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171차 산행 후기 영월 잣봉 어라연

poll™ 2012. 8. 27. 10:52

 

 

 

아무런 바램도 없다.

늘 한가로운 마음 구석.

 

가녀린 으악새,

수줍은 물봉선,

푸른 하늘에

구름 한조각이면...

 

 

 

 

마타리

 

청춘의 성서 황순원의 소나기에 마타리는 이렇게 등장한다.

 

"이 양산같이 생긴 노랑꽃은 뭐지"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 받듯해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다시 소년은 꽃 한 옴큼을 꺽어왔다.

싱싱한 꽃가지만 골라 소녀에게 건넨다.

 

양산같은 마타리가 지천으로 핀 산길을 지나며

상기된 소녀의 수줍음 보다 더 빛나는

마타리꽃 아래에서 빙긋이 머문다.

 

 

 

 

 

늦여름 산행의 백미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다.

 

산에 다니다 보면

일년 중 이 때 만큼 구름이 풍성해 보일 때가 없다.

높이 솟은 積雲을 바라보노라니

형용할 수 없는 고요와 평화가 물밀듯 밀려 왔다.

 

그런데  마냥 한가롭기만한 평화가 아니었다.

하얀 얼굴을 가리는 눈물 자위처럼

왠지모를 불안의 그림자가  깔려있었다.

 

평상에 누워 한가로이 구름을 바라보며

 몽롱히 생각에 잠기었던 지난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시간들은

성장을 위한 시간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몸은 커져갔고

마음은 구름처럼 부풀었다.

 

내적 충실함을 이루지 못한 채 훌쩍 커버린 지난날.

예나 지금이나 그 위태한 성장의 두려움이

내 무의식의 꼬리에 충수돌기처럼 남아

풍경에 불안의 그늘을 지우는지 모르겠다.

 

 

뭉게 구름 아래에 그림자처럼 설핏남은 검은 자위.

내 어린시절의 자화상이다.

 

 

 

 

수수가 자라는 풍경

 

 

나는 어린 시절 풍경화를 그릴 때 전봇대가 담긴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전봇대는 그 시절 내 자아의 상징이었다.

 

집을 그릴 때도,주변 풍경을 그릴 때도 꼭 전봇대를 그려 넣었다.

몽고 여행 중 아련하게 멀어지는 전봇대의

우련한 행열을 보며 많은 사진에 담았다.

 

수수처럼 훌쩍 자라버린 늦여름 풍경 속에

내 지난 날의 추억이 풍성하게 걸려있다.

 

한가로운 추억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수수와 잠자리

 

 

 

 

 

 

 

 

 

 

 

 

 

 

 

 

 

 

 

 

 

 

 

나무 계단을 얼마 안 올라 공터가 나오고 그기서 점심을 먹고 쉬어간다.

아무리 먹어도 시장한 하루다.

 

이상하다.

 

머리가 허기지면

필요 이상의 음식을 먹게된다.

 

나는 우울증의 결과라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울이 개재될 이유가 없는데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불안 한 조각이

식욕의 생리를 괴롭힌다.

 

이를 때 먹고 싶은것을 실컷 좀 먹어 봤으면 좋으련만

우격다짐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

이 미련하고 위험천만한 스트레스에

마음이 몹시 괴롭기만 하다.

 

 

 

 

 

 

배낭을 사진에 넣는 순간

내 무의식 속에 배낭은 어떤 역활을 하고 있을까.

 

여행의 상징.

삶을 통해 지고가야할 고난.

고독한 자아.

 

심심한 풍경 속에

배낭은 홀로 고독하다.

 

 

 

배려가 돋보이는 순간

 

산길은 자만한 자의 자아도취를  실행하는 터가 되어서는 안된다.

 

진정한 가치를 ,

삶을 통해 굳게 믿었던 바를 실현하는 실천의 場이어야 한다.

 

힘든 자를 끌어주고

기꺼이 고통을 나누어 지는

그 사회적 배려야말로

산길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할 바를 증거한다.

 

산길은 빨리걸을 수 있는 자의 것이 아니라

신념을 충실히 이행하는 자의 것이다.

 

 

 

 

 

 

 

 

 

 

 

 

 

 

 

 

 

 

동강 건너 능안덕산의 능선과 어라연

 

저어새의 부리처럼 튀어나온 언덕을

물길이 순순히 돌아간다.

 

이 물돌아가는 물돌이가 강원도 땅에는 여럿있지만

동강 어라연의 풍치가 단연 뛰어나다.

 

옥빛 강심에 그믐달 모양의 모래톱이 한가히  떠 있는데

소나무를 얹은 바위섬이 운치를 더한다.

 

 

 

 

 

영월은 단종의 애사가 어린곳이다

 

단종은 17세가 되던 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신은 동강에 버려졌다.

영월호장 엄흥도가 시신을 수습하여 잠릉에 암장하였다.

 

 단종의 영혼이 어라연에 이르자

물고기들이 줄을 이어 반겼으며

이 일대가 마치 고기 비늘로 덮힌 연못같았다하여

어라연이라 이름붙였다.

 

단종을 반겼다고하니 전설이 되었지

물고기들이

시신을 뜯어먹으러 달려들었다면 얼마나 끔찍한 장면이 되었을까.

엽기적인 생각이다.

 

17세의 나이.

단종

 

종아리를 드러낸 날씬한 몸매

귀엔 귀걸이

한 손엔 스마트폰

붉은 신발

몸에 붙은 상의

 

이 시대의 단종

스스로 숨을 끊는 17세.

 

 

 

  

 

 

 

 

무덤덤한 잣봉 정상에는

늦더위만 가득하다.

숨돌릴 겨를없이 지나간다.

 

 

 

 

 

 

 

 

 

 

 

깊이를 알지못하더라도

뛰어 들고 싶은 풍경있다.

 

사라진 기억 속으로 뛰어 들며 생을 함께 마감하던

영화 "번지 점퍼를 하다"의 엔딩이 떠올랐다.

 

젊음의 시간들이 저기에 있는데,

분명 저기에 있는데

그 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번지 점퍼를 하듯

 강물로 뛰어 들고 싶은 이 가당찮은 갈등.

 

그 갈등을 비웃기라도 하듯

강물은 느리게,

아주 도도하리만큼 느리게

나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라는듯

구비를 돌아 사라져갔다.

 

 

 

 

 

 

 

 

 

 

 

물고기를 대신해

젊음이 어라연을 채우고있다.

 

푸른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청포도빛의 젊음이 한없이 부럽다.

구령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저어가는

저들의 검게 그을린 두 팔에,

계곡을 뒤흔드는 그들의 함성에,

재잘거리며 호들갑스레 웃는 그들의 과장된 즐거움에

젊음이 넘쳐 흐른다.

 

내 이마에는 땀이 넘쳐

성긴 머리카락을 적시고

나는 내 슬픈 모습에 스스로 눈돌린다.

 

늙는다는 것은 체념 이전에 슬픔이다.

 

생노병사의 무상합을

도도한 동강의 강물은 알려준다.

 

 

 

 

 

 

 

 

 

 

 

동동 떠다니는 물방게처럼

잘도 물살에 어울려 나아간다.

내 꿈도 따라 흐른다.

 

 

 

 

 

 

 

 

 

 

 

 

 

 

부질없음.

 

잠자듯 흐르는 물결 위에도

한 무리의 청춘은 피고 지고

내 꿈 또한 흘러가리니

내가 탐한 시간들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흐르고 흘러

고독이 빈 술병처럼 길게 늘어난

이 적막의 강줄기.

 

 

 

 

 

 

한가히 강변을 걷겠다는

당초의  목표는 오산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設法의 결론이 늘 같은것처럼

나는 내게 행복을 주문했다.

 

"먼저 내가 행복해야 한다"

 

내가 나를 내 인생의 희망으로 여기지 않고

他人에 의지한다면

내 행복은 늘 타자의 힘에 의해 좌우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누구를 희망으로 삼을것이 아니라

나를 희망으로 삼아야한다는

법륜 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내 삶을 타인의 탓으로 원망 지울 수 없듯

산꾼은 길을 원망해서는 안된다.

 길이 곧 삶이기 때문이다.

 

라면을 먹을 때 무정란을 넣어 먹으라는

어처구니 없는 스님의 발상이 떠올라

염천의 강변에서 계란을 탁 깨트려 넣은 라면 한 냄비가 또 간절했다.

 

 

 

 

 

 

 

 

 

 

 

 

 

 

 

 

 

 

 

착하고 어진 물빛이다.

 

착하고 어진 인품조차

 결격 사유로 여긴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착한 품성에는 아귀와 같은 열정이 없어 보이니까.

 

세상은 인간을 무한 경쟁의 구도로 몰아넣는다.

그런데 곰곰히 따져보면

착하다고해서 열정이 모자랄 거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성공한 사람은 착하고 어질며 동시에 삶에대한 열정 또한 치열하다.

착하고 어진 인품 속에는

남을 해하려 하지 않는 지극함이 있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고 남을 배려하려는 끝없는 노력이 오히려 존재한다.

 

늘 지기를 싫어하고 경쟁하려는 자의 마음이야말로

불안의 반증이다.

남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적고

남을 비난하기 쉬우며

참을성은 떨어진다.

이른바 감성 지수가 더 낮은 법이다.

 

겉보기에 편안하고 조용해 보여도

속으로는 강철같이 단단한 내공을 가진 자.

그 어질고 단단한 성품을 닮은듯

강물은 질곡의 역사를 다스리며 도도히 흘러갔다.

 

 

 

 

 

 

 

 

 

 

 

 

 

 

 

 

 

 

 

 

 

 

 

 

 

 

부처꽃

 

물기가 없으면 살지못해 물가에 피는 습지 생물입니다.

동강 강가에 흐드러진 부처꽃을 보다 우란분절을 떠올립니다.

 

우란분절은 불가의 음력7월 15일 하한거가 끝나는 날로

부처님 10대 제자인 목련존자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

여러 스님을 지극 공양한 날을 기려 오늘날 전해지고 있습니다.

 

요즘도 불가에서는 우란분절에

돌아가신 영가를 위한 천도재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 우란분절에 부처님께 올리는 꽃이 바로 이 부처꽃입니다.

여름꽃을 대표하기에 손색이 없을듯한 아름다운 야생화입니다.

 

 

  

 

 

가을의 전령 쑥부쟁이

 

 

사랑한다는것은

조용히 물들어가는것.

너의 존재로도 가을은 벌써 물든다.

 

 

 

 

 

그대를 두고온것이 마음에 걸려

동강 강가에 앉아 그대를 생각해 봅니다.

 

푸른 강물에는 뭉게 구름이 풍성하고

둘데 없는 마음이

물결처럼 굽이쳐 흐릅니다.

 

저 물도 내 안같아 울어 밤길을 예놋다는

왕방연의 시조처럼

동강 강물은 유난히 감상적입니다.

 

아무리 흘려보내도

여전히 산그림자 남듯

그대 향한 상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길은 이미 여름을 비껴서

풍성히 가을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햇곡식으로 지은 밥을 먹듯

남들보다 이른 계절을 맞이하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사뭇 들뜹니다.

 

쓸물과 밀물이 교차하듯

계절이 交行하는 길목에서

오랫동안 들풀 곁에 마음을 머물러 봅니다.

 

감질나게 부는 강바람이 여름의 심술을 느끼게 합니다.

마음은 벌써 江心을 향해 뛰어들고 말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힘든 길이었다.

 

산길이 험해서가 아니라

그림자없는 뙤약볕 길을 줄곧 걸어야했기 때문이다.

 

그 때 긴 무료함을 뚫고 키 큰 은사시 나무가  나타났다.

 

我와 彼我의 나무.

 

문득 나무와 자아가 대립하는 종교적 느낌을 받았다.

비에이 언덕에서 보았던

켄과 메리의 나무 보다 더 성찰의 느낌이 강했다.

 

쿼바디스 도미네

 

나는 어디로 이렇게 성급히 가고있을까.

로마로 돌아간 베드로가 순교의 길을 택하였듯

나는 내가 몸 담았던 세상으로 돌아가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 후 기 -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번지 점프의 마지막 대사처럼

나는 아직 이런사랑의 박진감을 알지 못한다.

아니 고백컨데 처음부터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불현듯 증명되는것이 인연의 본질인 까닭에

허구를 상상하며 살아오는 동안 

나는 어쩌면 사랑을 놓치고 말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은교를 읽으며 주인공의 老醜를 비웃었고

가을의 호수처럼 맑고 흔들림 없는 사랑을 소망했다.

 

세월의 실루엣에 가려진

희미한 내 청춘의 기억이 동강 물결 위에 부침한다.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외통의 강물 속으로  내 사랑이 빠져든다.

 

 

첫눈에 빠져버린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호르몬의 음흉한 흉포에 불과하다는

이미  맥빠진 신념.

 

한번의 섹스로 끝나버릴 사랑이 아니었다면

이제 시간의 그늘에서  내 사랑의 평결을 기다리자.

 

흐르는 강물 곁에서

비로소 느꼈다.

 

오직 한 사람의 심장만을 사랑할 수 밖에없는

 내 작은 가슴을.

 

 

 

 

 

 


 

 

차이코프스키/뱃노래
    


 차이코프스키/ 뱃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