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속리산 묘봉 12.05.20 158번째

poll™ 2012. 5. 21. 12:59

 

 

 

 

 

험한산이란 어떤 산인가.

결국 부침이 많은 산을 이르는 말일것이다.

 

숫자가 산이름의 앞에 붙은 산들은 대게 부침이 많다.

그래서 나는 숫자이름이 붙은 산에는 약간의 '포비아'가 있다.

 

"묘봉"

속리산의 속살이요 잘 품은 꽃게의 알집과도 같은 구간을

겁없이 따라 나섰다.

 

운이 좋았었을 수도 나빴을 수도 있지만

나는 운이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낙천주의자니까.

 

충북 알프스 제 6구간

종주의 대미를 장식하는 구간이다.

 

 

 

- 약 62km이다.  들머리와 날머리 중복되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 45km 내외 -

문장대-관음봉-북가치 충북 알프스 제5 구간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문장대-천왕봉 구간은 워낙 보편화된 구간이라 나도 걸어 본 적이 있는데

도상으로 보니 불과 얼마 안되는 거리라 실망감이 크다.

 

충북 알프스 종주 산행을 진작 알았더라면 

구병산 제1구간에서 부터 제대로 따라 나섰을 것인데 하는 섣부른 욕심이 생긴다.

 

 

 

 

 

 

 

산이름을 모른 채 산을 바라본다는것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친구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것 만큼이나

민망한 일이다.

 

미타사에서 북가치로 향하는 도중에 잠간 터진 산 풍경을 바라보며

마치 입에 과일을 가득 베어물고 얼른 삼키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낀다.

 

세상 모든 산이름을 내가 알 수는 없지만

멋지고 유려한 산의 자태를 바라보며

막 옹아리를 배우는 아가처럼

산이 있으되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답답함을 안고 산길을 또 넘어선다.

 

 

 

 

멀리 속리산 문장대가 보인다.

 

883봉과 관음봉 그 사이 안부가 속사치 (자신없음)

 

 

 

 

770봉 오르는 도중의 풍경

 

 

 

속리산- 문장대 라는 고착화된 관념에 사로잡혀

속리산을 유영국의 그림처럼 평면적 이미지로 담아왔던 지난날의 내 잘못이 크다.

 

문장대에서 천왕봉을 향해 걸으며

하나 둘 떨어져나가는 인파와 반비례하여

점점 커져가는 속리산의 스케일에 새삼 놀란적이 있다.

속리산의 등줄을 경험한  셈이었다.

 

오늘 오르게될 묘봉 구간,

물론 묘봉의 위치와 잘못 붙여진 명칭때문에 세간에는

많은 논란이 일고있으나

속리산 서북능은 마치 속리산의 속살을 더듬는것처럼

길은 오밀조밀하고  봉우리는 아기자기했다.

 

 

 

 

초록에 한하여 나에게 청탁이 없다.

가장 연한것에서 가장 짙은것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한번은 일독하였을

이양하의 신록예찬의 일구이다.

 

대학 캠퍼스에 앉아 날로 푸르러가는 신록을 바라보며

청춘에 빗대어 신록을 예찬했을 그 어른도

이미 세상을 버리신지 오래이지만

나는 그가 찬탄해 마지않았던 신록의 숲을 걸으며

도무지 초록의 城에 갇힌 답답함에

아무리 소박하고 겸허한 빛이라 할지라도

온통 초록 뿐인 세상을 아무런 저항없이 걸어야한다는것은

일종의 무료함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가지 색들이 퇴조하는 계절과 계절 사이에

꽉 끼워진 채 꼼짝을 못하게 하는 심한 위압감 같은것이

내 어깨 너머로 무겁게 내려 앉았다.

 

 

 

도명산 낙영산  줄기

뒤로 조항산-대아산 마루금(그냥 어림으로)

 

 

산정에 휴식이 있다는 칸트의 감성은

휴식을 갈망하며 힘들게 산정에 오르는 자의 그리움이리라.

 

바람 한점 없는 높은 밀도의 건조함을 뚫고 걸어가다

문득 신비한 바람을 만난다.

 

그윽하고 시원스런 향훈

사랑스러움.

 첫새벽처럼 맑고 감미로운  정화의 바람이다.

창신하고 발랄한 담록의 선물같다.

 

 

 

 

벌깨덩쿨

 

북가치에서 점심을 먹다.

 

 

 

 

묘봉

 

에둘러 말하는 변명처럼

묘봉을 기점으로 다시 길은 북으로 향하게된다.

 

출입 금지의 안내문이 보이고

국공파가 출현하여 괜한 공포를 만든다.

 

우리가 넘어온 길이 잘 모르지만 금지된 구간에 속하였나보다.

점심 후 불편해진 배를 않고 산을 오른다.

가벼운 현기증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일이야

산꾼들에게는 常事일것이나

이것도 반복되면 저절로 짜증스런 일이 되고만다.

 

그기다 오르고 내리는 정체를 만나면

일정이 늦어져 더욱 그렇다.

쇠심을 넣어만든 밧줄은 잡기에도 성가시지만

정성없이 메어단 줄이라 자칫하면 찰과상을 입기 십상이었다.

 

바위 위의 작은 틈새라도 용케 이용해가며

일행들은 잘도 바위를 오르내린다.

사고니 위험이니 하는 생각은 다 내 기우인것 같다.

 

 

 

묘봉에서 바라본 속리산 주능선

 

 

 

 

아직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없음을 未生이라한다면

아직 사라지지 못한 생명에의 미련도 세상 한켠에는 잔존 하는것이다.

 

봄빛의 殘存.

흉중에도, 眼前에도 도무지 신록인 세상 앞에

마음 속 한 점 티끌 혹은 고통이라하여도 좋을

슬픔으로 피어있는 철쭉.

 

현요하다 할까

우울한 일상 속의 일점 파격이라할까

선연한 분홍빛 유열에 넋을 잃어

천왕봉 푸른 능선을 눈 앞에 두고도 바라볼 줄을 몰랐다.

 

 

 

 

충북 알프스 제 1구간인 구병산의 울퉁 불퉁 제멋대로 생긴 능선이 뒤로 보인다.

 

 

들뜨기만 했던 신록의 푸른빛이 둔중하게 가라앉자

청빛으로 마름하는 먼산 그림자가 의외로 다가왔다.

 

범상치 않은 마루금의 자태도 자태려니와

저곳이 충북 알프스의 첫 시발이라는 점이 마음에 더욱 끌렸다.

 

푸른 개스층 아래로 하오의 따분함과 한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듯한 현훈이

몰려 다녔다.

 

희미한 풍경 속에 희망의 글들이 묘하게 우러났다

하나의 세상을 두개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855봉-상학봉-토끼봉

중앙부가 상학봉

 

 

아무것도 일어날것 같지가 않는,

 

설사 무슨 일이일어나더라도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덮힐것만같은,

 

초록의 익숙함에 젖어

초록외에는

어떤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낄수 조차 없는

 

신록의 이 진부함.

 

 

 

 

 

 

 

묘봉에서 바라본 855봉

 

 

 

 

 

 

 

오르내리는 정체

 

 

 

상학봉

 

 

봉우리를 바라 본다는것은

산에 내제된 특별한 존재감을 느끼는 일과 같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것이

행복의 단초이듯

一峰을 마주하며 一喜를 얻는다.

 

산은 비로소

意氣를 잃은 채 웅크리고 있는

초라한 내 존재를 일으켜 세운다.

 

수줍음을 품고 세상 밖으로 민낯을 드러낸

나 스스로가 보인다.

 

아름답지 않은 존재란 없다.

존재란 사회적 관계로 포장된 자아의 다른 이름이다.

 

행복은 이 복잡한 관계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힘겨운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고 위로하는 순간

비로소 찾아오는 일종의 경이로움이 아닐까

 

나른한 봄날

내가 누구인지 조차 잊은 채 망연 자실 걸어가는 동안

문득 만나는 이 빛나는 존재감이야 말로

우무질의 세상에 방기된

나 스스로를 만나는 오롯한 자각의 순간이다.

 

 

 

 

 

 

 

 

 

 

 

 

 

 

 

 

 

 

 

 

눈에 보인다는것은 다만 볼 수있는것의 한계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을 목표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 난 조그만 소로를 겨우 통과하며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을 상상한다.

세상 그 어디보다 생각의 즐거움을 주는 산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은 더 높고 더 넓은것일 수록 좋은것이다.

협소한 시각은 편협한 판단을 만들고

관용의 삶을 위협한다.

 

좁은 바위속 소로에서 문득 만나는 소나무와 마주치며

한없이 낮은 점성의 삶이야말로

세상을 헤쳐가기에는 더 수월할것이라는

기발한 생각이 들었다.

 

 

 

 

 

 

 

 

 

 

 

 

 

 

지나온 산들이 키를 자랑하며

용맹히 전진하는 파도와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높이가

머리를 차고 넘어 숨통을 막아버릴 기세이다.

 

내가 임랑 바다 속에 빠졌을 때

머리 위로 넘나들던 그 파도를 다시 만난 기분이 들었다.

 

 

 

 

 

상학봉

 

예전에는 이곳에 사다리도 있고 정삭석도 있었으나

사고가 빈발하여 철거했다고 한다.

 

 

 

 

상학봉 뒷모습

 

 

 

 

 

 

 

비단봉

 

 

 

 

비로봉을 지나 통천문을 겨우 빠져 나오면

마치 오래 숨겨진 내밀한  정원을 만나듯

상모봉과 토끼봉의

아름다운 풍경들과 문득 마주친다.

 

토끼봉을 둘러보고 오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봉 아래를 그냥 지나쳐 버린다.

나도 어지간히 지쳐버렸다.

 

峰마다 절경이요

一山 一喜를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봉우리를 둘러 내려오는 사람들에대한 부러움을 애써 누르며

또 연이어 만나는 새로운 풍경들에 마음이 여간 끌리지 않아

 즐거움을 주워담기에도 여념이 없었다.

 

 

 

 

 

 

 

 

 

토끼봉

 

 

 

 

 

마당바위

 

 

 

 

 

매봉에서 미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마당바위에서 본 매봉과 미남봉

 

 

마당바위 위에서 잠시라도 앉아 하늘을 우르러며

웃음처럼 싱그러운 오월 산능에 한번 안겨보렴.

 

나날이 日新하는 이산 저산의 신록,

 경이를 안고 불어오는

저 향기로운 바람 한번 맞아보렴.

 

우리의 몸 비록 고단하여

지친 몸 바위에 의지해 겨우 앉았지만

 

하늘을 달려 온

저 푸른 은혜 한줄기 있기에

내일 또 다시 산에 오르지 않겠나.

 

 

 

 

도명산과 낙영산 능선(자신없음,산이름 달기는 언제나 어렵다)

 

세상이 비소하고 또한 저속하다하나

여기 또한 세상이기는 마찬가지다.

 

 허랑하고 범박한 내 삶이기에

돌아갈 세상을 앞에두고 마음이 다시 수수롭다.

 

산을 찾아나선것이

결코 군속을 떠난 도피가 아닐진데

산 저편의 오월은 여전히 따분하고

신록마저 권태롭다.

 

산을 돌아온 영광은 잠시의 의지였다.

내 마음의 오월은 여전히 모호한 안개 속이다.

 

 

 

 

 

마당바위 지나 위태한 산길의 암능

 

 

 

 

신월리

 

마주 보이는 산을 도명산이라 한것 같기도 하다

 

 

 

 

하오의 감미로운 햇살 아래를 걸으면

갓 볶아낸 개암나무 열매의 냄새를 종종 떠올리곤한다.

지금 그 빛의 냄새를 맡는다.

 

빛을 빛으로 느끼는 일이  오히려 내게는 더 난해하다.

그래서 빛을 빗댄 온갖 표현들을 생각하다

나는 엷은 신맛의 풍미가 가득한

헤이즐을 또 올리게 되었나보다.

 

옅은 갈색의 향에 약간 떫은 맛이 감도는

그런 빛이다.

 

 

 

 

토끼봉과 첨탑바위

 

 

 

 

 

 

 

 

 

- 후 기 -

 

 

산길을 걷다보면 종종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곤한다.

어떤 산은 스토리가 충실해 네레이티브적 정감이 있고

어떤 산은 문체가 강점인 작가의 글을 읽는 기분이 들때도 있다.

 

백두대간의 우련하고 어득한 능선길에서는

 마치 톨스토이나 박범신의 소설을 읽는듯한 재미를 느끼지만

 

오늘 묘봉에서 만난 느낌은

다분히 플로베르적이거나 김훈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아름다움과 적확한 단어.

언어가 주는 울림.

완벽함을 위한 끈질긴 추구.

 

이어달리듯 나타나는 로프 구간을 오르내리며

한걸음 한걸음 산길을 메꾸어가는 노력들이

이러한 느낌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산은 늘 본질적으로 아름답다는

내 평소의 신조 위에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내 삶에 덧씌울까하는 작은 고민 하나를

困馬처럼 메단 하루 였다.

 

 

 

 
전수연 - Smile Smile Sm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