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풍면 은티마을
구왕산 -희양산 은 충북 괴산 연풍면과
문경시 가은읍의 접경에 놓인 산으로
대망의 백두대간이 통과 하는 구간이다.
백화산을 일으킨 소백산 줄기가 남으로 휘어지며 험준한 산세를 이루는데
그 산들 중의 하나가 희양산으로
삼면이 수려한 바위벽으로 이루어져
주위 산을 찾는 이들에게는
늘 희원의 대상이된다.
문경쪽 산 아래에는 우리나라 최후의 청정 사찰이라고하는
봉암사가 있다.
봉암사는 1947년 성철스님을 비롯한 청담,자운,보문,우봉스님등이모여
한국 불교의 화두선풍을 재정립한 사찰로
일년에 딱 한번 초파일날에만 일반대중에게 공개되는것으로 유명하다.
사과밭 사이의 들머리
사과가 한창 익어간다
하늘이 따뜻한 햇살을 일주일만 더 주어도
더이상 견줄바 없는 명품 사과가 탄생하였을것인데
남쪽 바다에서는 태풍이 올라와
수확을 앞둔 농민들의 수심은 깊어간다.
소리만 들어도,
한발짝 발을 걸쳐놓는 영광만 있어도
늘 가슴이 설레이는
백두대간 길.
구왕봉 방향의 완만한 들머리
운해
구름 바다에 섬이되어 갇혀버린 산
마당 바위에서의 조망
구왕봉 정상
정상에 도착하니 마녀님,소리님 ,그리고 산대장이
막 식사를 끝마치고 있었다.
배가 고프지 않아 그냥 그들을 따라 나서려다
로프를 타다 지칠 일을 생각하고
햄버거 하나 뱃속에 근근히 우겨넣는다.
눈물이 아닌 빗물을 섞어 먹은 빵이어서 그런지
뱃속에서 빵조각이 맹랑하게 겉돌았다.
속이 거북햇지만
뒤늦게 고무신님 일행이 도착해 증명 사진 한장 찍어주고 함께 출발.
아! 희양산
정상부의 화강암 바위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비오는 산길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로 나선 산행이다.
풍경 하나,느낌 하나가 다 덤이다.
예상치 않은 맑은 풍경에 기분이 상기된다.
기다리면 어떤 놀라운 풍경이라도
눈 앞에 나타나 줄것만 같은 기분 좋은 전조다.
희망이 고통 위에 덧칠되며
발길에 힘을 북돋운다.
주흘산 조령산 대야산 황장산 대미산 청화산 둔덕산 백화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수많은
山群을 거느린 이곳 문경과 괴산은 산꾼들에게는 마니아가 생길 정도로
아름다운 명산들이 즐비하다.
한번 그 풍경에 빠져버리면 헤어날 수 없는
처녀의 치마폭같은 산.
그 산들의 중심에 희양산이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로프구간.
로프를 쥘 때마다 흙탕물이 줄줄 타고내렸다.
지름티재
원래 이곳부터 떡대같은 스님이 지켜서서
산꾼들의 발길을 원천 봉쇄하는 바람에 악명의 전설이 자자한 구간이었다.
스님을 피해 산꾼들은 미명의 새벽에 이곳을 통과 해야했다.
지금은 워낙 "깡패스님"에대한 민원이 많이 들어와
괴산군청과 합의 하에 산길을 대정비하고
스님들이 철수한 상태라고 한다.
악명높은 로프구간
일제 강점기 대처승류의 불교에 기를 펴지 못하던 한국 불교 중흥을 위해
젊은 승려들이 의기투합한것이 봉암결사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사찰들이 임야소유권을 가지게 된것은 바로 일제의 덕이다.
조선시대에는公山無主라 하여
경국대전에는 삼림을 개인이 점유하면 볼기 80대를 때린다고 명시되어있다.
그런데 일제가 전국 삼림 조사를 마치고
국유림중 불요존치의 임야를 특별연고자에게 사유권을 인정해 주었는데
이 법령에 따라 산속의 사찰에도 임야가 무상 제공되었다.
당시에는 사찰이 총독부 산하기관이나 다름없었으므로
무상으로 준것처럼 되어있으나
사실은 국유지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국가가 사찰에게 관리권을 위양한 샘이된다.
이를 미끼로 일제는 1911년 사찰령을 통해
사찰에대한 전권을 행사하며
한국 불교를 압살시켜 나갔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바람에
사찰 주위의 삼림은 사찰 소유로 남게되었고
산꾼들은 발길을 제한 받게 되었다.
금지된 목책을 보며 어쩐지 좀 억울하다는 생각의 근원에는
이런 기막힌 역사가 숨어있는것이다.
정상석이 없는 희양산 정상
괴산에는 이름 그대로 35개의 명산이 있는데
이중 연중 오를 수 있는 곳은
군자 칠보 도명산과 같은 국립 공원에 속한 산과
시선봉 마역봉 마분봉 금단산 박달산 주월산 성불산 보광산등 11곳 뿐이다.
나머지 24곳 중에 14곳은 국립공원 비법정 탐방로로,
나머지 10곳은 산불예방을 목적으로 입산이 금지되어있다.
아무리 자연이 우리代에서만 보고 즐길것이 아니라 후대에 물려줘야 할것이라고는 하지만
어쩐지 뒷맛이 개운찮다.
-펌-
한국 불교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한국 불교는 달마조사의 선맥을 이어왔는데
그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구산선문이 근간이 된다.
그 구산선문중 하나가 희양산문의 종찰인 봉암사다.
해방 직후인 1947년에는 성철을 비롯해 청담, 자운, 향곡, 월산, 혜암, 법전 등이
봉암사에서 한국 불교를 바로잡자고 다짐을 하고 수행에 들어갔다.
이것을 봉암결사라고 한다.(여름과 겨울 3개월 안거에 들어가는 것을 결제라 하고, 9개월 이상을 결사라고 한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에서 희양산 봉암사(鳳巖寺)로 가는 길에는 이정표가 없다.
1982년 조계종 종립 특별선원(禪院)으로 지정되면서 산문을 닫아 걸었기 때문이다.
일반 신도나 향화객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일년 중 하루 사월 초파일 뿐이다. 곧 봉쇄된 성역(聖域)이다.
온통 직선인 세상을 벗어나
직선이라고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세상에 놓인다.
세상의 살풍경을 어루만지듯
촉촉히 비가 내린다.
세상은 몽롱하고
마음은 유순하다.
이렇게 조금씩 순화되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바닷가 몽돌처럼 착해지는 날이 올까.
우리가 추억하고 꿈꾸는 것들이
모호하고 흐릿한 가운데
비구름이 침침한 기억을 가다듬듯
산을 빗겨 지나간다.
마음이 가라앉자 용서의 마음이 일어난다.
용서할 바 없는 세상을 용서한다.
아마 나 스스로에 대한 용서일것이다.
빛이 뽀얀 기억처럼 아름답다.
비가 온다
세상의 첨예함이 흔들거리고
조가비같은 차분함이 켜를 이루어 쌓인다.
구왕봉 -주치봉 -악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구왕봉의 위용
시간은 인간을 늙게하는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수용하게 하는것이다.
노화는 숙명이 아니라 선택이다.
시간이 선택되어 질 때
인간은 더 실존적이다.
산을 향한 나의 선택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그 선택 앞에 용맹해지리라 저 푸른 청산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산을 오르면
삶에대한 새로운 자유와 기회가 생긴다
시간에 대한 기회이자
삶을 향한 답이다.
개의치 않음
얽매이지 않음
이것이 오늘 내가 산행을 통해 얻은
희망의 메시지요
응답이다.
마분봉,악휘봉 방향
산이 좋으니
나도 좋다.
나절로
산절로
산이 되고 싶을 때 마다 한장.
산성터 삼거리
-펌-
▲ <통일신라시대 산성인 희양산성은 가은읍 원북리 봉암사 뒷산인 희양산정상 주위에 있는 석성(石城)이다.(15:35)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가은현 북쪽 15리에 옛 성이 있으니, 삼면이 모두 석벅(石壁)이며 옛 군창(軍倉)이 있었다.
" 하였으며,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희양고성(曦陽古城)은 가은폐현의 북쪽 15리에 있는데, 삼면이 모두
석벽이다."고 하였다. 삼국말기에 신라 경순왕이 이 성에서 견훤과 싸웠다고 한다. 후백제와 신라의 각축장이었다.>
시루바위
돌아가는 길
바둑에서 하나의 수는 그 직전의 수가 원인이 된다.
따라서
지금의 이 여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 산행을 복기해 보아야 한다.
참 만족스러운 산행이었다.
비 속에서의 고생을 위로하고자 하는 미사여구가 아니라
사실이 그러했다.
오랜 시간 바다 속을 떠돌다
마침내 파라다이스에 닿은 그런 기분이었다.
고마운것은
그 거친 물 속에서의 하루가
내게 충분한 의미와 보상이 되었다는거다.
나는 희양산을 간절히 소망했고
오늘 산행은 그 답을 성실히 전해 주었다.
인생은 이래서 살만한거다.
그윽한 대간길
어미의 품같다.
그 아래 슬기로운 겨레가 살고
풍요의 들은 빛난다.
시루봉
홍로
그 어느 사과보다 빨리 붉어지는 홍로
홍로의 달디 단 단맛이 빗물처럼 뚝뚝 떨어지는것 같다.
능금 소묘
여러분은 사과를 몇번이나 보았습니까
수천번,수만번
아니 여러분은 이 사과를 한번도 보지않았습니다.
영화 詩에 나오는 대목이다.
나는 과연 사과를 본 적이있는가.
보았다고도 할 수있고 보지 못했다고도 할수 있다.
나는 아직 한번도 사과에대한 시를 써 보지 않았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딱 한편의 시가 생각난다.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구절이다.
중학생 때 쓴 시이다.
사과
말없이 떨어지는 과일과
몸으로 우는 나무를
나는 사랑한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예언서요
좌우명과 같은 시구
내가 이 글을 쓸 때만 하여도 나는 사과나무를 본 적도 없다
순전히 시적 상상력이 만들어 낸 시다.
오늘 은티 마을을 지나며
나는 비로소
말없이 떨어지는 과일과
몸으로 우는 나무들을 보았다.
마치 예언이 증명된 느낌이었다.
잿빛 하늘 아래에서
울고 있는 사과나무.
그 삶을 은유하는 가을 풍경 속에서
나는 젖는 줄도 모르고 사과나무를 바라보았다.
- 후 기 -
동티마을을 선연한 그리움으로 물들이던
사과밭 위로 태풍 산바의 거센 비바람이 불어 닥쳤다.
불운을 앞둔 운명을 시사하듯
모처럼 티비에서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이 연주 되었다.
비바람에 떨고 있을 붉은 사과처럼
충혈된 눈이 더 뻑뻑하게 느껴질 무렵
태풍은 현실이 되어 버스를 흔들었다.
오늘 하루가 불현듯 비바람에 씻기며 지나갔다.
어둠 속에 근심이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지나간다.
희양산의 하얀 백운대 바위가
마음 한가운데 머릿돌처럼 자리잡아
애써 근심을 눌러 주었다.
이 모든게 꿈결같았다.
오늘따라 돌아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타키나 간주곡(Intermez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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