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에서 남해로 이어지는 연육교를 지나다 보면
섬들이 마치 물수제비를 뜨듯
이어져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내해는 호수처럼 고요하다.
그러나 귀를 때리는 해풍의 매운맛은
청양고추처럼 살아 두손으로 자구 귀를 감싸게한다.
창선·삼천포대교는
경상남도 사천시와 남해군을 연결하는 5개의 교량,
즉 삼천포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 단항교을 일컫는 이름이다.
늑도 초양도 모개도를 디딤돌 삼아
아름 다운 다도해를 배경으로 놓여진 멋진 모습은
우리나라 10대 아름다운 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다.
독일 마을.
금산 가는길에 잠시 들렀다.
주민들의 모습은 아직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지
보이지 않고
낯선 방문객과 길 잃은 개 한 마리가
외로운 거리를 채운다.
햇살 가득한 외인촌 까페에 앉아 듣는
멋진 독일 가곡과
독한 향의 커피 한잔이 그립다.
금산 상사바위 앞에
봄이 소리 없이 세월을 영접하고 있다
세상 이치는 이런 것이다.
다만 느끼지 못할 뿐.
무엇을 따라 좇아가기보다는
마음을 열고 기다린다는것은
얼마나 종교적인가.
이성복 시인의 명시 '남해 금산'에서
사랑하는 여인은 돌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따라 돌 속으로 들어간 사내.
그러나 사랑하는 그 여인은
어느 여름 비 많이 오는 날
해와 달을 따라 떠나가 버린다.
아마 정상 어디쯤에 있는 일월암 바위의 전설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남자는 금산 푸른 하늘가에 혼자 남겨졌다.
금산 푸른 바다에 혼자 잠겼다고도 한다.
나는 지금 '그'가 되어 남해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살았던 황금빛 바위들은
여전히 눈부시다.
그를 삼켜버린 남해의 은빛바다 또한 오늘은 얼마나 황홀한가.
아! 사랑을 잃은 이 땅 위의 우리 모두는 다 '그'이고 '그녀'이다.
속절없는 묵은 상사병이 도져 가슴 언저리가 다 아프다.
쌍홍문.
쌍무지개 문이라는 이름에 걸 맞지 않게
뻥 뚫린 두갈래의 굴입구가 해골을 연상케 한다.
여기서 부터 본격적인 금산 산행이 시작된다.
곰솔 나무 숲길 사이로
치밀한 수피를 가진 자귀나무, 노린재 나무, 사람주 나무들이 유난하다.
졸참나무, 상수리 나무,신갈나무의 아삭이는 낙엽들도 발 아래 수북히 밟힌다.
산새들의 노래는 맑고 분주하다.
산을 오르며
두터운 겨울 옷들을 한켜 한켜 벗어버린다.
남해는 역시 따사로은 섬.
지난 봄 설흘산의 땅기운을 오늘 새삼 다시 느낀다.
쌍홍문 내부
자연의 오묘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사실 오묘함보다 상상 그 이상이다.
상상 밖에 재미가 놓여있기에 신기한 것이다.
아이 하나가 컵라면으로 허기를 면하고 있다.
나는 어짜피 도시락도 없이 산에 오른 터라
아주 굶어 볼 작정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식욕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꼭 무엇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
산행을 해도 물에 밥을 말아
고들빼기 하나 걸쳐 먹으면 그걸로 점심은 끝이다.
먹고 싶지도, 그렇다고 배가 부르지도 않는 상태.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최적의 컨디션이 아닐까?
쌍홍문 내부 디테일.
석글 속을 지나면 마치 영주 부석사의 안양루 아래를 지나
무량수전을 만나듯
자연의 조화를 응용해 만든 절묘한 불국의 디테일을 느낄 수 있다.
사바세계와 부처님의 세상이
무거운 바위돌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열려있다.
알듯 모를듯한 부처의 세계
그 어렴풋한 깨닫음이 저 세계 뒤에 있는듯하다.
산장.
산을 오르자 시야가 더 깊어졌다.
午時의 햇살에 더워진 바다는 해무를 일구어
오히려 멀리 있는 섬 하나를 삼켜버렸다.
봄바다 위를 떠도는 쪽배들처럼
손에 잡힐듯 섬들이 가까이 느껴진다.
아득하기에 가까이 두고 싶고
가까이 두고 싶을 만큼 간절하기에 사랑이 아닌가.
회자정리를 노래한 시인의 가슴에
또 한발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다.
77번 국도변에는 계절을 잊은 봄기운이 다 느껴진다.
해송의 푸른 기운이 도처에 왕성하다.
풀무질로 데워 놓은듯한 싱그러운 땅기운이
대지 가득 피어오른다.
이래서 남해섬은 풍요로운가 보다.
상사 바위 너머
멀리 외로운 섬 하나 달처럼 떠있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이 가뭇하다.
작은 섬을 바라보며 바다 속 어딘가에 있을
사랑하는 이를 떠 올리는 여인의 한을
그 想思의 念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바다에서 돌아와 섬이 되어버린 사랑.
그래서 남해의 무인도에는
일종의 노스텔지어가 깃들어있다.
금산 정상의 바위
위태한 바위탑을 배경으로 보이는 보리암
보리암은 유명한 기도처이다.
기복을 위한 종교관을 저 바위탑 만큼 위태하게 여겼을 무렵
나도 아내와 함께 이 곳을 찾은 적이 있었다.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다고 생각될 때
아이를 위한것도,
나 자신을 위한것도 아니었던 기도.
그래도 후회는 없다.
아무것도 아니한것 보다는 필경 더 나았으리라.
또 그리 믿는다.
믿음이 덧없다.
덧없기에 인간의 믿음이 아닌가.
고졸한 삼층 석탑 하나가 산사의 격을
겨우 지켜내고 있다.
나는 돌이요,믿음은 탑과 같은것이니
나에게는 돌처럼 확고한 신념을
탑에는 그 영원한 징표를 새기고저....
나의 믿음은 여전히 아웃포커싱이다.
맑은 눈으로, 죄를 담지 아니한 입으로
부처를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부처의 견고함 속으로 들어가
그 견고함이 되기 전에는...
금산 바위로부터 떠나간 여인이
이번에는 새가되어
그를 기다리는것일까.
상상이 너무 세익스피어적이다.
이 보다 더 고요한 풍경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두 二字를 그리듯 한쌍의 거룻배가
수평선을 나란히 하여 지나가고 있다.
선과 선의 거슬림없는 유니즌
음과 음의 조화
빠르고 느림의 조화
문득 비발디가 떠오른다.
1악장 (Allegro)
비발디
비발디는 화성의 오묘한 조화,
빠르고 느리게 그러다 다시 빨라지는
오늘날 협주곡의 구성을 고안해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조화의 영감' 중 3번 협주곡,그 중에서도 1악장 알레그로는
결코 어려운 곡은 아니지만
경쾌하면서도 우수가 담긴 매우 독특한 분위기의 곡이다.
따지고 보면 1악장은 다분히 바이올린 solo를 위한 곡이지만
현이 주는 유려하고도 풍부한 기품과 서정적 흐름은
지금 눈앞에 펼쳐있는 남해 바다의 영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느낌으로 다가온다.
산과 바다의 조화
바다와 섬의 조화
바다와 햇살의 조화
그리고
나와 그들과의 조화
아! 비발디.
이렇게 오묘하게 얽힌 자연의 화성이
남해 금산의 콘체르토를 이루어낸다.
세상이 조화로운 것이라면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 또한 조화로운것이리라.
하늘이 주관하는 조화
그 조화의 소리를 듣지 못할 뿐
결국은 저 和聲의 바다처럼 조화로운 것이리라.
세상이 위태해 보여도
신의 섭리가 미치지 아니한 곳은 없다.
다 그들의 뜻이요,조화 중의 조화일것이다.
그러니 무엇이 두려우랴.
나는 저 많은 돌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위험해 보일지언정 무너지지 아니할..
거친 돌 속에도 따사로움이 느껴지듯
내 삭막한 마음도 지피면
불씨 하나 살려 낼 온기는 남아있지 않을까.
용서는 사랑을 지탱하는 불씨이다.
청백으로 빛나는 화강암 뒤에
고요하게 피어오르는 사랑이 문득 하나 보인다.
조가비처럼 포근한 능선 너머로 실꾸리 하나 풀려서 나와
걸어도 걸어도 제 자리엔
망각처럼 황량한 길이 외롭다.
내 마음 스스로 떠나보내
문득 닿는 곳이 정처라면
나는 남해안 어디 작은 섬에 머물러도 좋다.
단단한 바위가 마침내 부드러운 샘을 만든다.
둥근 샘속에 물이 고이고, 얼음이 얼고
그리고 마침내 파란 하늘을 담는다.
꿈이란 그런것이다.
꿈은 언제나 목마르다.
그래서 늘 하늘을 향해 열려있다.
하늘의 푸른빛이 담았기에 욕심과는 다른것이다.
금산 꼭대기의 바위들은
환상을 이루며
산봉우리를 감싼다.
멀리서 금산을 바라보면 마치 화관을 쓴 신부와 같다.
눈부신 금빛 면류관.
내 진작 그리움이 주는 긴장감을 알았다면
가슴에 그리움 한자락 품었을 일이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희미하게 남은 옛사랑 하나라도
지켜냈을 일이다.
남해 금산
애잔한 그리움의 산.
멀리서던 가까이서던
무언가 절실하지 않으면
미쳐 돌이 되어버릴것 같은 산.
섬이 되어버릴것 같은 산.
정상 봉수대에서 바라 본 남해 한려수도.
정상에서
行禪에 든듯 7시간을 산중에서 헤매었다.
행선은 마치 달팽이처럼 서서히 걸어가며 삼매에 드는것이니
수행 중의 수행이라 친다.
느리게 걸어가며 아름다운 자연을 음미하는 동안
마음은 거울처럼 맑아졌다.
그러나
내 마음 한구석의 파도는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아! 달을 바라보지 못하는것도 아닌데
알고자 하는것,
느낌을 구하는것마져
어쩌면 망상이겠구나.
사람의 마음이 비록 갈대와 같다고하나
그 모진 역사를 이겨낸것이 다 사람이다.
바위의 힘이 비록 크다하나
작은 돌, 가는 나무 하나 비켜갈 수 없다.
세상은 이렇듯 비할 수 없는것들이 모여
큰 조화를 이루어내며 산다.
-후 기-
이산 저산을 누비고 돌다
'나'는 비로소 '내'가 된다.
아니 문득 달라진 '나'를 만난다.
'내'가 만난 '나'는 진정한 '나' 자신일까?
그것을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나의 산행은 여전히 '돈오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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