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163번째 쉰움산-두타산 산행 2012.07.01

poll™ 2012. 7. 3. 15:32

 

 

 

 

쉰움산 우물 바위

 

 

예로부터 기도처로 명성을 떨쳤던 쉰움산.

지금은 산불 예방을 위해 기도를 금하고 있지만

기도처의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

산길 한 모퉁이를 신라의 소도처럼 거룩하게 지키고 있다.

 

 

 

 

- 탈진의 추억-

 

 

탈진을 아는가.

음...

나는 과거 두타산 산행을 통해 난생 처음 탈진을 경험했다.

 

내 몸 속 모든 기운을 한방울 남김없이 다 소진하고

 갓 태어난 가젤양처럼

두다리를 희미한 기력에 의존해

비틀거리며 산을 내려오던 내 모습.

 

만취의 아버지 모습.

 

그날의 슬픈 탈진을 추억하며 산행을 시작했다.

 

 

 

 

 

세상을 살다보면

그냥 주저 앉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몇년 전 두타산을 내려 오며

내 몸 속 에너지가 완전히 방전되어버렸음을 느끼는 순간

내가 그랬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겨낸 극기의 결과물은

의외로 공허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싸워 이겨야할것도 空이요,

내 앞에  남아있는 현실 또한 空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그 쓸쓸하고 허망한 고독.

나는 고작 내 마음 속 산 하나를 넘은것에  불과했다.

 

 

 

 

나의 첫  두타산 산행은

댓제-두타산-무릉계곡 코스였다.

 

댓제에서 두타산 박달령 청옥산 고적대 갈미봉 백봉령에 이르는 구간은

백두대간 길이다.

 

나는 그날 따가운 만류의 눈치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산행을 따라나섰다.

 

무모한 초보자의 만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나는 그날 뼈저린 고생을 통해 교훈을 하나 얻었다.

 

하지만 두타산 산행은

나에게 무엇보다도 값진 자신감을 심어주었으며

그 뒤 모든 산행의 교범이 되었다.

 

 

 

 

산행 들머리 천은사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집필한 곳이다.

 

 제왕운기는

몽고의 침란으로 국운이 백척간두에 섰던 시기에 씌여진 사서로

팔만대장경의 간행과 함께

국란을 극복하기 위한 민족의 저력을 보여준 정신적 집결체라 보아도 좋을것이다.

 

훗날 신채호의 조선 상고사의 모본이 될정도로

소중한 사서이다.

 

 

 

 

산을 오른다.

그날을 되돌아 보게하는 추억의 바람이 분다.

 

내가 나를 확인하듯

또 하나의 내가 산을 마주보며 내려 온다.

 

습기를 먹은 초록이 신명을 자랑하듯 높은 채도로

길에 생동감을 북돋운다.

 

 

 

 

 

 

 

 

 

 

 

 

 

병풍바위

 

 

 

 

 

절벽을 고여놓은 것 같은 선바위 하나가 이채롭다.

기도처였던 이곳은 지금은 인적이 끊겨

유리알같은 적막만이 가득하다.

 

범상치 않은 기분이다.

피부에 촉이 돋고

한낯 돌 하나에도 마음이 숙연해 진다.

 

치성이 바위처럼 긴 세월에 축적된 탓일까

법당에 든것처럼 정신이 고양된다.

 

 

 

 

이 밧줄은 또 무어란 말인가?

이 밧줄을 타고 바위를 오르란 뜻일까?

지금은 밧줄이 끊긴 상태다

 

 

 

 

병풍바위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같다.

화려함과 구축미를 자랑하는 생상의 교향곡을 듣는 느낌이다.

 

생상의 삼번 교향곡 "오르간"을 연주하는 바렌보임처럼

나는 바위 앞에 서서 엄숙함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무리 애를 쓰도 사진에 종교적 신비감이 녹아들지 않는다.

바위에 가득한 노랑꽃을 바라보다

시간이 없어 발길을 돌리고 만다.

 

 

 

 

 

병풍바위에 소담스레 핀 바위채송화

 

 

 

 

 

 

 

 

돌과

신앙의 차이는

무명 쪼가리 하나에 불과하다.

 

너의 믿음도

너의 사랑도

불멸이라 믿는 세상 그 어느것도

결국은 무명 쪼가리.

 

 

 

 

 


 

 

 

 

 

쌓으면 다 믿음이 되는가

신앙의 증거들이 즐비한 쉰움산

 

 

 

 

 

 

 

 

 

죽은 나무와 살아난 나무들

 

어디를 찔러도 단맛이 베어 나는 오렌지처럼

나무의주검들이 초록을 찔러 깊은 상처를 만든다

 

초록의 핏불이 베어 났다.

세상은 흐르는 초록으로 넘쳐났다.

초록의 땀이

초록의 거친 숨결에 묻어 터져나왔다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바람이 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잎, 잎, 조그만 잎. 너의 어린애도, 너의 아류자도, 너의 원수도, 너를 저주하여 지옥에 떨어뜨리려 하는 자나,

이 세상에 있어 너를 헐뜯고 비웃는 자나, 또는 사후에 큰 이름을 남긴 자나,

모두가 다 한 가지로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

그들은 참으로 호머가 말한 바와 같이 봄철을 타고 난 것으로, 얼마 아니하여서는 바람에 불리어 흩어지고,

나무에는 다시 새로운 잎이 돋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공통한 것이라고는 다만 그들의 목숨이 짧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마치 그들이 영원한 목숨을 가진 것처럼 미워하고 사랑하려고 하느냐?

얼마 아니하여서는 네 눈도 감겨지고, 너의 죽은 몸을 의탁하였던 자 또한 다른 사람의 짐이 되어 무덤에 가는 것이 아닌가?


- 페이터의 산문에서-

 

 

 

 

계곡마다 비설겆이를 하듯

뽀얀 안개를 한 입씩 물고있다.

 

유려한 바위 계곡이 선경을 이룬다.

 

깊은 죽음의 유혹이 물결친다.

 

생명의 색상 위에 생명의 빛이 더해진다.

 

삶이 활자처럼 명징하다.

 

살아있음이

살아있음을 느끼는것이

이처럼 다채로울수가 있단 말인가.

 

생명이 스믈거리며 다리에서 머리로 올라와

그간의 피로를 물리치고

나를 또 산으로 힘차게 밀어 올린다.

 

 

 

 

 

 

 

 

 

 

바로 앞이 쉰움산 정상이다.

바우야 하고 정짱님의 귀에 익은 소리가 메아리치듯 산 저편에서 들려왔다.

 

아무리 보아도 신록을 뒤집어쓴

고깔모양의 산이 하나 놓여있을 뿐이다.

 

비거스렁이에 신이 난 구름이 날렵하게 산을 타고 넘는다.

아찔한 칼날이 등을 꼿꼿이 세우며 눈 앞에 놓여있다.

 

이 능선을 바로 넘을까를 고민하다

아침에 본 길거리 짐승의 죽음이 영 마뜩찮아

다시 길 아래로 내려 선다.

 

 

 

 

 

 

 

 

 

 

 

 

 

 

 

 

 

능선을 타고 용이 승천하는듯한 느낌이다

 

 

쉰움정을 향해 날렵하게 뻗어가는 기상이 좋다.

 

시원한 바람과 더불어

꼬리를 달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연을 탄 기분이 들었다.

 

상승의 기분이 고조된다

이대로 그냥 새가 될것 같다.

 

 

 

 

 

 

 

 

 

 

 

 

 

 

 

 

 

 

 

쉰개의 우물

 

 

 

 

 

 

 

 

 

..

 

 

 

 

 

 

 

 

 

 

 

 

 

 

 

 

 

 

 

 

 

 

 

 

산성 갈림길

 

산성 갈림길에 이르러 비로소 추억과 조우하였다.

비온 뒤의 일이라 그날과 상황은 비슷했지만

우려할만큼 진창 길은 아니었다.

 

길은 몽골의 거세마처럼 계곡을 향해 거칠게 내려 꽂혔다.

마음이 굴러 떨어지는 돌처럼 속도를 더해가며 멀어졌다.

 

추억이 새록 새록

차창을 스쳐가는 풍경처럼 뇌리에 선연히 되살아났지만

참지 못할 고통 따위는 없었다.

 

길은 여느 하산길처럼 평이했다.

그날의 고생을 되짚어 보았지만

결국 지구력 부적이었다는 결론 말고는

딱히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강해진것이다.

오늘이 그 증거다.

 

 

 

 

 

두타산에서 박달령 지나 청옥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능선이 보인다.

대간길을 한없이 쳐다보다

문득 喫虧是福 넉자가 머리에 맴돌았다.

 

밑지는게 복이다 즉 밑지는게 남는거란 말인데

끽휴시복의 뜻은

가득참은 들어냄의 기미요

빈것은 채움의 출발점이란 뜻이다.

 

원래는 내가 입은 손해로 타인이 보상받는다는 뜻이다.

지금 느끼는 내 마음의 평화는

결국 내 두다리와 심장이 견뎌준 인내의 보상이다.

 

지금 나는 마음을 비워

저 능선길 위에 한없이 흐르는 자유의 공기를 마음껏  채웠으니

마음의 빔과 채워짐이 마치 바람처럼 자유롭다.

 

 

 

 

파스텔톤의 소나무 가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모습의 나무가지

 

 

 

 

물소리와 더불어 한없이 아름다운 폭포가 나타났다

지친 산길에서 만난 행복이다.

 

긴 가뭄에 수량은 형편없이 줄었으나

정갈하고 단아한 폭포로서의 모습은

여념집 처녀처럼 단정해 보인다.

 

 

 

물이 떨어지며 십이폭을 이룬다.

 

 

 

 

 

 

 

십이폭의 자태

 

 

 

 

 

 

 

 

자라바위

 

 

 

 

 

 

 

 

 

 

 

두타 12폭

 

 

 

 

 

 

 

 

산성터

 

두타산성

 

두타산성은 국민관광지 무릉계곡 내에 있는 석성으로 동석산성이라고도 불린다.

102년(신라 파사왕 23년)에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1414년(조선 태종 14년)에 삼척부사로 왔던 김맹윤이

높이 1.5m, 둘레 2.5km의 산성을 다시 쌓았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곳에 쳐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산성으로 피난하였다.

당시 아군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남북15리 절벽에 도열시켜 적에게 위세를 보이자,

왜군들은 공격을 포기하고 백복령 방면으로 퇴각했다.

빨래하던 노파가 이 산성의 사정을 제보하듯이 이방의 계략대로 알려주었더니

왜군은 이기령을 넘어 우회 침공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치밀한 계략.

왜군들은 성중에서 전멸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고장 청년들이 의병을 조직하여 왜군을 격침했다는 항쟁지로, 

현재 성터가  남아 있고 호국의 얼이 담겨 있는 곳이다

 

-펌-

 

 

 

큰 돗을 단 범선처럼 두타 산성이 보인다

천하 절경이다.

 

금강산 전도를 그린 정선이 두타산에 올랐다면 어떤 모습의 걸작을

만들었을까

풍경을 통해 겸재를 예찬하는것은

풍경에 겸재의 화풍이 오롯이 느껴지기때문일것이다

이것이 겸재의 진경 산수화의 힘이 아닐까

풍경과 그림의 가치를 잠시 가늠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산성터

 

 

 

 

 

 

 

 

 

 

 

 

나비가 꽃에 첫입맛춤을 할 때처럼

풍경 어디에서도 단맛이 우러나왔다.

 

참으로 달콤한 풍경이었다.

 

둥지를 막 떠난 아기새를 포근하게 받아주는

그 은혜의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 덕분이어서인지

바위에 붙어 사진을 찍는 모든 나그네의 표정이

하오의 햇살처럼 생기가 돌았다.

 

두 다리에는 아직도 힘이 넘쳤고

그 어느 산행보다 활기찼다.

 

나이가 들어 돌아본 동네나 학교가 형편없이 작아보이는것처럼

과거의 고난이

한줄의 역사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나는 그날에 승리한것이다

자만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나는 승리를 자축했다.

 

바흐의 부란덴부르크 협주곡이 계곡을 따라 경쾌하게 흘렀다.

 

 

 

 

학소대

 

 

 

삼화사

 

 

삼화사 지나는 길에 지난날 맥없이 삼화사 앞을 지나던 내가

다시 떠올랐다.

 

죽어가는 병아리처럼  다리를 끌며 내려가던 내가 보였다.

 

물 한방울없이 타는 갈증을 참아가며

나는 주차장을 향해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다리는 부어 석고 붕대를 감아놓은것처럼 무거웠고

허리의 통증으로 몸은 두동강이 난것같았다.

 

내 주위에는 나를 구원할 그 누구도 없었다.

 

산행이 얼마나 개인적이고 냉정한 것인지

스스로를 구하는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책임지울 수 없는 차가운 얼음같은 것임을

나는 두타산 초행길에 절실히 깨닫았다.

 

매 순간 ,매 걸음에 철두철미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는것을 나는 그날 아주 처절히 깨닫았다.

 

 

 

 

삼화사 3층 석탑

 

하대석과 상대석의 기단부 위에

좀 마른듯한 삼층의 석탑이 올려져있다.

 

전반적으로 켈빈 클라인의 의상처럼

날렵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다.

 

길상사의 쌍탑이나 불국사 석가탑.

봉암사 삼층탑 처럼 신라 하대의 석탑 양식을 하고있다. 

 

 

 

그날의 깨닫음이 없었다면

 고생 또한 물거품이 되었을것이다.

 

나는 고행을 통해 깨닫음을 건진 셈이다.

크게 밑진 장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도 나는 계속 산에 올랐다

아니 오기가 생겨

더 멀리 더 높은 산을 오르게 되었다.

 

탈진을 무서워 하지 않았고

고통의 본질을 꿰뚫고 지나가는

허무를 간파했다.

 

두타산 초행은 결과적으로 성공인 셈이다.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값진 승리였다.

나는 그날 당당히 두타산에 오른 8명의 용사 중 한명으로 기록되었고

 

무릉 반석에서 한가하게 무더위를 식히던

 일행들의 산행 수준을 일거에 넘어선 쾌거의 역사였다.

 

 

 

무릉계곡

 

 

 

 

 

 

 

 

무릉 반석을 지나며

물 한모금을 마셨다.

 

아직 여분의 물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또한 두타산 초행 고생을 통해 배운 교훈이다.

 

그 날 해질녁 어둠을 등에 지고 내려왔던 암울한 하산길에 비해

오늘 나를 마중한것은

은빛으로 반짝이는 따사로운 저녁 햇살이었다.

 

늦게도 빨리도 내려오지 않은

석류 속처럼 꽉 알찬 산행.

 

그 알찬 산행의 여유로움이 한모금 물처럼

속을 시원하게 채웠다

 

 

 

 

무릉반석

 

 

 

 

양사언 석각

 

 

-  후 기 -

 

선비의 절개가 가난에서 굳어지듯

나는 내 두 다리에 병이 들고서야

걸음을 알았다.

 

산길을 잘 걷지 못한다는 것은

羞惡嘆悲(소오탄비:부끄럽고 미워하고 탄식하며 슬퍼해야할 일)가 아니다.

 

진정 부끄러운것은 뜻이 없는것이다.

만약 내가 잘걷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겨

걷는것에 매진 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경쾌한 발걸음도 없었을것이다.

 

나는 길에서 삶을 찾았고

그것을 증명하였다.

 

병이 나를 강하게 만들고

병이 내게 큰 뜻을 준 셈이다

 

 

 

 

 

봄날,벚꽃 그리고 너-에피톤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