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172차 후기:수정봉-구룡계곡-육모정

poll™ 2012. 9. 3. 09:30

 

 

A코스:

 

 

대간길은 언제나 내 삶의 갈증이었다.

그 뜨거운 양철 지붕의 길이

내 앞에 열려있다.

 

오늘 그 길을 걷게된다.

비록 몇시간  편승해 걷는 산길이지만

내 가장 소망한 길이기에

갈증이 더 심하다.

 

산길의 고속도로

백두대간.

 

백두대간 1구간인 성삼재-만복대-정령치-고리봉-주촌리-수정봉-입망치-여원재 중

그 말미에 해당되는 길이다.

 

오늘 이 구간을 걷게되면

고리봉-주촌리를 뺀 나머지 1구간은 다 걸은 셈이된다.

대강 대강 걸어 온 백두대강의 위력이 크다.

 

 

 

산행 들머리 여원재에서

 

여원재(477m)는 운봉읍 장교리와 이백면 양가리 사이의 고개로

이성계 설화가 서린 사당 女院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들머리 입구의 멋대가리 없는 하루방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궁금했는데

고맙게도 운성대장군이라 적혀있었다.

 

여원재가 운봉을 성처럼 감싸고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러니 운봉을 지키는 대장군쯤으로 생각 하면 되겠다.

 

한편으로 이성계의 존호인

"지인계운성무신무 대왕"에서 유래되었음직도 하다.

왜냐하면 운봉은 이성계가 왜장 아지발도를

활로 쏴 죽이고 황산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곳이므로

이성계의 氣가 운봉을 보호해 주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지않을까.

 

 

 

불가사이한 실상사 입구의 장승

 

 

그런데 왜 하필이면 돌장승일까?

영락없는 제주도 돌하루방 모습이다.

 

이 의문의 열쇠고리는 실상사 앞 냇가에 서있는 돌장승이 풀어 준다

지리산 둘레에 사는 사람들은

이 하루방 모양의 돌장승을 동네를 수호하는 수호신이라 여기고 있나보다.

 

 

 

 

 

 

백두대간이란 이름은 귀가 닳도록 들은바 있지만

백두산대간이란 이름은 생소하다.

 

대간길을 사랑하는 자와

이정표를 세우는 자의 대간에 대한 사랑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겠지만

몹시 거슬린다.

 

 

 

 

 

어렴풋이 고개내민 산모습에서

지금 우리가 첩첩 산중에 서 있음을 알수있다.

 

저 산 너머 너머에 지리산의 서북능이 달리고 있을것이다.

바래봉에 이르는 서북능을 통해 지리산 주능선의 면모를 보았고

수정봉 대간길을 통해 서북능을 보고자 했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숲과 산이 서로 넘 볼 수 없는 경계인것처럼

산은 수풀 사이로 자취를 감추었고

우리는 실타래처럼 끝없이 풀어진 그 고독한 산길을 하염없이 걸어야했다.

 

 

 

 

 

길, 오로지 길이다.

가도 가도 소나무 길이다

 

바람도

풍경도 없는

마치 큰 파도가 숨긴 바다 속 저류처럼

무겁고 두터운 우무질의 대기.

 

그 하염없는 길을 걷고 또 걷는다.

그래도 여기는 대간길이다.

 

 

 

 

입망치(笠望峙)

 

입망치 지나며 고개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였다.

우리 나라 산골 어느 고개 이름치고 타박하고 은근하지 않은 이름이 있겠냐마는

대간으로 편승하는 길 어귀에 붉게 걸린 입망치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유래가 끈질기게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입망치(545m)는 스님이 삿갓을 쓰고 지나가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아주 단순한 이름이고

여원재(477m)는 운봉읍 장교리와 이백면 양가리 사이의 고개로

이성계 설화가 서린 사당 女院에서 유래한 이름이란다.

아무래도 한자로 우겨 붙인 이름일것 같아 뒷맛이 쓰다.

 

 

 

 

 

가도 가도 끝없는 적송의 숲길이다

태풍에 떨어진 푸른 솔잎은

나그네의 발길에 짖이겨져 두터우면서도 싱그러운

솔향기를 만들어 낸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먼지처럼 이는 향기.

침착하고 중성적인 시프레한 느낌이랄까

마음이 차분해지며

안정감을 준다.

 

패트릭 쥐스킨트의 소설에서처럼

회색의 하늘과

곳곳에 부러져 나뒹구는 나뭇가지들이 음산함을 자아 내는 가운데

향수에 취해 사람을 뜯어내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며

향에 취해 길을 걷는다.

 

 

 

 

부러지거나 꺽이고

아예 뽑혀버린 나무들.

나무들의 전장이다.

 

두차례의 태풍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지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숲은 그대로 숲이다.

주검을 딛고 자생하는 갸륵한 모습이다.

 

죽은 예수를 안고 비탄에 잠긴 성모의 모습을 묘사한 피에타처럼

나무가 나무를 안은 모습이 너무도 비감하여

 오직 걸음으로 숲을 조상하며 숙연히 지나간다.

 

 

 

 

마침내 수정봉 정상

 

늘 좋기만한

맏형을 닮은 산봉우리.

 

 

 

 

 

내친김에 7km를 더 걸어 고리봉에 닿고 싶다.

그 때 고리봉을 넘지 못하고

정령치에서 붙들려 내려왔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참 아쉬운 순간이었다.

 

 

 

 

 

고인돌을 닮은 바위

 

 

 

덕운봉(745m)

 

 

 

 

구룡봉 방향으로 나아간다

 

어디 할것없이 태풍이 그냥 지나간 곳이없다.

부러진 나무와

비스듬히 쓰러진 채 살아남은 나무.

아무 일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독야청청한 나무.

아예 뿌리 채 뽑혀 자빠진 나무등등

나무의 세계도

인간의 세계처럼 나름의 운명이 존재하나보다.

 

피하지도 못한 채 몸 전체로

운명에 맞쓴 나무들의 잔해를 보고

우리 삶의 방식도

과연 저들과 닮은 것일까라는  물음을 던져보았다.

 

 

 

 

의연히 살아 남은 나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70년대 비오는 밤거리를 걷던

그 희망없는 청춘들의 노래.

 평화시장 비둘기들...

 

나는 이제 청춘을 품에 안은 애비가되었지.

그래 그래 정의는 시들어가고

나는 의연히 살아남아

그 의연이란 말이 이제는 좋구나.

 

 

 

 

노치 산성/남악산성 터

 

 

 

아기사철난

 

 

 

선두에 서야할 분이 후미를 맡아

가족처럼 오붓한 산행을 주관한다.

산을 사랑하는 자의 뒷모습은 더 아름답다.

 

 

 

아기사철난

 

 

 

 

 

 

 

 

구룡폭포로 가는 하산 길이 밀리기 시작한다.

멀리서도 계곡을 뒤흔드는듯한 굉음이 들린다.

숲이 온통 물기로 가득하다

물 함모금 넉넉히 마셔본다.

속이 쾅하고 뚫리는 기분이다.

 

 

 

구룡폭포의 위력

 

지리산 계곡을 두루다녀 보았지만

이만큼 크고 다이나믹한 폭포는 처음이다.

 

물론 큰비 오고난 뒤라 수량이 풍부해진 탓도 있겠지만

깊은 계곡 아래로 떨어지는 스팩타클한 위용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 위용에  압도되어

오늘 산행에 몰표를 던져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백두대간의 느린 라르고의 길을 걷다

운명의 첫 악장과같은 과감한 변화에

넋을 빼앗기고 만다.

 

길이면 길

물이면 물

산과 물이 서로 어울려

묘한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산행이다.

 

 

 

 

 

 

 

 

 

 

 

 

 

 

 

 

 

 

 

 

 

 

 

푸른 숲으로 흰 백사가 한마리 지나가는 듯한 풍경이다

이 깊고 풍성한 풍경을 카메라에 제대로담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느리고 완만하되 꿈틀거리듯 살아있는 느낌

그런 느낌을 받았다.

 

 

 

 

 

 

 

 

비폭동

 

반월봉에서 떨어지는 물이 바위 층계를 내려오며

하얀 웨딩드레스처럼 우아한 폭포를 만들어 낸다.

 

사랑스런 모습이다

웅장한 반면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하면서도 거친

이런 양가의 아름다움이 서로 어우러지며

수려한 경관을 자아낸다.

 

飛瀑洞이라

과연

떨어지고 날아오름의 구분이 없다.

 

 

 

 

 

 

 

 

영아자

 

 

 

이삭여뀌

 

 

 

지리산 구룡계곡은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에서 덕치리로 이어지는 계곡으로

만복대-고리봉-세걸산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의 왼쪽 자락에 위치한 계곡이다.

 

이 계곡에서 남원의 수많은 명창들이 득음을 하였다.

웅장한 물소리와 명창들의 소리의 한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한국 소리의 본향이다.

 

 

 

 

 

학서암,구시소,유선대,은서병

수많은 전설을 가진 소와 바위들이 어우러지며 3km의 구룡계곡을 만든다.

 

 

 

 

 

 

 

 

알탕 문화

 

일본을 노천 온천의 천국이라 한다면

우리나라는 노천 알탕의 천국이다.

 

일본과 달리 우리는 흐르는 개울물에

옷을 입던 벗던 그냥 들어가는 시원함을 즐기는 것이다.

 

한국의 알탕 문화의 선두에는 당연히 산꾼들이 있다.

옛날에도 탁족이나 아이들이 물가에서 멱을 감는 문화가 없지는 않았으나

등산이 활성화 되고난 뒤부터

냇물에 주저 앉아 산천을 감상하며

산행을 통해 지친 심신을 식히는 알탕 풍습이 더 성행하게 되었다.

 

국립 공원에서는 이처럼 냇물에 입수하는것이 금지 되어있으나

어지간히 수질을 오염시키는 심각한 일이 아니면

모른 채 해주는것 같다.

 

나도 여름이면 하산길에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며

땀을 식히기는 햇으나

이번에는 모처럼 시간이 남아 나도 과감하게 알탕을 감행햇다.

 

보는이도 없고 해서

그야말로 홀랑벗고 물속에 앉아있으니

그 청량감은 어디에 비견할 수 없이 컸다.

 

푸른 숲

흐르는 물소리

적당히 몸을 건드리며 내려가는 수압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래서 산꾼들은 여름이 오면 기다렸다는듯이 계곡으로 몰려가는구나.

 

다음 산행에도 꼭 계곡에 들러 알탕을 하고 싶다.

 

 

 

 

 

 

 

 

 

 

 

 

태풍이 지나가고

뭉텅 빠져 버린 여름 자리는

속절없이 흐르는 물소리로 가득했다.

 

나는 이번 여름 정말 씨앗처럼 단단해졌을까.

많은 날들이 흘렀건만

시간의 흔적들은 그 어디에도 없다.

 

태풍에 떨어진 낙과처럼

내 삶 또한 여물지 못한 씨앗이기에

쏜살처럼 흐르는 물 위에서

나는 세상과 함께 깨어있지 못하였다.

 

 

 

 

 

 

 

 

 

육모정

 

 

- 후 기 -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대간길에 발을 반쯤 담그고도

나는 그 길을 나아가지 못해 또 망설인다.

 

번지 점퍼를 하듯

한 발 내밀면 그만인 일을

물엿 졸이듯  마음을 졸여 또 망설인다.

 

 

 

 

 

 

 

 

몽골리안 /  Zhao Kun 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