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부비며 흐르는
고요한 흐름을 보아라.
미명의 늪지를 나르는
한점 입자를.
배 떠난 뒤
그림자처럼 새들이 남아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삶은 이렇게 남아서 기다리는 것들에 의해 빛난다.
더러는 꽃이되어 지고
더러는 새가되어 날아가듯
삶 또한
참을 수 없이 헛된것일지라도
그래도 가끔씩
뒤돌아볼 일이다.
가슴에 쓰는 일기처럼.
기다림
기다림은 눈부시지 않아서 좋다.
퇴적된 머리 위 어두움을 뚫고
홀연히 희망의 시간들이 돌아왔다.
삶의 가장 깊은 곳으로 거룩한 신앙이 뿌리내린다.
기다림이 기다림을 좇아오지 않는 시간.
기다림조차 행복이 되고마는...
이런것이야말로 여행의 즐거움이다.
잎들이 몸을 부비어 이슬을 만들어 내듯
물들이 바람에 살을 부벼 만든 물결.
이 살뜰한 움직임으로 포구는 분주합니다.
내 가슴에 닿아
아무른 무게도 없이 서걱이는 바람을 맞으며
나는 격없는 부딪힘을 느낍니다.
무게가 무게에게 짐지우지 않고
풍경이 풍경에 등 기대지 않는
이런 살가운 기운 속에서
나도 나를 지우며 그림자로 스며듭니다.
코끼리를 삼켜버린 보아뱀처럼
혹은 표주박 섬처럼
망주봉이 우두커니 서있다.
깊고 푸른 물결이
사랑을 애무하듯 일렁거린다.
허락없이 마음 한구석에 찾아와
남은 마음마저 온통 삼킬것처럼
섬은 단단한 매듭으로 나를 힘쓸 틈없이 옭아매었다.
비가 주적 주적 내리는데
비 속에서 묘한 가을의 향기가 느껴진다.
데림추처럼 따라다니며
행여 카메라가 젖을라 우산을 받쳐주는
아내의 향기다.
성미가 급한 나는 종종걸음으로 풍경을 따라 다니다
발걸음을 놓친 채 멀리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아내를 보았다.
말없는 언어가 안긴다.
언어가 바람처럼 살을 부빈다.
침묵이 옹알이를 하듯 요란하다.
망주봉
선유봉과 송도
무게가 무게에게 짐을 지우지 않는 상호 교감이란
이런 풍경을 두고 하는 말이다.
풍경과 풍경이 조응하며 서로의 위치에서 서로의 외연을 확대시킨다.
바다가 공존의 아름다움을 시연한다.
바다와 고요가 어우러진 풍경이
어딘지 모르게 원시적 신비감을 준다.
신기리 선착장에서 장성처럼 서있는 망주봉을 보고
남악리 뒷산이라 이름지어진 쓸쓸한 산을 돌아간다.
어디에도 없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남악리 뒷산길을 돌다 지쳐 바닷가에 앉았다.
그 때의 섬들은 그대로다.
내가 마주하는 섬들은 이미 갈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섭렵의 경험이 욕망을 지워버렸다.
그냥 눈높이 만큼의 그리움이
간당 간당 바다를 건너 뛰어 아른거렸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는 예수처럼
녹슨 닻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내 삶이 고뇌에 찬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삶을 은유하기에 좋았다.
고통을 잊는다는것은
생각을 지우는것이 아니라
희망을 고통 위에 덧칠하는것이다.
고통의 끝은 한사코 이어지는 뿌리가 아니라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물고기다.
나도 때로는 저 섬처럼 겉돈다.
한가히 섬 길을 걸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위무하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가.
"아버지 나는 잘 살고 있어요."
사랑을 마감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혼자 걸으며 수많은 삶의 단면들을 들추어 내는 동안
나는 내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을 대면하게 된다.
이미 多生習氣에 젖어버린 삶.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지만
나는 포행이라 여기는 길 위에서의 홀로서기를 멈출 생각이 없다.
무엇도 하지않고 기다리는것보다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걷는것이
내게 훨씬 더 강한 삶의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어젯밤 생각의 무덤 위에 저승새가 처량하게 울고 가더니
오늘은 신열을 앓고 난듯 기분이 화창하다.
그러다 또 구름처럼
상상이 무거워 온다.
바짝 쪼그려 앉아 고철더미를 기웃거리다
아픔이 너무 깊어가기 전에 얼른 일어나
또 뜻없이 길을 걷는다.
떠오르는대로 생각하고
돌아오지않을 사랑을 그린다.
반백년 살다 보니 아픔도
이렇게 사과꽃처럼 피나보다.
왕고들빼기
마침 썰물 때라 명사십리 해안과 작은 섬 송도를 이어주는 바다길이 드러났다
도라지
기웃 저문 날처럼
때 아닌 어두움이 해변을 떠다녔다.
적요가 소금기를 머금은 채 다가왔다.
해변에 걸쳐진 긴 줄 위에
거룩한 세월이 걸려있다.
나는 신발에 물이 드는지도 모르고
고요에 취해있었다.
상념은 때없이 무채의 썰물 속에 스며들고
모래무늬 처럼
마음 한구석에 뜻밖의 근심이 기어 올랐다.
마른 풀잎만 같았던 마음이
꿉꿉하게 젖어들 무렵
굵어진 빗방울이 눈물인듯 떨어졌다.
왕고들빼기
꽃을 찍고 수녀를 상상했다.
장자도와 대장도
두번째 선유도 방문이기에
나는 저번에 다녀가지 못한 곳을 위주로 돌아보고 있다.
섬 저쪽의 풍경은 눈에 박힌것처럼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했다.
내 눈을 대신해 녹슨 쇠닻 하나가
풍경을 쳐다 본다.
세상을 비껴선 자아처럼
내가 쓸쓸하다.
천 사
오룡묘
선유도는 군산도로 불리웠다.
고군산도라는 명칭은 난중일기에 처음 등장한다.
이순신이 이곳 선유도에 머물렀다는 기록도 있다.
신기하게도
선유도에는 왕릉의 전설이 남아있다.
누군가 왕릉을 도굴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지만
어디가 왕릉인지는 알 수 없다.
조선 후기에는 당쟁의 여파로
103명이나 되는 양반이 귀양살이한 유배지로도 유명했나보다.
유배인 중에서는 이곳에 후손을 남겨
장자도에 가서 인물 자랑하지말라는 풍설이 있을 정도다.
고군산 군도는 옛날부터 교통의 요지로
고려시대에는 남송과 연결되는 중요한 무역기지였다.
지금도 오룡묘 근처에는
많은 청자편과 중국 자기,청동거울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된다.
참으아리
망주봉 오르다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비 맞은 으아리꽃이
꽃말처럼 고결하다.
평사낙안
물길 아득하고 하늘 더 높은데 해는 기울고
지는 해를 따라 기러기는 모래톱에 내려앉네.
줄줄이 점을 찍어 짙푸른 가을 하늘을 깨트리고
누런 갈대밭에 내려앉아 흰 꽃을 뒤흔드네.
-이인로-
평사낙안(平沙落雁)은 샤오샹 8경의 하나로
기러기가 모래사장에 사뿐히 내려 앉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단정하고 맵씨있는 글씨를 평사낙안이라고도 한다.
망주봉을 오르다
한숨 돌리며 문득 뒤돌아 본 선유3경 평사낙안.
물길이 과연 맵씨있는 글씨처럼 아름답다.
희곡에 등장하는 총이 반드시 쓰여지기 마련이듯
풍경에 빠져버리면
반드시 한번은 뒤돌아 보게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마이산 두귀처럼 쫑긋하게 솟은 망주봉.
주봉에 올라 맞은 편 봉우리를 바라본다.
봉우리 너머 보이는 섬이 신시도다.
그중 제일 높은 봉우리가 대각산인 모양이다.
右편으로 선유도와 새만금을 잇는 교각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이면 아마 자동차를 타고 선유도로 진입할수 있게 될모양인데
도대체 그 많은 차들은 어디에 주차한단 말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선유도 전경
섬안의 또 하나의 작은 섬 송도와 바닷길이 이어진 모습.
대장도 뒤로 멀리 보이는 섬이 관리도
아내를 산아래 두고
망주봉에 올랐다.
비가 와서 그런지 아무도 없다.
아래에서 보면 지척일것 같은 높이인데도
바위가 미끄러워
겨우 올랐다.
조심을 더 했다는 뜻이다.
이번에 선유도에 따라 나선것도
순전히 망주봉에 올라가기 위해서이다.
그만큼 섬 저쪽에서 바라본 망주봉의 매력이 강했던 모양이다.
명사십리를 비롯한 평사낙안의 갯펄이
환하게 시야의 전면에 자리했다.
일망무제로 펼쳐진 바다 끝에는 마침내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다.
조밀한 풍경 위에 자유의 유쾌함이 더해졌다.
한여름 냉장고를 열고
시원한 수박을 꺼내먹는 그런 청량감이었다.
구속이 없는 상태.
그런데 따지고 보면 누가 나를 구속한 적도 없었다.
자유와 구속의 의미가
산봉우리 위에서 겉돌며 생각을 툭툭 건들었다.
사랑,
자유.
우리는 늘 이런 언어들을 가슴에 담고 산다.
그러나 이런 언어를 구어체로 쓴다는것은 어딘지 어색하다.
사랑과 자유는
글 혹은 타인의 말에서나 느낄 수 있는 일종의 문어다.
망주봉 위에서 느낀 자유와 구속의 복잡한 감정.
과연 자유의 반대말은 구속일까?
나는 누구로부터 구속 당하지 않았지만
망주봉 위에서 더할나위 없는 자유를 맛보았다.
그런데 그 자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느낀 자유란것이 겨우
비오는 날 바위가 미끄러우니 산을 오르지 말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무작정 산봉우리에 오르고만 일종의 일탈에 지나지 않았다.
망주봉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것은
구속이 아니라 관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늘 하던대로의 삶.
관성.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는것은 구속의 힘이 아니라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생활습관이다.
그래서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관성인것이다.
아름다운 선유봉
내가 자유롭다는것은
내 삶의 도전을 저해하는 구속의 장치들이 비교적 느슨하다는것이다.
그래서 결정이 비교적 자유롭다.
나는 내가 구속 상태임을 자각할 수는 있지만
삶의 관성에는 이런 자각이 없다.
가오가소스산의 프로메테우스처럼
무한 반복의 삶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실존적 자각이야말로
내가 삶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나
내 자유 의지를 확실히 하는 단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철 진난 해당화
해당화 열매
대장도
망주봉에서 자유를 느꼈다.
그런대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유의 본질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이었다.
학창시절 나를 들끓게했던
실존의 망령이 되살아나 나를 또 괴롭힌다.
그런데 그 존재와 자유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본질에 대한 청사진은 사실 애초 어디에도 없는것이다.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하늘에 그 답을 물은적도 없다.
자유의 본성에 관한한 교과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본질에 우선 해 존재하고
끊임없는 선택을 통해 삶을 이끌어 간다.
선택이 없는 삶이란 관성과 같다
실존의 적인것인것이다.
가을이 오면
진정 가을이 오면
피안의 섬 그림자 짙어지고
꿈은 소녀처럼 다가온다.
하얀 등대에 뜻하지 않는 그리움이 내려앉고
꿈은 물결처럼 가물거린다.
꽃들이 품은 검은 열매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는 무슨 열매가 여물고 있을까.
마치 그 답을 알기라도 한듯
섬은 의미있는 미소로 웃고 있었다.
- 후 기-
인간의 자유가
개인의 선택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인간은 스스로 섬이 되었다.
나는 자문한다
섬이 된 나는 온전한가.
불안과 고독이
파도처럼 엄습하는 바다에서
나는 섬처럼 세상과 대치한다.
구름에 가려진 태양의 그늘이 생각을 맑게했다.
아무려면 어떤가
혼자여서 더없이 좋은 하루였다.
이루마(Yiruma) / Kiss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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