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악산 기슭에 고양이의 지세를 닮았다하여
괴소로 불리우는 마을.
봄볓에 조는 고양이처럼 고요가 따사롭다.
그 길었던 지난 겨울을 어찌 참았는지
돌담을 먼저 차지한 연한 담쟁이 이파리들이 눈부시다.
至難한 시절.
세상은 온통 먼지 속에 암울하다.
온통 모래빛으로 압화한 풍경들은
실의와 본능으로 뒤섞인 세상으로 밀려들어
우울함의 원형이 되었다.
그래도 봄이다.
봄의 intermezzo이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무엇과 무엇이 싸운들.
봄날은 마침내 나를 살릴것이다.
위대한 삶의 승리는
언제나 눈부신 빛의 편이다.
비록 작은 일부일 지라도.
승리를 위해
무엇을 이기기 위한 산행은 없다.
심지어 자기 자신 마져도.
단지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
산행은 하나의 프래이즈에 지나지 않는다.
말이 만가지의 시를 만들듯
산행을 통해 개개인이 만들어 내는 프래이징은
순전히 걷는 자의 몫인것이다.
오로지 자신만의 曲이요 詩가 된다.
오르지 않는 산이 있으랴
스스로를 재촉해 나아가는 길이 눈물겹다.
나를 일깨워 스스로를 위무하고 다독이는 일.
이것이 산행이다.
산행의 초입부터 힘이 들어서인지 바위길에 오르자
막스 부르흐의 1번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컥 컥 컥하며 된숨이 목구멍을 타고 새어 나온다.
세상이 지독한 슬픔으로 오열하기 시작한다.
하이페츠의 관능처럼 슬픈 손가락이 춤을 춘다.
가만히 생각하니 이것은 오열의 문제가 아니다.
어둠을 방패삼아 훌쩍거리는 슬픔과는 다르다.
절규도 아니다.
그저 꺽꺽거리다 혼절해 버려도 좋을것 같은 실존이요
자기 체험이다.
인간이란 세상에 홀로 놓인 존재임을
생애처음으로 자각한 자에게 보내는 위무와 갈채
엄숙한 祭儀다.
초악산 가는 길에 마침내 암봉을 만난다.
살구색의 바위가 알몸인 채 드러난다
굵은 살로 균형을 이룬 바위들이 희망처럼 솟아 있다.
탄성을 억누르며 직벽을 향해 나아간다.
살아있는 자의 의무.
행진.
초악산은 멀기만 하고
오르막에 옮겨놓는 다리는 오늘 따라 더 아프다.
하늘이 온통 황사인 까닭에
세상은 흙먼지에 갇혀 신음한다.
바위에 올라서자
봉우리 넘어 또 온통 봉우리.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내가 오늘 도달해야 할 산봉우리는 대체 어느것일까.
짐작한 그대로 끝나지 않는 삶의 종결처럼
도무지 내 발걸음의 행처를 분간 할 수가 없다.
모르는 산을 걷는것처럼 오늘 따라 마음이 불편하다.
산에 깊이 들수록
나는 고립무원이 되어간다.
일행들은 다 바삐 떠났다.
나는 빨리 나아가지 못한 이유의 목록들을 떠올리며
아무리 걸어도 마냥 제자리인 트레드 밀 위를 걷는것처럼
느리게 산길을 오른다.
느리게 걷기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재촉을 다리가 받아주지 않는것이다.
운명의 절정을 치닫는 부르흐의 협주곡.
불현듯 이 고통의 음표들을 연주해내는
얼음처럼 냉정한 하이페츠의 연주 모습이 그리워졌다.
숨을 억누른다
심장이 요동친다.
현을 누르는 비브라토 하나 하나에도 고통은 섬세하게 요동쳤다.
황사로인해 빛을 잃은 더러운 청색의 하늘에
엷은 잠자리 날개와도 같은 현기증이 매달렸다.
최악이다.
주저 앉아 버리고 만다.
주저 앉아
진달래 분홍 꽃잎들은 하염없이 지는데
보이지 않는 산새는 울어 봄을 弔辭한다.
청춘은 꿈길에서 나마 돌아오려만
오늘은 모래 바람에 가려
그 꿈마저 고달프다.
이 슬픈 길에서 나를 만난다.
잊을것도
기억할것도 없는 나를.
하필이면 꽃잎 지는 날에.
바위 위에 서서 황사가 내려 앉는 세상을 본다.
세상 앞에 물음을 던지지 마라.
내가 대답할 수 없는 바를
세상도 대답할 수 없다.
나의 침묵은 세상의 침묵.
세상의 침묵 또한 나의 침묵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대답하지 못한 채
말문을 닫아버린 우리.
아는것이 지혜가 아니라
온통 비어있는 지혜를 바라본다.
비어있는 마음을 본다.
동악산이 보인다.
어둑 어둑 산 모퉁이 다 덮고
부황난 낯빛의 하늘.
진달래 슬피 지려는데
항아리만큼 큰 한을 묻고,
울음으로도 씻지 못할 가슴팍을 다 묻고,
컹컹 짐승처럼 울부짖던 한을 다 묻고
너는 오는구나
내 봄이 어떤 봄인데..
누군가 모서리를 접어 둔 책을 우연히 펼쳐 보는것처럼
샤프란 향기와도 같은 고독한 풍경 하나가 떠오른다.
오늘은 풍경이 늘 혼자인듯 낯설다.
책 갈피 속에서 뜻밖의 고독을 만나듯
산 길에서 치유 되지 못 할것 같은 외로움을 만난다.
마지막이 될지 모를 길을 걷는듯 의외로 마음은 편안했다.
속절없이 황사를 탓하긴 했어도
희미하다는것은 고독을 감추기에 좋았다.
아직도 산정에는 채 지워지지 않은 풍경 몇조각쯤 남았을 것이다.
철 사다리를 향해 바쁘게 나아간다.
희망이 사라진 전장의 포연처럼
온 종일 세상은 정말 누른 모래 투성이다.
행운의 신이 눈을 가리듯
먼지가 희망의 눈을 가린다.
길이 아무리 힘들다 하여도
산꾼은 길을 주저하지 않는다.
걷는 이에게는
고난도 희망도 다 덧칠에 불과하니까.
나는 걸을 뿐.
오로지 걸을 뿐.
내 앞에 주어진 길이라면
마치 하루를 살듯
오직 걸을 뿐.
맑은 산을 볼 수 없다는것은
산을 오르는 자의 유감이다.
내가 겨울 산을 좋아하는것은 티없이 맑은 능선을 볼 수 있다는것이다
먼지 바람이 풍경을 소묘처럼 만들어 버렸다.
입체감이 사라진 평면에 풍경이 선묘처럼 꾸물거린다.
세상을 털어내기 어려워도 나를 털어버리기는 쉬울것이다.
맑은 물이 그립다.
맑은 물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를 꿈꾼다.
도림사 월봉 계곡
황사에 지친 몸을 식힌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신을 벗고 옥계 청류에 세족을 시작한다.
뼈에 이르는 청량감이 일시에 등골을 타고 오른다.
계곡물을 다 마셔 버린다하여도 해소될것 같지 않던 갈증이
뇌수를 흔들며 사라진다.
맑은 물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씻어 낸다
아! 내가 물고기라면...
물고기가 될 수는 있으나,
물고기의 꿈을 꿀 수는 있으나
다시 뭍에 오를 방법을 나는 모른다.
꿈의 끝은 늘 이렇게
이룰 수 없는 현실이다.
연리지
사랑이 구태여 뜨거울 필요가 있겠나.
더구나 서로 얽혀 한 몸처럼 살아갈 필요가 있겠나.
나는 구속된 사랑을 원치않은 까닭에
타래처럼 엮인 연리지式 사랑은 부담스럽다.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놓아 주는것.
소유의 독으로 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사랑은 서로를 살게, 살아 숨쉬게 하는 것이다.
도림사 범종루의 위용
도림사 절집에는 단청 불사가 한창인데
일주문에 붙었어야할 현판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흰 뺑끼에 코발트 색으로 뒤발한듯한
道林寺 편액은 어찌 보면 이발소 간판처럼 보인다
의재 허백련!!
아니 내가 모르는 無名者의 글씨라 해도
공사판의 이 씁쓸한 대접은
도대체 불쾌하다.
단청이 죄 벗겨진 범종각의 기둥이 토담에 어울려
황금빛으로 지는 저녁 햇살을 품고 있다.
도림사 뒤란에서 붉게 핀 모란을 보았다.
아직 지지도 않은 꽃잎을 두고
다시 꽃필 그날을 기약하는...
모란의 피고 짐은 이미 詩語가 된지 오래.
모란이 향기를 지녔던 지니지 않던
그것은 사소한 일일것이나
모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벨벳과도 같은 풍성한 꽃잎을 가졌다.
고귀한 황금빛 꽃술도 가졌다.
그러나 이런 호화로운 꽃잎도
정말 지고나면 그뿐.
꽃을 향한 찬미마저도 슬프고 비장한 조사가 되고만다.
찬란한 슬픔의 표상 멀리
늦은 봄 한켠에서 녹엽 한뼘 펼쳐보이는
그저 그런 이파리라 할지라도 뜨거운 생명의 情이 신선하다.
- 후 기-
세상의 모든 풀잎들이 상처를 가지듯이
세상의 길 또한 상처를 가진다.
산길을 걸으며
떨어지는 꽃잎들을 본다.
세상은 어디라도 늘 한 생애의 변방이다.
길을 걷는다.
걷고 또 걷는다.
걸음을 통해 길이 나를 위로하듯,
내 상처를 치유하듯
내 발걸음 또한 길을 순치하리라.
세상의 모든 상처들은
다 그리움이다.
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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