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탑
교통 피로감때문에 한수 이북의 산으로는 산행하지 않겠다던
내 평소 신조를 조금 후퇴시켜 경기도 양주 땅
임꺽정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불곡산을 찾았다.
임꺽정을 이 땅의 의적으로 부각시킨 이는
벽초 홍명희다.
월북 문인으로 한동안 우리 기억 밖으로 위리되었지만
그는 이 땅의 3대 문필로 일컬어질만큼
소설 임꺽정에서 보여 준 그의 필력은 실로 대단했다.
한낱 도둑의 수괴를 의적으로 만든것은
민초를 향한 그의 사회주의적 신념이었다.
양주 별산대로 유명한 양주 땅 불곡산.
하늘은 한점 토달것 없는 가을이었고
그러기에 빈약한 역사는 더없이 쓸쓸했다.
불곡산에는 보루가 많다.
비록 400m 급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주위가 탁 틔여
사방을 경계하기 좋은 요충이다.
도봉산과 그 뒤로 멀리 북한산 백운대가 보인다.
대지는 하늘의 감동을 따라가지 못했다.
물샐틈 없는 에메랄드빛 하늘 아래
천연 염료로 나염한 잿빛 무명옷처럼
원경은 맥없이 풀어졌다.
대기가 한없이 따뜻해진 결과이다.
산은 미쳐 단풍을 품지 못했고
빛은 박무에 제 색을 잃고 방황했다.
옅어진 도봉산 그림자 뒤로
그리움은 다 옅은것이라고 말하려는듯
북한산 백운대가 담담하게 비켜서 있었다.
불곡산은 불국산으로도 불리운다.
불국산 최정상부는 상봉으로 470m에 불과하다.
하지만 산세가 오밀조밀하고
산능에 오르면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과 같은 명산 준령의 면모를 두루 조망할 수 있을뿐 아니라
북으로는 선율처럼 이어지는 감악산 마차산 소요산등의 아련한 모습을 동시에 감상할수 있다.
그런데 불곡산의 불곡은
불교와 연관지어 생각되기 쉬운데
원래는 붉은산에서 유래되었다.
옛날 이 산에는 회양목이 많아
겨울이 되면 온통 산이 붉게 보일정도 였다고 한다.
하지만 산을 오르는 내내 회양목 한 그루 볼 수 없었으니
이것은 회양목이 지닌 경제림으로써의 가치와
쉽게 착근해서 자라지 못하는 까다로운 나무의 성질에 기인한다.
불곡산 정상
회양목은 어떤 나무인가.
수질이 단단하여 도장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하여 도장 나무라고도 한다.
회양목이 수난을 받은것은
조선시대 호패제도 때문인데
일반 백성들은 회양목으로 호패를 만들었다.
나라에서는 법으로 회양목을 보호하기에 이르렀으나
아마 그것도 쉽지 않았나보다.
좌우간 잠시 이야기가 옆길로 세어나갔으나
불국이니 불곡이니 하는 불교의 색깔은
이 산 어디에도 볼 수 없고
희고 긴 머리를 빗어시던 외할머니의 회양목 얼레빗의 추억이
고요히 떠오른다.
펭귄바위
불곡산 정상을 오르는 산님들
정상은 이미 사람으로 꽉 차고 정상석을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을 장착시킨 후 더 기승을 부리는것 같다.
무엇을 추억하고 싶다면 얼마던지 아름다운 풍경이 많을 터인데도
오로지 별 감흥도 없는 정상석만을 고집하는 풍토.
촌스럽다.
산부추
씹으면 아삭거리고 마늘 맛이나는 산부추.
산부추가 한창인 계절이다.
가을이 느린 속도로 밀려 온다.
암릉을 오르는 발걸음 또한 느리다.
힘이 부치면 부칠수록 재미가 되는 이 투박한 놀이를
사람들은 좋아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하여도
변하지 않은 원시의 유전자가
계절에 더해 꿈틀거리나보다.
나는 걷는다.
나는 움직인다.
걷는다.
움직인다.
걷는것인지
움직이는것인지를 모르겠다.
산에 오르면 정상석이 아니라
정상을 담아야한다.
불어 오는 바람만 외로운 정상.
진더기처럼 다닥거리며 사람들이 붙어 있는 정상.
나무에 둘러쌓여 조망 하나 없는 오지그릇처럼 오목하기만한 정상.
사위가 탁 트인 호방한 정상.
거친 바위와 바람만 앙칼진 정상.
우련하고 아득하여 한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싶은 정상.
평화와 안식의 정상.
정상
정상
정상
.
.
.
가을 하늘이 샘처럼 그리움을 쏟아낸다.
맑은 술을 마신듯 가을에 취한다.
흰구름이 언어를 앗아갔다.
말할 수 없는것들이 먼 곳에서 젖은 솜같은 감성을 만들어낸다.
느리고 애잔한 선율의 노래가 흐른다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은 슬픔이 옹이처럼 시야에 박혀
마음을 붙든다.
가을이다
보내지 못해서 가을이다.
떠나지 못한 채 서성이기에 가을이다.
불곡산 주봉인 상봉
상봉에서 바라 본 상투봉
봉인된 편지처럼 가을이돌아왔다.
위태한 모습으로 걸린 구름 뒤로
하늘은 젖은 눈처럼 빛났다.
散骨이 되어 말들이 날아다닌다.
침향에 취한 몽롱한 기억들이 뭉게 뭉게 살아난다.
세월이 오고 가듯
사람들 또한 오고 가는데
더위를 잊으려 마신 술에
내 마음이 또 취한다.
산행이 한가하니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한가해진 나는 쓸데없이 내 모습을 자꾸 담게된다.
볼품없는 모습을 폼으로 밀고나간다.
아무래도 어색한 모습.
오십 중반의 나이.
나를 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중간함.
이런것이 중년이다.
마지막 으로 넘어야할 임꺽정봉
상투봉에서 바라 본 상봉
임꺽정봉으로 가는 멋진 암능구간
산양처럼 바위에 붙어가는 등산객들
산양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면
인간은 분명 산양과 유사한 습성을 가졌다.
인간도 그들처럼 바위에 붙어 위태히 걸어가기를 좋아한다고 여길것이다.
인간은 세상 동물의 특성들을 고루 취하고
그들을 극복하였다.
인간은 흉네를 잘내는 동물이니까.
하늘이 갈증처럼 눈을 유혹한다.
유혹하는것은 비단 내 눈 뿐만 아니라
산이며 들이며
하늘을 바라보는것이 다 유혹 속에 놓여있다.
뜨거운 갈망이기에
산은 저토록 뾰족한 얼굴로 하늘을 마주하는 모양이다.
나도 어느듯 바늘처럼 뾰족한 갈망이 되어 길을 걷는다.
임꺽정은 양주 땅에서 태어났다.
백정 출신이었다.
탐관오리들의 수탈이 극심했던 시대에 태어나
관아를 털고 관원을 살해하였으니
영 개념없는 잡도둑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집사인 서림의 배신으로 황해도 구월산에서 남치근의 토벌대에 붙잡혀
처형 당하였으니
그의 활약 기간은 대략 명종 14년 부터 17년까지 3년간이었다.
양주의 진산인 불곡산에 임꺽정의 이름이 붙여진것은
소설과 만화 영화등으로 꾸준히 그의 이미지가 의적으로
천착된 결과이다.
불곡산에 그의 산채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산 이름 이외에 그를 떠올릴 아무런 유적도 남아있지않다
막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 단풍 사이로 악동들의
참지 못하는 성정처럼 암봉이 재잘거리며 솟아있다.
가을 햇살이 천수 보살처럼 너그럽다.
익숙한 초가을의 정취다.
산들이 앞마당처럼 가깝다.
너그럽되 虛하지 않고
가까이 있되 막히지 않은 풍경.
이런것이 가을 풍경이다.
불곡산의 재미는 아기자기한 암릉과 봉우리를 오르내리는데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하산 시
동물 모양의 기암괴석을 구경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신들의 감추어둔 미로를 따라 내려가며
이런 저런 모습에 찬탄을 자아낸다는
그 마지막 구간이 눈앞에 보인다.
공깃돌 바위
임꺽정이 공기돌로 사용했다는 바위다
하늘은 오늘 하루 종일 분주하다.
구름이 허공 중의 고요를 흔들며 몰려다닌다.
야유회처럼 산행이 즐겁고
소년처럼 마음이 들뜬다.
햇살에 그대로 노출된 채
늙은 나이에 지워지지 않는다는 기미를 걱정한다.
이마에 땀이 흐른다.
반가운 바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더위에 짓눌리어 단풍도 오던 걸음을 멈추어 멈칫거린다.
저자처럼 소란한 일행들과 어울려
즐거운 마음으로 산길을 내려간다.
사람들
르코르비제는
비행기는 날기위한 기계요
배는 항해를 위한 기계
집은 살기위한 기계라고 했다.
살기 위한 기계.
그만큼 집은 삶의 기능에 충실하여야한다는 뜻일게다.
산을 기계라 표현할 수는 없다
산은 만들어진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산은 삶을 위한 도구는 될 수있다.
세상 그 무엇도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동시에 치유할 수 있는 스포츠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한 산이 유일하다.
요가는 산행에 비해 지나치게 단조롭다.
삶의 도구인 산 위에
나는 콘베어벨트에 놓인 제품처럼 고요히 움직인다.
코끼리 바위
오밀 조밀한 암능을 따라 재미있게 하산하는 일행들
햇살을 머금고 환하게 빛나는 화강암처럼
산을 내려 가는 일행들의 마음 또한 즐겁기 한량없다.
불곡산 명물 악어바위
악어 바위
삼단 바위
비뇨기과 다녀 온 남근 바위
복주머니 바위
토끼구름과 복주머니가 대화를 하는듯한 익살스런 풍경.
해학과 익살이 없다면 불곡산 하산길은 의미없다.
세상은 관계와 관계가 만들어 주는 상황 속에 더 빛난다.
산,바위, 나무 개개의 정물로서의 가치보다
정물과 정물이 만들어내는 풍경의 대화 속에서
산을 걷는 의미가 오롯이 빛난다.
하나의 상황에 고착되는 사고는
산행의 가치를 축소시킨다.
산행은 我와 非我의 대화다.
도봉산의 유장한 그림자
쿠션바위
가는잎 구절초
그대 떠나간 빈 들녁에
개망초 고운 꽃들이 하얗게 피었네.
내 삶 어디쯤에서
그대 다시 만날까.
그 맑은 가슴을 마주할 수 있을까.
그대 두고간 노래 몇개
들꽃처럼 가난한 숨결 한묶음.
백창후가노래한 개망초 일부이다.
왜 떠나간것은 다 아름다운가.
그렇다고 다 떠나보낼 수는 없지 않겠나.
보내지 않아도
보내어 지는
가을이 한창 무르익는 불곡산을 내려오며
나도 저 산의 가난한 숨결이기를 기원한다.
- 후 기-
虛는 비어있음을 뜻한다.
크다란 空이다.
塞은 곧 막힘이다.
나갈 곳이 없다.
氣虛도 병이요
氣塞 또한 병이다.
세상이 하늘이나 바다처럼 마냥 虛하다면
마음은 의지할 곳이 없어 불안해질 것이다.
세상이 출구없는 방이라면
답답해 미쳐버리고 말것이다.
산을 걸을 때에
시야에 虛함을 적당히 막아주는 눈높이의 산을 만나면,
그 산들과 함께 걷는다면,
마음은 안정되고 즐거워 진다.
반면 사방 어디없이 탁 트인 마루금에 서면
마음은 벌써 외롭고 공허하다.
오늘은
막힘도 비워짐도 없는 가을길을 걸었다.
빈틈없이 꽉 채워진 수정같은 공기 때문인지
내가 걷고 있는것인지, 옮겨지고 있는것인지를
몰랐다.
세상으로 돌아오니
사위는 이미 밤이요
꽉막힌 어두움 위로
하늘에는 허무한 빛들만 무성했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
susanne lund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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