다.

 

 

 

 

 

 

일행들은 쉽게 산길로 사라집니다.

산길이 방과 후 운동장처럼 비어있습니다.

나는 바람든 무처럼 삭정이가 찬 내 다리를 원망해 봅니다.

문득 가을을 닮아 야위어 가는 붉은 잎새 하나와 마주칩니다.

남겨진다는 것은 언제나 서글픈 일.

 나는 얼른 이런 슬픔에 익숙해져 버립니다.

 

 

 

 

 

 

적석산 소나무길은 어미의 품처럼 편안합니다.

내 아픈 다리를 위로하려는듯

발아래에 코르크와 같은 부드러움이 느껴집니다.

우울한 11월의 멜로디가 정처없이 풀어집니다.

리스트의 "위로 No3"가 듣고 싶습니다.

 

 

킹콩의 두정부처럼 솟아있는 적석산 꼭대기에 사람들이 옹기 종기 모여있습니다.

세상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세상은 다 제 마다의 아름다움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대로 서로 다르기에 아름다운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오르는 산은 다 아름다운 모양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깨닫는다는 일이 쉬운것은 아닙니다.

타인을 바라 본다는것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깨닫는 한 방편임을 우선 깨닫아야합니다.

산에 올라 세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을 가리고 있는 온갖 왜곡의 군더더기를 닦아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를 바라 봅니다.

나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아픕니다. 척은합니다.

내 처지가 그렇다 말입니다.

 

 

 

 

나는 긴 길을 걸어 온 사람처럼 생각을 멈춰 세웁니다.

나는 오늘 왜 아픈 몸을 끌고 산행에 나섰는가?

자유를 위해?

언뜻 허망한 단어 하나가 떠오릅니다.

나는 나에게 되 묻습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진정 '자유'일까?

하고 싶지 않는것으로 부터의 자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자유,

생존이란 올가미에서 내 목줄기를 빼내 당당할 수 있을 자유.

넌덜머리나는 세상의 속음으로 부터 나 자신을 굳건히 지켜나갈 자유!!!

 

 

 

 

 

 

 

 

 

경운기가 지나간다.

그 뒤를 내가 간다.

아무리 걸어도 나는 똥차이다.

내 두다리는 똥차 구루마다.

 

 

 

 

 

 

 

적석산 현수교 위에서 나를 흔들어 봅니다.

파동에 파동이 더해져 움직임이 세집니다.

세상이 흔들리면

내가 가진 문제들이 속속 얼굴을 들어냅니다.

나는 웃습니다.

나는 뻔한 내 속을 바라 보고 웃어 넘깁니다.

흔들릴 때 마다 한잔.

나를 위해 건배.

가식을 버리고 취하고 싶습니다.

 

 

 

 

통천문 사이로 사람이 빠져간다.

 

 

 

 

 

나는 내 산행을 또한 생각해 봅니다.

지난 산행들을 하나 하나 들추어 봅니다.

나를 산정으로 밀어 올렸던 힘들을 생각해 봅니다.

어느 순간 그 힘들이 일시에 무너져 버릴 때

어떻게 해야하는 것이 내 자신을,세상을 위해 맞는 행동일까도 생각해 봅니다.

 

 

 

 나의 일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습니다.

나의 산행이 궁극적으로 나를 다시 세우는 일이긴 했어도

그것은 어짜피 의존의 끈에 매달려 노새처럼 따라 다니는 일.

어느새 산행도 타인의 그림자 속을 헤매고 다니것에 불과한 것이라는걸....

참 허무하고 부질없는 생각입니다.

 

 

 

 이 나이에 이런 생각은 일종의 우울증입니다.

나는 의사이기에 이른 증상의 끝을 잘 압니다.

알기에 기다립니다.

기다리지 아니하면 병이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나는 누가 떠미는 것도 아닌데 산을 올라다녔습니다.

산행이 끝난 뒤에는

괴로운 고통들은 바다에내려 앉는 진눈개비처럼 쉬 사라져 버리고

나는 산으로 가는 수만개의 길을 또 만들었습니다.

 

 

 

 

 

 

 

 

 

지금 나는 산에서 돌아 오는 길을 또 만듭니다.

길은 물소리를 들려 주었고

물소리는 안식을, 안식은 성모 마리아를

성모는 릴케를, 릴케는 詩語의 강을 만듭니다.

그리고 나는 그 강를 지나 돌아 옵니다.

 

 

가을의 강 기슭에는 산에서 보지 못한 가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가을 산을 상상한다는것은

가을 그림자 나를 찾아올 때 까지의 시간을 상상하는것.

괴롭다던지 힘들다던지 입밖에 꺼내지 말고

휴 하고 돌아서서 한숨 한번 내 뱉는 일.

산을 오르는것은 그 상상 속에 나 자신을 맡기는 일. 

불현듯 담배 한대 태우는 일.

 

 

 

 

 

 

-후 기-

 

 세상이 무채색인 겨울의 첫날에 나는 홀로 산으로 가고 싶다.

세상에 새벽이 오기 전 나는 맑은 마음이 되어

어느 깊은 첫 서리 내린 골짝으로.

 

밤새 몰아치던 바람도 기적처럼 잠든 아침이면

나는 고이 간직한 맑은 햇살처럼

배낭 하나 어깨에 힘주어 매고

세상의 처녀지 높은 산을 오르고싶다.

 

그대 기슭에 두 귀 멀게하는 칼 바람이라도 불면

긴 밤  절절이 적어내린 내 편지라 여기어 다오.

 

이세상 어떤 사랑 보다 더 아름다운

그대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라고.

 

 

 

 

리스트/ 위로(Consolation) No.3 in D Flat major
                                          Piano; Daniel Pol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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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ge Bolet,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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