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괴산 중대봉-문경 대야산 12.06.17 161번째 후기

poll™ 2012. 6. 12. 14:43

 

 

 

대야산은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접경에 놓인 산이다.

 

산도 산이려니와 주위에 즐비하게 놓인 명산들과 어울려

신들의 정원을 바라보는듯한 아름다움을 주는 산이다.

 

이 오랜 소망의 산능성을 따라오르면

백두대간의 우련한 산길을 또한 볼수 있을것이다.

 

큰 기대로 마음껏 가슴을 부풀려

나는 오늘 구름처럼 찬찬히 산을 오르고 싶다.

 

 

 

 

 

 

 

 

 

 

 

 

 

한적한 농촌 풍경

 

들머리 삼송리

 

 

 

 

 

 

 

 

 

삼송리 포장길을

여름꽃들이 영접하는데

움직이는 자연이 부동의 자연에 업혀

콘베어벨트에 얹힌 물건들 처럼 천천히 멀어진다.

 

나는 조용히 멀어져 가는 그들을 응시하다

마치 무언가 생각난듯 얼른 그들을 따라 걷는다.

개망초 흰꽃은 별빛처럼 반짝이고

노란 고들빼기 꽃들은 어린 아이처럼 수줍다.

 

이제 산길을 나서면

더러는 산을 넘고 더러는 산을 가다 되돌아 내려설것이다.

 

빗줄기처럼 햇살이 쏟아 붇는 여름 낮녘에

아무려면 어때.

 

하지만 나는 산길을 기어히 걸어 오늘을 완성하고 싶다.

내 발걸음을 온전히 주어진 노정 끝에서 마치는 일.

그것이 오늘의 목표이다.

 

 

 

 

 

 

 

 

 

산의 파도 끝에 속리산 주능선이 아스라히 걸려있다.

지금 내가 서있는 대야산과 속리산 사이에는

덕가산과 도명산이 좌우로 놓이고

낙영산이 뒤에 자리 잡게된다.

 

어느것 하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명산이다.

불행히 그 산금들을 구분하여 가늠할 수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지만

만개한 작약의 겹꽃처럼

산 그림자가 아름답고 그윽하다.

 

 

 

 

곰바위 대 슬랩

 

아기를 업고 슬랩을 오르는 젊은 아빠를 보았다.

아기에게 산을 보여주고 싶은 심정으로 힘들여 산을 오르는것일까

그 심정이 아무리 거룩하고 진지하다하여도

위험을 무럽쓰야할만큼 절실한 것이었을까.

 

 

 

 

 

 

 

 

 

오늘 올라야할 궁극의 목표인 대야산 정상부가 보인다.

식사를 대신해 햄버거 하나를 먹고 또 길을 나선다.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은 것이다.

 

육신을 달래지 않으면

언젠가는 영혼마저 길 바닥에 팽게쳐버린다.

 

그동안 진통제에 의존해 산을 오르던 습관을 버린지 벌써 몇달이 지났다.

고통이 다리를 올무처럼 옭아메어

발걸음을 잡았지만

아직은 산을 오를만하다.

하루 하루 이렇게 습관처럼 고통을 길들여 나가다 보면

고통이 나를 이해할 날이 올까

 

나에게 한걸음이 생명과 같음을 그 누가 알까

혹자는 슬렁 슬렁 유람하듯 걷는다 하고

혹자는 언제 뒤따라 와서 뒤에 붙어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 걸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 내가 감내해야 할 고통들은

아무리 설명한다해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것도 귀찮다.

나는 나대로의 길을 걸을련다.

산길도 어짜피 내 몫의 삶이니.

 

 

 

 

 

 

 

 

 

 

흰 옥양목 치마를 펼쳐놓은것 같은

희양산의 밝은 모습이 내 머리 뒤로 정답게 걸린다.

 

막장봉 장성봉을 산행하면서도 가까이서 보았지만

희고 매끈한 바위에대한 이끌림이 강하다.

 

뜻이 있으면 길이 반드시 있으리라 생각하며

아쉬운 이별을 하듯 풍경을 내려 놓는다.

 

 

 

 

 

중대봉에서 오순 도순

 

 

 

 

 

 

 

 

생각을 덮고 산을 보았다.

 

몰아의 밀도 높은 고요를 뚫고

뻐꾸기 울음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갈매기가 물에 가슴을 부딪혀 출렁 물결을 이루는것처럼

난데 없이 시원한 바람이 한 소끔 일었다.

 

바람에 송두리채 몸을 맞기는

신선한 기분을 맛보았다.

 

이 뜨거운 초하의 산정에서

나는 자유와 같은 바람을 갈망했다.

육신에 기운을 되찾은 노새처럼 싱싱한 긴장이 밀려왔다.

 

산의 파도를 응시하다

불현듯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는

가마우지의 꿈을 꾸었다.

 

 

 

 

 

 

 

 

위험하고 아슬 아슬한 길

바위에 바싹 붙어 아슬아슬하게 건너가는 길이

한편으로는 스릴있지만

위험천만한 길이다.

 

 

 

 

 

 

 

 

 

대야산을 꽉메운 인파

 

오늘 우리는 농바우에서 중대봉을 거쳐 대야산에 올랐지만

대부분의 산행팀은 용추계곡에서 출발하는 원점회귀 코스를 택한다.

 

느닷없이 나타난 인파에 놀랐지만

한여름에는 더 하다는 말에 고개를 설레 설레 젖는다.

 

누워있는 사람의 코 끝처럼 보이는 대야산 꼭대기에 사람들이

이미 진딧물처럼 다닥 다닥 붙어있다.

 

 

 

 

되돌아 본 중대봉의 아름다운 모습

 

 

 

 

 

 

 

 

산은 잘 다듬어 쓴 산문이요

수식이 필요없는 詩語다.

 

산에는 언제나

지극히 절제된 언어,

작위적이지 않은 근엄한 위엄이 깔려있다.

 

산과 산사이에 놓인  엄격한 행간이야말로

감성과 애정의 원천이 아닐까.

 

 

 

 

대야산 정상석을 완전 점거한 삼행팀

 

 

 

 

피아골로 직하하는 하산길 입구

 

콧날처럼 급한 경사를 이루는 대야산 하산길은

오랜 가뭄 끝의 먼지와 위험이 뒤섞인 절규로 금새 아수라장이 되었다.

인파가 무리 무리를 이루며

순대 속을 집어 넣듯 계곡으로 꾸역 꾸역 밀려들었다

 

자칫 한발짝만 잘못 디딘다해도 대형 사고가 날 만큼

앞뒤의 간격도 없는 상태에서

닳을대로 닳은 마사토의 하사길은

위험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때 아이 머리통 만한 돌이 굴렀다

돌은 순식간에 가속도가 붙어 퉁퉁 튀어 오르며 굴러 떨어졌다

단발마의 비명이 계곡을 쩌렁 쩌렁 울리며 일시에 메추리처럼 솟아 올랐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한참 사람들 머리 위를 비행하던 무자비한 돌은 저 아래 나무에 박혀서야

겨우 멈추어 섰다.

절대 절명의 아찔한 순간이었다.

 

 

 

 

 

결국 사람이 다쳤는지 119 구조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산을 올라왔다.

 

너무 광활한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묶어 오히려 관리가 더 소월한 면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추 계곡의 여유

 

꽃은 지고 물은 흐른다.

꽃이 지는 방향이 진행 방향인가

물이 흐르는 방향이 또한 나아가는 방향인가?

 

우주 만물이

돌고 또 돌아 윤회하는데

앞이 어디며

뒤가 또한 어디란 말인가.

 

 

 

 

 

 

 

 

- 후 기-

 

피아골과 용추골의 그 길고 위험천만한 계곡을 내려오며

 "중용의 발걸음"을 생각하였다.

 

中이란 어느 한 편에 치우침이 없는것이요

庸은 평상심을 말한다.

 

그러므로 중용의 발걸음이란

자신에 맞는 평상의 보폭을 유지하며 걷는것이된다.

 

잉어가 호수 위로 뛰어 오른다고하여

호수 위의 세상이 제 세상이 될 수 없듯

산행의 여유는

이런 중용의 발걸음에서 비롯되는것이 아닐까.

 

애써 앞서 나아갈것도 없고

너무 태연작약할것도 없는 발걸음으로

한발 한발 야무지게 걸어 본 산행이었다.

 

 

 

 

 

 

 

 

 


Secular Cantatas 'Sheep may safely graze', BWV208 (Arr. L. Stokofs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