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여 말하지 말라.
내가 왔다 갔다고
부디 바라건데
말하지 말라.
봄 바람이 그 새 왔다 갔다고."
봄길을 걸으며
봄빛의 서글픔을 노래해 봅니다.
자굴산 숲을 지나가며
행여 나도 기원해 봅니다
바라건데
말하지 말아다오
내 봄볕 아래 놀다갔음을...
자굴산은 의령의 진산입니다.
경남 서북부 지역과 영남 알프스의 높은 산을 제외한다면
경남의 중앙부에는 별 높은 산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자굴산은 유독 의령 군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봄 옷들이 다 무거워 보입니다.
얼마 걷지 않아 윈드 스토퍼 마져 벗어버립니다.
이렇게 계절은 가만히 있어도 오고 가만히 있어도 가는가 봅니다.
옷을 하나씩 벗어 버리고
계절과 맨살로 만난다는것이
왠지 원시적 해방감을 더해주는것 같아 좋습니다.
그러나
모처럼 산행이어서인지
출발부터 벌써 몸이 무겁습니다.
소나무 숲이 길고 깊습니다.
긴 소나무 숲은 숲의 격조를 결정합니다
잘 조성된 숲일 수록
땅은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
어디를 벗어난다는 느낌보다는
어디로 들어간다는
묘한 느낌.
addiction.
핏속에 약이 돕니다.
나른하고 몽롱한 느낌의 약효가.
무디어진 통증을 둔중한 다리로 지탱하다 보면
비록 봄꽃은 보이지 않아도
발은 벌써 봄이 다가 왔음을 압니다.
산행의 시작
우리는 늘 시작의 선택 앞에 있습니다.
늘 무언가를 시작하여야합니다.
그러나 시작만큼
무엇을 중단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끝이 분명할수록
그 일을 완수하는 요령이나 계획이 분명해 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사도 산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산행중의 거리는 거저 막연하기만합니다.
같은 8km라 해도 내리막과 오르막이 다릅니다.
산행 코스를 고를 때 어떤 내리막을 택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길고 지루한 하산 코스를 고를 수도 있고
급하고 경사진 코스를 고를 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행이란 시작의 선택보다
끝의 선택에 더 많은 고민을 해야하는 운동인지 모르겠습니다.
숲 속으로 난 여러 갈래의 길.
숲에서 길을 잃고 헤메어본 사람은
혼자 남겨진 공포가 얼마나 큰지 알것입니다.
우리는 그 여러 갈래의 길을 잘 선택하여
마침내 최종 목표지에 도달합니다.
나는 어떤 삶을 택한걸까요.
모험과 도전이 가득한 삶?
안일한 삶?
가족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한 삶?
나 자신을 위해 가족을 희생한 삶?
지구가 자전하며 태양 주위를 공전하듯
결국 나는 흔들거리며
삶의 골목을 누비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시작의 선택이 아닌
마침의 선택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음을 압니다.
자굴산 순환도로
저 긴 길을 비틀거리고 걷듯
내 삶의 길도 흔들리며 걷는 길이기에
아! 저 길 끝을
조금이라도
잠시라도 볼 수 있다면
나는 내 가장 소중한것 조차도 버리게 될까요?
죽음을 향한 선택이 삶의 선택보다 단순하다는 것은 사실 인가요?
길 위에서 길을 묻습니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며 서로의 안녕을 묻듯
쉰 언저리의 나이가
그런 시기인 모양입니다.
방향을 가리킨다는 것은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요?
그는 나침반입니다.
"저 멀리 희미하게 지리산이 보입니다.
좌측 앞에 보이는 산은 황매산입니다.
바로 저 옆의 산이 한우산
먹는 소 한우가 아니라
찰寒 비雨 寒雨산입니다."
내 앞을 가로막는 산 이름
이름도 없는 캄캄 절벽을
나는 용케도 넘고 살아왔습니다.
앞으로 넘고 또 넘어야 할 산들이
자굴산 바람덤을 넘듯
마냥 쉬엄 쉬엄 넘어 가는 길이기를...
아득히 멀리 보이는 것이 지리산 천황봉이라 합니다.
고개를 꺼덕이는것만으로
천황봉의 존재를 인정하기에는
지리산이 너무 쉽게 느껴집니다.
지리산은
고개짓으로 알수 있는 산이 아닙니다.
두 발로 올라 마음으로 내려오는 산입니다.
황매산
눈 앞에 황매산이 보입니다.
계절은 우선 색으로 먼저 다가오나 봅니다.
초록의 세상이 당도하기 전에
세상은 부드러운 푸른색을 띄웁니다.
그것은 너무나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색이기에
새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볼 수 없습니다.
세상은 이렇듯 애매한 꿈결같은 색들로 시작하여
곧 녹색의 혁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단지 한줄기 바람의 힘이
세상을 뒤 바꿔 놓을 것입니다.
동네
산 위에서는 동네가 잘 보입니다.
좋은 동네는
보기 좋게 진열된 과일 가게처럼 보여서는 안됩니다.
갓잡은 물고기가 펄덕거리는 생선가게 처럼 어수선 해서도 않됩니다.
물고기들이 제 세상처럼 유유히 헤엄치는
맑은 호수처럼 보여야합니다.
그런 여유가 느껴져야합니다.
내가 물고기가 되어 살고 싶어져야합니다.
중봉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그러니 나는 어쩌란 말인가.
나무는 나무 끼리
돌은 또 돌끼리
다 저들의 봄을 기다리는데
나는 어쩌란 말인가
누구와 더불어 봄을 기다리란 말인가.
봄빛 완연한
내조리 마을
뛰어들면
풍덩 소리가 날것 같아.
시산제
겨울의 그림자 제 아무리 길다 해도
봄기운을 이길까.
손에 손을 쥐고
이렇게 뜨거운 호흡으로
밀려드는 봄 앞에.
금지샘으로 내려가는 급경사.
수직 경사이다.
철 계단 아래 가뭄으로 말라버린 바위 틈 사이에 금지샘이 있다.
할미 너들 지나 대숲.
할미 너들 지나면 대숲이 나온다.
산죽이다.
이 대숲 지나면 절터샘이 있고
지금은 조그만 정자 하나가 산님들을 반긴다.
잠시 앉았다 목 축여 가기 좋은 곳이다.
같은 배추도
겉절이용과 김장용이 따로 있듯이
산행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겉절이란 금방 먹기위한것이기에
바로 담가 먹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하루만 지나도
그 풋풋한 맛은 사라지고 곧 물이 돌아 상해 버립니다.
그러나 김장김치는 추운 겨울 나고 봄이되면
오히려 향이 짙어지고 맛이 깊어집니다.
신선하고 새로운것도 좋지만
오래 두고 묵혀먹는 맛도 무시 못하는것 아닐까요.
무릇 산행이란것도 이런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산행이 사색을 통해 삶의 통찰력을 높이는 일이라면
김장 김치 처럼
추운 겨울을 나는 은근한 끈기가 베어있어야 제 맛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먹어치울 겉절이 처럼
빠르게 산을 넘는 신선하고 속도감 있는
산행을 탓할 수는 없지만
늘 뒤에서 완보로 그들을 따라가는 나로서는
어쩐지 속도가 주는 경박함을 모른 채 할 수 없습니다.
문득 붉은 황토흙을 보며
세태를 생각합니다.
아프리카의 아이티에는
흙으로 쿠키를 만들어 먹는 다고 합니다.
밀가루로 만든것보다 흙으로 만든것이 허기를 덜 느낀다는군요.
쿠키 재료로 쓰이는 흙은
아주 멀리 있는 산에서만 나는 부드러운 진흙이여야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진흙에 마가린과 소금을 넣어 만든 쿠키는
아이들의 좋은 간식거리가 된다는 군요.
한개에 1센트 정도 랍니다.
황토 흙을 보며
그것을 먹어야하는 절실한 그들만의 형편을 모른 채 할 순 없지만
흙이 음식으로 연상될 만큼의 넉넉함도 아울러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런 소중한 느낌들을 소월히 한 채
이미 먼 길 저쪽에 당도해 있을
신세대의 그 불안한 속도감을
나의 느긋함으로 책망해 보는것입니다.
- 후 기-
봄은 상사병이다
花風에 젖은 마음이
털면 털수록
더 힘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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