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추운 겨울에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데
산을 오르는 나의 지조는 무엇인가?
형편없이 쇠약해진 몸을 애써 감춘 채
마치 아무일 없다는듯 걷것이
산을 사랑하는 자의 의무일까.
그러나 이제 그 아무일 없다는 시치미 조차
내겐 벅차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봉화산 백두 대간길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길이다.
지리산을 그쳐나온 이 산 마루금 따라가면 덕유산 빼재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이 길따라 걷는다면
아! 이길 따라 끝없이 걷는다면
나는 정말 변방을 떠도는 나그네인들 어떨까.
붉은 카펫과도 같은 고운 솔밭 길을 오른다.
부드러운 솔길은 산꾼의 호사다.
산 들머리 복성이재로 부터 봉화산 꼭대기까지의 고도 편차는약 400m.
완만한 오름길이다.
그 길의 중심에 철쭉꽃의 대군락이 있다.
봉화산 철쭉은 키가 크다.
키가 큰 나에게는 철쭉꽃 길이 걷기에 참 거추장스럽다.
넉넉한 황토흙을 바탕으로 자라나
밀식의 양상 또한 치밀하다 못해 단단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건강한 철쭉숲을 애쓰며 지나다
문득 고개들어 하늘을 보니
성글게 핀 몇 송이 꽃이
수줍은듯 피어있다.
시절은 이르고
오월 햇살은 청양고추처럼 맵다.
치재 지나 꼬부랑재 가는길이
쫄깃쫄깃 진양조의 육자배기처럼 늘어져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아픈 몸을 이끌고 타박 타박 걷는다.
아~~~흐 하고
목구멍에서 가락이 저절로 새어나온다.
"정은 청산이요 이 무정은 녹수로구나
녹수는 흐르건만 청산이야 변할쏘냐
아마도 녹수가 청산은 못이리 휘휘 감도라 들거라 헤
이당장 살이니 난다 하여도 나는 못놀것나 헤"
두툼한 무명 옷고름같이 술술 풀어지는 황톳길.
실타래처럼 뒤엉킨 내 생애가
환청처럼 이는 님의 구성진 목소리에 어울려
그리움이 봄 겉절이 처럼 절절이 묻어나는 길이다.
壽如山 富如海
산처럼 건강하고 바다처럼 넉넉하다란 말인데
봉화산 가는 철쭉길이
건강하기도 하려니와 넉넉하기 이를 데 없다.
한 뼘 빈틈없이 꽉 찬 산록이다.
누가 알랴
이 밀생의 숲에서도
생애가 명멸한다는것을....
지리산을 우측으로 끼고 걷다.
문득 산 아래 구상리 마을을 바라 본다.
모내기를 위해 모아 둔 산답의 물이
거울처럼 반짝인다.
일대 저수지 너머로도
땅심좋은 넉넉한 벌이 이어진다.
박무에 갇힌 시골 풍경이 걸러내지 않은 막걸리처럼
텁텁하다.
걷기가 싫어진다.
몸을 핑계로 자꾸 걸음을 멈춘다.
마음과 몸이 서로를 답답하게 만든다.
꽃길이었으면 좋을 길을
미처 피지 않은 꽃들을 원망하며 걷는다.
어짜피 내주에 다시 걸어야 할 길이기에
심적인 부담은 적다
오월 산행은 꽃구경하는 산행이다.
일종의 보너스인 샘이다.
조팝나무
장미과 식물답게 향이 묘하다.
heart note의 플로랄 향이
바로크풍의 웨딩드레스를 연상케하는
눈부신 화이트에 어울려
베르사이유를 걷는듯 행복하다.
보들레르 이전의 시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詩들을 이미 다 말해버렸으므로
조팝나무의 행복 아래에서
나의 찬미는 궁색하다.
활짝 핀 조팝나무 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그대에게 바칩니다.
지금 바로 꺽지 않으면
내일이면 벌써
땅에 떨어질 꽃을.
롱사드라면 이렇게 읊었을까.
성큼 다가온 비봉산 정상
포근한 백두대간 길.
마음을 수련한다는것은
마음을 청정하게 비우는 일이다.
마음을 비운다는것은
집착의 군더더기를 지워내는 것이다.
산길을 걸으며
나는 마음을 비워내고 또 비워낸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비워서 얻는 궁극적 목표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의 산행은 늘 미완성이었다.
단 한번도 마음을 비워내지 못했으므로.
산길을 걷다보면
마주치는 풍경처럼 수많은 상념들이 꽃잎처럼 마음에 날아든다.
나는 비를 들고 마당을 쓸듯
마음을 쓸고 또 쓴다.
쓸고 또 쓸다보니
마음을 비운다는것이
마음의 마당을 쓸어내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꽃을 만나면 꽃을 쓸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쓸어낸다.
이렇게 마당을 쓸듯
마음에 드나드는 상념들을 모조리 쓸어가다보면
마침내
내 마음의 그늘을 보게되고
내 마음의 상처를 보듬게도 된다.
산길을 걷는다는것은
더 이상 마음을 비우는 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음은 원래 빈것이라, 비운다고 비워지는것이 아니고
채울래야 채울 수있는것도 아니다.
나는 마당 깊은 집의 대청에 앉아
마음으로 날아드는 온갖 상념의 조각들을 바라보다
그저 하나씩 그것들을 쓸어내는 일로 마음 공부를 대신한다.
쓸려나가는 내 마음을 본다.
정갈한 빗살 무늬를 남기며 치워진 내 마음을 또 본다.
마음이 가벼워 진다.
공기와 마음이 하나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금을 바라보며
마침내
그 산금 위에 내 생명선이 이어져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산길이 끝없이 이어지듯
원래의 내 생명 또한 명멸없이 이어지는것입니다.
삶의 형태가 바뀐다고 하여
생명이 지니는 원초적인 영속성이 중단되는 법은 없습니다.
나는 이 영속성이 가지는 신앙의 힘 위에 놓여있습니다.
생명을 지닌자라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그리하여
길은 마침내 숙명처럼 돌아와 내 손바닥 위에 고요히 눕습니다.
가지 않아도 될 길이란 없습니다.
먼 길은 늘 약간의 슬픔이 깃든 마음의 행로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엷은 슬픔이 걸음에대한 열망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오직 고요와 적멸의 세상일것 같은 길 끝.
그곳에 무엇이 존재하기에 나를 이 처럼 덜뜨게 만드는것일까요.
슬픔을 꿰뚫어
생명을 발견해 내겠습니다.
이것이 내가 길을 걷는 이유입니다.
사과나무
조팝나무 향기가 가득한 시골 풍경이 한없이 좋다.
너그롭다.
사과나무의 수줍은 빛도 좋다
순결하다.
이것이 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풍경이 아니다.
그냥 놓여진 풍경이기에 경이로운것이다.
돌담,길모퉁이,논두렁 하물며 발아래까지 어디 한곳 소월함이 없이
꽃들은 정성을 다해 피어있다.
물색없이 내뱉는 말들이 초라하고
아픔을 핑계로
산길을 외면한 자신이 초라하다.
풍경으로서 내 자신의 존재마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감자밭
어느 길목에 금낭화 외롭게 피고
옥매화 붉은 꽃은 지레 질린다.
황소는 그늘에서 게으른 되새김질을 하고
어버이 날을 맞아
부모를 찾은 자식들의 차들로 마당은 가득하다
어미가 자식을 생각하고
자식이 아비를 생각하듯
하늘이 인간을 염두해 만든 오월.
바람은 산들하고
햇살은 쨍쨍하다.
- 후 기-
컨디션이 엉망이다.
어떻게 산행을 마쳤는지도 모르겠다
무얼 쓸 자신도 없다.
생각 몇자락 겨우 간직했다가 다음번에 요긴하게 쓰야겠다.
어짜피 다음주에 다시 오를 산이 아닌가.
몸이 생각을 치즈처럼 갉아먹었다.
먹고 버린 생선 뼈가 되어버린듯한 비참한 하루다.
마음이 떨어진 속옷처럼
빨래줄 위에서 힘없이 춤춘다.
무슨 마음으로 오월을 노래할까.
오늘의 오월은 무효다.
다시 봉하산을 오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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