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고있다.
다가오는것과 떠나가는것이
자연스럽다.
세상만사가 삼라만상의 변화 중에 자연스러우니
마음이 또한 편안하다.
금강송 숲길 3구간: 18.7km
소광2리-저진터재-너삼밭재-소광천 입구-화전민터-
-금강송 관리사-오백년 소나무-못생긴 소나무-
-미인송-원점회귀
생태관광이란 말이 낯설다.
생태관광이란
"환경보호와 지역주민의 복지향상을
염두에 두고 자연지역으로 떠나는
책임있는 여행이다."
responsible tourism.
금강송 숲길
무려 40년동안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은 숲길이 개방되었다.
한때 무장 공비들의 출몰지로,
그보다 더 옛날에는 보부상이 다니던 길로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에나 어렴풋이 지명이 등장했던
잊혀진 국토의 미답지.
그 이국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숲길을 탐방하였다.
출발지는 소광2리 금강송 펜션이다
오래된 폐교를 주민들이 불하받아 펜션을 만들고
산림청과 울진 군청이 힘을 합쳐 최근 유행인 "길"을 조성하여
일반인에게 선보이게되었다.
해설자의 설명중에 조성과 보전이라는 모순된 언어가
몹시 수상쩍었으나
늘 그렇듯이 어수룩한 이 땅의 정책들을 원망하며
그냥 입다물고 말았다.
탐방객수를 100명으로 제한하고
훈련된 숲해설자를 동반하여 숲길을 걷게된다.
hardware는 일단 그럴싸하다.
그런데 출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한시간 늦게 도착한 일행이 불만이어서인지
해설자는 퇴근 시간을 들먹이며 우리를 위협했고
입안에 도는 보리알처럼 해설은 성의없이 겉돌았다.
들을것도 없는 해설을 들을 이유가 없으니
나는 외톨박이처럼 뒤쳐져
그야말로 숲의 재미를 만끽하며
혼자 술을 마시는 술꾼처럼
내 시간을 즐기기로했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미가 모호할수록 좋다.
생태관광의 key word가 공정여행,책임여행이라는데
도데체 공정여행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 알수 없다.
책임여행은 또 무어란 말인가?
책임의 주체는 또 누구인가?
그러니 애초부터 잘못 디자인된 길임에 분명한데
중요한것은 의미가 있기 전에
길이 먼저 있었다는거다.
허접 쓰레기같은 ism은 늘 말썽이다.
의미가 붙기전의 길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숲의 아름다움은 내가 더 잘 안다.
의미의 한계를 조롱하기 좋은 딱 그런 숲이었다.
구절초
가을의 민낯 구절초.
구절초를 구태여 색으로 느낄 필요는 없다.
꽃이 주는
연보랏빛이 감도는 생멸의 눈부심을 부인할 수 없으나
구절초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구절초를 맨 얼굴로 대하기를 좋아한다.
꽃과 나 사이에 놓인
짧은 거리의 간격조차 훌쩍 뛰어 넘어
꽃의 본질과 내가 마주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다.
꽃은 늘 그렇게 순결했다.
강활
또 광활은 무엇인가
기름나물, 당귀 ,구릿대...
나는 허연 꽃대를 왕관처럼 쳐받힌 미나리과의 꽃들을 보면
울렁증이 우선 생긴다.
그래서 이런 류의 꽃들을 만나면 모르는 척 얼른 지나쳐 버리는 습성이 생겼다.
강활이라
어딘지 약초 냄새가 나는 구식 꽃이름이다.
슬슬 걸어와 저진터재 넘는다.
개살맞은 산림 안내원은 무엇이 바쁜지
사람들을 내몬다.
너야 떠들어라 나는 내 갈길을 가겠다는 마음으로
편안한 발걸음을 옮긴다.
이런 숲길에서
재촉을 받는다면 무슨 기분으로 숲을 즐길것인가.
갈길이 멀지만
마음은 급하지 않다.
속새
어두운 숲에 여리디 연한 빛이 들자
숲은 금방 푸른 야광봉처럼 빛이 났다.
빛이란 본디 물처럼 색갈이없는 것이지만
사물에 스치기만 해도 본래의 생명감을 되살려 준다.
색상을 더 vivid하게 만드는것은 명도이다
색에 밝음을 주는 빛.
내 마음에 뽀얀 불빛이 드는 느낌이다.
너삼은 고삼이라고도 한다.
효능은 인삼인데 맛은 쓰다고 붙인 이름이다.
콩과 식물로 뿌리는 약용이다.
너삼대를 삶아먹고 당뇨가 나았다던 그 분.
요즘은 통 병원에 들리지 않는다.
당뇨가 악화되어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더니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계실까?
너삼에 대한 맹목적 신념으로 현대의학을 맹열히 거부하시던
그 안타까왔던 순간.
나는 아무 대꾸도 못하였다.
그분은 목숨을 방기한것일까
너삼이란 고약한 이름이 내 머리속에는 깨알처럼 남아있다.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내가 좋아하는 만화 미생에 나오는 대목인데
조치훈 9단이 하신 말씀이란다.
바국 한판 이기고 지는거
그래봤자 세상에 아무 영향도 없다.
그래도 세상과 상관없이
나에게 전부인것이 바둑이다.
바둑 대신 이 말에 산을 대입시켜도 용케 뜻이 통한다.
내가 산을 하나 더 오르고 덜 오르는것이
세상에 무슨 의미랴.
그래도 세상과는 상관없이 나는 산에 오른다.
나에게 산행이 전부란듯이,
유일한 길이란 듯이.
세상 만사 삶의 깊숙한 底部에는
이처럼 도도히 통하는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그 세상밑 의미를 뒤지는 일이야 말로 산행이 아닐까.
세상 풍경 속에
내 발걸음 속에
마치 그림자 처럼 살아있는 그 의미의 흔적을.
한걸음 더 빨리 걷는거
그래봤자 산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내 걸음걸이는 세상을 학습하기에 늘 부족하다.
천천히 홀로 걷기가 내 유일한 장점인 가운데
오늘 나는 내 취향과 신체적 조건에 딱 맞는 길을 선택한 셈이다.
느림 속에 아름다움이 넘쳐났고
빠름으로 허물어진 세상을
느림으로 서서히 치유해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고개 넘어 숲길을 빠져나오자
비로소 소나무의 멋진 자태가 나타났다.
거울처럼 맑은 명경수의 냇물도 흘렀다.
철학과 음악이 무르익는듯한 아담한 풍경이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도 좋을
편안한 길을 그야말로 유유자적하게 걷는다.
겉은 아무리 아닌척해도 속은 이미 가을로 꽉찼다는듯이
가을꽃이 지천이다
꽃이름을 모른다고하여 사람을 타박할 일은 아니지만
꽃들이 마치 제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는듯 처연했다.
한치의 구김도 없는 얼굴이기에
자태 또한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각시취
꽃이름에 대한 소고
산길을 몰랐을 때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꽃이름도 몰랐다.
산길을 걸으며 이웃처럼
나와 대면하는 많은 꽃들을 보고
나는 비로소 꽃이름 하나 온전히 불러 주고 싶었다.
산천에 흐드러진 무수한 꽃들
이름 하나 알고가면 어떤가.
산길을 걸으며 그들을 즐기는 이의 정성이라 생각하면 될일 아닌가.
그러나
무수한 사람들이 다 개인이듯
개개의 꽃들을 알아가기가 정말 힘이든다.
밥먹듯 입에 붙은 이름도 아니요,
이 산에서 본 꽃 고개 넘으면 이미 잊혀질 이름인데,
잊고 싶지 않아 외고 또 외어도 잊어버릴 이름인데,
그래서 꽃이름 안다고 하기에도 부끄럽고
더 나아가 꽃이름 모른다고 핀잔 주기 또한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외우고 잊어버리는 것이어찌 꽃이름 뿐이랴
바람에 돌이 닳듯
내 머리 속을 지독히도 빨리 지나가는세월의 바람.
아! 내기억도 그 바람에 이렇게 지워지는 것을.
다만 그 바람이 너무 빠르기에
이제 주체할수도 없는것을.
참취
칼잎 용담
물매화
하늘과 땅이 남녀처럼 맞붙어
삼라만상을 분만하기시작하던 창세기에
맨 처음 태어났을것같은 청순한 모습의 물매화.
나는 사진속의 물매화를 여러번 만난적은 있지만
매화라는 이름 때문에 이른 봄에 피는 봄꽃인 줄만 알았는데
오늘 마침내 그 꽃을 보았다.
고맙고 감사해라
너를 만남으로해서
오늘 숲길의 의미는 되살아 나고
추억은 더 화사한 색을 입었다.
아 행복해라.
네가 마음에 닿던 그 순간.
행복을 의식하기란 쉬운일도 아닌데
내가 너를 경험하면서
이렇게 행복을 실감하는 구나.
고마와라 물매화여
아름다워라 물매화여.
이삭바꽃
투구꽃인줄 알았는데...
내가 알았던 투구꽃은 이삭바꽃을 투구꽃으로 알기전의
어렴풋한 투구꽃에 불과했다.
숲은 언어다.
언어에 감금되고 언어에 탐닉하듯
그렇게 숲에 갇힌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처럼
설명할수 없는 긴 수직의 관념속을
나는 생각없이 걷는다.
숲이 곧 언어다.
천남성 열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빛이 없는 땅속 지렁이처럼
나는 긴 숲의 그림자에 갇혀 숨쉬고 있었다.
대지의 속삭임과 미세한 움직임.
그 어느것 하나 놓치지 않고
마치 가는 바람에도 툭하고 터지던
용추사 뒤란의 쓸쓸한 물봉선 씨앗처럼
나는 오감을 곤두세워
한걸음 한걸음 조신하게 걸어나갔다.
일행을 멀찌감치 떠나보낸 숲은 죽은듯 고요했다.
가을은 열성으로 꽃들의 가지 수를 불려나갔지만
스쳐 지나가는 발자국은 냉담했다.
새도 울지 않고
누구도 숲을 해설하지도 않을 무렵
나는 숲을 지키며 다북하게 피어있는 꽃들을 보았다.
고개를 낮추어 그들과 인사했다.
숨을 멈춘 내 관자놀이에는
팝콘처럼
맥박이 툭툭 튀었다.
세상이 내 심음에 조율되었다.
비로소 숲을 주인으로 맞이할 의식을 치룬것이다.
숲이 먼 사바나에서 하품을 하는 야생 동물처럼
느리고 게으른 동작으로 문을 열었다.
팽팽한 풍선으로부터 피시시 바람이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빠져나오는 바람을 역류하여
숲으로 향했다.
아주 느린 기분이 들도록.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다.
오토바이 운전자와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물집들,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중, 자신의 나이를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한다.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 게 변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그는 비신체적, 비물질적 속도, 순수한 속도, 속도 그 자체,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밀란 쿤델라-
꽃향유
산꼬리풀과 비슷하다.
향을 확인하지 못해 못내 아쉽다.
가시오가피 나무
오백년송
근사한 금강송 숲길을 걷는다.
숲에의서의 기원
모든 형이상학적 근심이 되는 언어의 중독으로 부터
자신을 끌어낼것.
근심으부터 내 마음을 해방시킬것.
자연과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접촉을 이룰것.
느림과 기억 사이,
망각과 빠름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려면 발걸음을 멈추어서라도 천천히 걷게되고
무엇을 잊기 위해서는 빨리 걷게된다.
내 이 어슬렁 거리며 걷는 걸음의 마술 속에는
원초적 게으름의 미학이 곁들어있는 모양이다.
나무결
치유의 숲
피톤치드, 음이온, 면역력.
숲의 치유을 논할 때 최근 따라다니는 단어다.
그러나 실제 이런것들의 효능 제대로 검정된것도 아니고
이런 시류에 따르는 약리작용을 얻기 위해
산을 찾는것도 아니다.
숲의 치유는 마음의 치유다.
마음을 온전히 우리가 발걸음을 배우던 그 시절로 되돌려 놓는거다.
그것이 착한 마음,
인간을 위한 더 이로운 마음이기 때문이다.
집착과 욕심이라는 병든
마음의 병리현상을
싱싱하고 새로운 가치로 되될려 놓는것이다.
숲을 걸어도
욕심에 가득한 마음으로 걷는다면
걸어도 이미 걷는것이 아니다.
마음을 내려 놓았다면
그 내려놓은 증거를 몸으로 느껴야만
비로소 내려 놓은것이된다.
이것이 치유의 목표이다.
물매화
아내와 맑고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촉탁을 한다.
피로한 발이 더없이 시원하다.
휴식이란 이런 맛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닐까
발로부터 시원한 냉기가 솟구쳐 올라 심신이 이완되었다.
죽은 애기뱀
모든 어린것들의 죽음은 슬프다.
용담 :칼잎 용담
긴 길을 돌아왔다.
마침내 끝이 보인다.
꿈이 가까운 곳에 나무처럼 서있다.
가까운 곳에 꿈이 있다는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멀리있는것에 대한 욕심,
힘들고 속쓰리는 공허,
그런것이 아닌 아주 구체적인 꿈 말이다.
꿈이, 가벼운 열정이
짝사랑하던 설레임처럼
나무 그늘을 만들고 있다.
꿈이 이루어지지 못한들 또 어떠랴
꿈은 이처럼
내 곁에 머물며
행복의 기회를 주는것인데.
사과 한알 깍아먹으며
고개마루에서 쉬고있다.
고개의 진정한 의미를 알것같다.
그 옛날 보부상들이 짐을 지고 무시로 넘나들던 길목.
그 옛날 사람들이 누렸던 휴식의 달콤함이
오늘에 그대로 전해진다.
오리방풀
기름나물
산길을 걸어왔다.
좋은 하루였다.
설령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하여도
관용이 미흡함을 덮었다.
고독을 사랑하면서도
고독을 견딜수 없고,
돈을 배금하면서도
내 주머니의 돈으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모순과 위선은 엄연히 다르다.
모순은 악이 아니므로 선으로 위장할 필요가없다.
모순된 삶에 의의를 제기할 필요도, 뒤틀린 결론을 단죄해서도 안된다.
모순은 모순일 뿐이다.
세상을 설명하는 다채로운 해석학의 하나일 뿐이다.
세상이 늘 새로운것은
세상에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지침서가 난무하는 오늘
산길은 늘 나의 교과서다.
나를 지탱하는 스틱이요
시든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는
탈무드다.
love rock
황지우의 늙어가는 아내
그래서,그래서
내가 살아야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가야할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 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의 손 끝에서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다.
-끝-
- 후 기-
죽을 것만 같았던 사랑도,슬픔도 ,원망도
다 흘러가기 마련이다.
물처럼,길처럼,구름처럼.
나는 오늘 물과 하늘과 길과 더불어 놀다 간다.
한 chapter의 시간이 흘러간 후
세상은 울고난 후의 마음처럼 맑았다.
이런 새로운 각오로 새로운 사건에 기회를 주어야한다.
처음에 느낀 순수함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키워낸 상처들로 인해
더 멋있고 윤택해진 선택들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세상은 이처럼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의 것이어야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드보르작 / 낭만적 소품 Op.75
No.1- Allegro moderato
Kyung Wha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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