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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던 길옆 주막 그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오는 막걸리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엄있는 송덕비 저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세월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비낀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느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 무렵에.
-김용호의 주막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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梨花嶺의 유래를 알아보러 돌아다니다가 뜻밖에
대동여지도에는 이화령이 伊火峴으로 표기되어있음을 알았다.
배꽃 눈부시게 피어나 이화령이라는 생각은
애초 한낱 환상이었다.
梨花嶺의 이름 석자에 괜스레
술기운이 느껴졌다.
이화령 고개 위에 떨어진 비가
서쪽으로 흐르면 남한강 물이되고
동쪽으로 흐르면 낙동강 물이된다는
백두대간의 중심.
산님들 다져놓은 무딘 대간길을 따라
이빨 나간 막사발에 입술을 더하듯
내 발자국 하나를 더해 대간길로 나아간다.
- 펌 -
주위에 伊火川,이화남령이라는 지명도 보이네요.
새재(鳥嶺)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 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된 고개의 ‘새(新)재’ 등의 뜻이다.
새재의 새는 우리말 어원에 풀이라는 뜻이있다는군요.억새,속새의 예에서 보듯이.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이화령은 희미하다 아득하다의 고어인 입다의 고형태인 이블다(이울다)에서 이블을 취하여
아득한 고개란 뜻으로 (伊火재) 이블재->이부릿재->이우릿재로 변한것이 아닐까 하는 說도 있네요.
梨花령은 일제 시대에 붙인 이름이랍니다.
어쩐지.
나는 대간길을 사랑한다.
대간길을 사랑한다고하여
육신을 던져가며 밤잠을 설쳐 이루는
피곤한 종주가 아니라
깊은 사유와 느낌을 주는 길
이름 그대로 길이기에
대간길이 사랑스럽다.
대간길이 주는 첫인상은
국토의 혈관으로서의 서정적 아름다움이다.
이 땅과 이 땅에 뿌리 박고 살아가는 백성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듯
내 몸에는 이 나라 백성으로서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한국적 서정이 오롯이 담겨있다.
비록 쉰이 넘어 발견한 애국적 감성이지만
나와
어미와 같은 대지와
대지로 흘러드는 길이 만드는
감성의 총화를
나는 대간길 위에서보다 더 뜨겁게 느껴 본적은 없다.
길은 노스텔지어요
감성으로의 안내자다.
조령샘
조령산 조령샘
물맛이 약간 쌉쓰럼하다.
찬 공기를 막기 위해 극성스레 얼굴을 가린탓인지
물맛에 더없는 그윽함이 느껴진다.
산행 중에 만나는 샘물이야말로 산악인의 축복이지만
플라스틱 물동이만은
대간길 위의 소품치고는 격조가 떨어져보인다.
구름없는 청명한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싸락눈이 놀라 눈을 뜬 산짐승처럼
분분이 휘날린다.
지난밤 나뭇가지에 모아 둔 눈이다.
반짝이는 눈들의 산광에의해
숲은 샹들리에 조명을 켠듯 화사하다.
아직 찹기만한 숲 바람을 이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산님들은 산을 오른다.
조령산을 오르는 길은 육산으로
비교적 걷기 편하다.
오늘처럼 적당히 눈까지 쌓인 날이면
들뜬 아이의 마음이되어
산행이 더욱 가볍다.
그런 한편으로
마치 비수를 등 뒤에 숨기고 복수를 준비하는 암살자를 대하듯
함부로 긴장을 늦출수 없다.
조령산 정상 뒤로는 60개의 로프가
교수대처럼 걸쳐진 배타적 암릉 구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긴장과 호기심이 절묘하게 뒤섞인 오늘의 산행,
어린 용기가 솟구친다.
젊은 나이에 세버린 머리숱처럼
하얀 눈을 소복이 이고있는 소나무 숲길을 지난다.
의외로 황홀한 분위기에 휩싸여
산을 오르는 산님들의 마음이 자못 경쾌하다.
더러는 조령산 유명세에 취해 산을 오르는 사람,
더러는 백두대간 서슬푸른 능선길이 그리워 산을 오르는 사람.
다 모두 이 백색이 덧칠된
경건한 서설의 기도회에 초대된 자들이다.
약간의 멀미가 남아있었지만
걷기에 최상의 컨디션이다.
좋은 체력으로 시험에 임하듯
멋진 산을 맞이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다는것 자체가
좋은 산에대한 예의가 아닐까.
브라보!!!
폐타이어 몇개 밟고 올라가면
벌써 조령산 정상이다.
조령산
嶺과 山의 지리학적 차이가 엄연함에도
조령산 이름에는 어찌해
령과 산이 같이 등장할까?
전국 산이름에 령과 산을 동시에 붙인 산이름이 또 있는지가
갑자기 궁금하다.
새의 산, 새의 고개란 말인데
나는 새도 쉬어갈 만큼 높은 고개와 산봉우리가 많아
이렇게 이름지어진걸까,
아니면 문경 새재 그 이름이 너무 걸출해
그냥 그대로 이름 위에 뫼山字 하나 더 붙인것일까?
주흘산쪽 조망
조령산 정상에서의 풍경
나는 얼마나 위태로운가!
멀리 금수산을 위시한 월악의 제산들과
신선봉 마패봉을 잇는 아스라한 능선.
육봉의 경쾌한 실루엣.
숨을 멋게하는 신선암봉의 위세.
질풍 처럼 밀려오는
산들의 해일에
아, 나는 얼마나 위태로운가!
좌측 끝에 월악산이 아스라이 보이고
부봉이 삐쭉 얼굴을 내민사이로 6개 봉우리중 세개가 나란히 보인다.
우측은 주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중앙 맨 뒤가 월악산
남자로 태어난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적어도 지금 까지는.
지금 이 순간
비록 내 의지가 개입된 선택은 아니었지만
저 산들을 바라보는
장쾌한 남성적 감성을 부여받은
이 뿌듯함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듯
남자로서의 느낌이 여자와는 분명 다는것을
나는 조령산 정상에 서서
저 사무치게 밀려오는
산맥의 파고를 보고서야
비로소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아! 장쾌함이여,
용맹한 이 땅의 기상이여!!
급한 내리막
북사면에는 눈이 제법 쌓여
아이젠을 착용한 채 조심스레 내려간다
내려서는 길이 아찔할정도로 깊다.
구들처럼 깨어진 돌밭을 지나
구절양장을 후비며 지나가듯
오르내리고 돌아섬이 끝이없다.
수없이 이어지는 로프와 로프에 의존해
한발 한걸음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그러다 풍경을 만나면
긴 탄식처럼 흥분을 내려놓는다.
작은 설악이라하여도
손색없는 풍경이다.
칼날처럼 선예한 능선에 겨우 한발 한발을 의지하여
능선을 지난다.
이쪽을 보아도 저쪽을 보아도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천하의 비경에 걸쳐진 무지개 홍교처럼
능선을 지나는 마음이 자못 아름답고 진지하다.
주흘산 쪽 조망
감동이 강물처럼 밀려와서는
때로는 코다이의 현악처럼
장중한 보잉을 남긴채 한동안 머물렀다.
세상이 온통 현의 강물처럼 느껴졌다.
산들의 유려한 곡선도,바람도
코다를 향한 격정처럼 다가왔다.
혈관과 무신경한 신경들의 마지막 말초까지도
다 달뜨 곤두선다.
아! 기분좋은 긴장감이
온몸을 오롯이 감싼다.
절대 쾌락이란 이런것인지도 모르겠다.
몸과 마음이 자정되며
정결해지는 과정
이 모든 흐름을 음악적 율동으로 몸소 느낀다.
본격적인 암릉 등반을 위해 아이젠을 벗는 구름님
폼生폼死의 산대장
조령산 등산에 앞서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저으며 우려를 표시했다.
그 중심에 형님이 있었다.
형님은 최대한 짐을 줄여 몸을 가볍게 하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나는 나의 분신같은 카메라도 두고
신발도 경등산화로 바꾸었다.
배낭도 초경량 하이킹용으로 맸다.
그렇게 짐을 줄인덕분이어서인지
시종 일관 대열의 앞쪽에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산행에 있어서의 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는것을 절감했다.
몸이 가벼워 지자 산행이 즐겁고 경쾌했다.
너무 즐거워 말이 많아져버린 탓인지
감성은 멀리가고 쾌락만 남은것 같은 그런 산행이었다.
아이젠을 신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말 애매한 구간이었다.
바위 위의 살얼음은 숨어있는 흉기나 마찬가지다.
이럴 때 소복이 쌓인 소나무 잎들이 여간 도움을 주지않는다.
결국 결빙된 곳을 피해 아이젠을 차지 않은 채 통과했다.
다음에 부봉을 함께 오르자 다짐하며
주흘산 능선
위험을 무릅썬 산님의 얼굴에
불안한 마음 대신 환한 즐거움이 넘쳐난다
로프, 로프의 연속이다
다행히 로프줄이 얼지않아 손이 미끌어지지는 않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를 받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정말 좋은 산행은 천운이 있어야 하는거다.
로프는 나무에 걸린 연줄처럼
한뼘 생각없이 걸려있고
우리는 생사를 걸고 그 줄을 타고 오른다.
시간은 느린 여유를 끌어안고
환한 하오의 햇살을 머금은 채
산을 오른 사람들에 솔깃 귀를 연다.
치솟아오르는 모든것이
마음 바닥에 넙치처럼 드러누운 야성을 깨운다.
걷는다는것이 한때는 희망이었던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산을 오르는것이 아니라
산위에 우뚝선 희망을 오르는 기분,
산들의 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햇살 내려 앉는 조령산
아찔한 암벽 위의 신선암봉 정상비
부봉군에서 주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
산을 오르며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떠나보냈을까
아니면
그 상처를 내것으로 알고 치유했을까.
어렵고 어려운 수술을 끝마친것처럼
산을 오르내리는 뒷맛이 개운하였기에
내 우울과 좌절의 환부가
도려 나가는 후련함을 거듭 느꼈다.
세상에 주눅던 내 초라한 시절의 시간들이
주흘산 산그림자처럼
fade put 된다.
먼 변방에서 성공을 바라보던 초조했던 내 삶도
신경병적인 불안에 떨었던 내 삶도
다 멀어져 갔다.
먼산을 조망한다는것은
먼 발치에서 작아진 원경들을 바라보는것.
아방가르드의 삶이다.
장악당한 삶이 아니라
통제하는 삶인것이다.
사랑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마치 충수돌기처럼 흔적기관으로 남아있기에
산행 중 사랑의 말들이 다 경박하다.
내 사랑은 너무 꼬였거나 혹은
너무 계량적이었는지 모른다.
내 스스로 만든 작은 틀을 통해 위안을 얻어 온 연유일까
나는 때로 자유로운 사랑이 그립다.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법을 알고 있기에
검은천으로 뱃살을 감추듯
내 사랑을 숨기는 법 또한 안다.
그러기에 사랑이 더 그립다
사랑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자유로써의 사랑
해방...
사랑의 신은 아직 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사랑이 무시된 세상에서
더 이상 신이 필요치 않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의 광장으로 들어설 열쇠는
아직 내 손아귀에 들어있을 확률이 크다.
다만 용기가 없을 뿐.
모처럼 산중에 내린 동짓달 햇살이
나를 들뜨게 한 모양이다.
흰 눈빛을 머금은 햇살이
푸른 바다에 비친 햇살만큼 눈부시다.
조령산 뒤안길
청암사
마당바위 폭포
절골
신풍리에서 본 조령산
주흘산
- 후 기-
산을 내려오며
세상을 다 용서했다.
미움의 벽을 허물고
죄인의 죄를 사하듯
오랜 괴로움의 옷을 벗어놓고 보니
마음이 다 편한듯 했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이 나에게 용서를 구한 바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았다
형량을 높여가며 사람을 미워하고
혼자 증오한 세월들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세상은 내 용서에 냉담했다.
죄를 준 마음만큼
죄를 거둔 마음 또한
똑같이 한낱 허무에 불과 했다.
마음을 만들고 부수는것이
色과空의 맞물림이란것을,
한치 물러섬없이
마음은 늘 마음일 뿐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저녁낱이 으늑한
주흘산 그림자를 바라보고서야
비로소 깨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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