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178차 후기 울산바위-달마봉 : 수직과 수평의 설악산

poll™ 2012. 10. 15. 16:47

 

 

 

 

 

소공원-조계암-울산바위-흔들바위-달마봉-목우재

 

 

 

 

밤 10시 서면에서 버스를 타고

寅時가 지나서야 비로소 설악산에 도착하였다.

 

설악의 새벽은 늘 긴장감을 준다.

어둠 속에서 긴장이 삵의 눈처럼 번뜩였다.

 

김밥 한줄에 라면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설악산.

언제라도 고통을 담보할만한 멋진 산이다.

 

 

 

 

 

 

어둠에 가려

설악의 비장하고 처연한 색조의 아름다움을 모른 채

산을 올라야만 한다.

 

어둠이 등 뒤에서 궁금증을 덜추었다.

산은 어떤 모습일까.

 

울산 바위를 오른 적은 있지만 그것은

아주 오랜 기억의 한 부분일 뿐.

 

體錄을 통하여 글을 옮기듯

몸과 마음으로

설악을 다시 쓰야겠다.

 

 

 

 

 

뜻하지 않은

바람을 만났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바람이었다.

카메라가 흔들거리며 촛점을 흐려 놓는다.

 

손목에 힘을 주어 안간힘을 쓴다.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이 안스러웠다.

세상에 없는 크고 맑은 눈이었다.

그동안 아내의 눈을 참 오래토록 잊고 산 셈이다.

바람이 비로소 그 눈을 상기시켰다.

 

 

 

 

 

하얀 티아라를 쓴 신부처럼

눈부시게 화강암은 빛났다.

 

밝은 아이보리빛의 광채가 새벽 여명에 홀로 빛나는 가운데

그 영광을 시샘하듯 동해의 바람이 맹열히 불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누구를 해하는 바람이 아니라

마냥 아이의 심술같은 바람이었다.

 

바람에 냉기가 없었으므로

땀에 젖은 몸이 시원할 정도였다.

청량감이 거슬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감기가 걱정되어 패딩을 꺼내입었다.

 

세상과 대기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하늘 정원.

나는 거대한 바위가 뿜어내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을 느꼈다.

 

신새벽을 마다않고 산을 오른 이들을 위한

축하의 증표같았다.

 

오늘 일과를 다 끝낸듯한 성취감이 뒤따라 느껴졌다.

 

 

 

 

 

푸르스름한 아침의 여명을 뚫고

설악의 기운이 동해 바다를 마주보며 솟아올랐다.

 

해를 맞이하는 가슴이요

햇살을 되비출 거울같은 산이다.

 

아이의 손사래 같기도 하고

핏기 없는 여인의 손바닥 같기도 했다.

 

그 여리고 고운 손의 반지처럼

아침이 빛났다.

 

돌기둥에 부딛힌 바람은 미친듯 봉우리를 돌아다녔고

바위는 일상인듯 고요했다.

 

사람들은 적요를 깨면서 몰려다녔다.

바위 하나를 골라 얼굴을 갖다 대어 보았다.

 

까칠함이 기분 좋게 볼에 닿았다.

언제쯤일까

 오후의 수염처럼

아버지의 아주 오래된 느낌이 전해졌다.

 

 

 

 

기상을 알리는 트럼팻처럼

산정에 튤립꽃이 피듯

바위 하나가 묘한 얼굴로 사람들을 맞았다.

 

꽃이 차례로 벙그듯

아침이 파도를 이루며 산 너머로 전해졌다.

우무질의 운무가 계곡을 메우며

시야를 방해했다.

 

나는 금붕어처럼 깨지 않은 눈을 껌뻑이며

산을 훝어내린다.

 

산에 단풍이 들었는지도 모를 만큼

가을이 싱거웠다.

 

 

 

설악산 울산바위

873m

 

 

 

 

 일찍 일어난 아기새 한마리가 설악의 새벽을 깨운다.

구름에 가려 정작 보아야할 아침해는 보이지 않고

금빛을 뒤발한 구름만

바다를 차양처럼 가리고 있었다.

 

기대를 하지 않은 복권처럼

일출을 기다리지 않았다.

 

내게는 전생의 선업도 없고

이승의 파사현정도 없는 까닭에

어찌 행운을 바라겠는가.

 

이런 날씨를 준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읍할 밖에

 

 

 

 

 

멀리 되돌아가야할 달마봉이 보인다.

우리는 오늘 새벽 달마봉 들머리에서 문전 박대 당하고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울산바위로 쫒겨 난 신세가 아닌가.

 

예정대로라면 지금 이시간  우리 일행은 달마봉을 향해 걷고 있어야 한다.

오르지 못하는 산이 더 아름답듯

막 깨어나 세수를 마친 여인의 목덜미처럼

달마봉의 흰 단애가 슬프도록 아름답게 보인다.

 

 

 

애기새와 아침

 

 

 

 

사랑은 참으로 사념의 지질학적인 융기를 일으킨다.

며칠 전만 해도 매우 평탄한 벌판 과 비슷하여 아주 멀리 지면과 같은 높이에 한 덩어리의 관념조차 눈에 띄지 않았으련만,

이제는 그곳에 난데없이 바위처럼 단단한 산악지대가 나타난다.

마치 어떤 조각가가 그 자리에 끌로 새기기라도 한 듯,

분노, 질투, 호기, 부러움, 미움, 괴로움, 거만, 공포, 그리고 사랑의 거창한 군상으로 꿈틀대는 산악지대가 우뚝 서게 된다.

 

-마르셀 프루스트-

 

 

 

 

산에 빠진 사람들은

바위며 바람이며 수평과 수직의 수학적 분활까지

다 산으로 이해한다.

 

애닮음도

시적 상상력도 온통 산이다.

 

불행에 빠진 사람이 비로소 도덕적이 되듯

산을 통해 비로소 인간에 접근하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전문적인 산의 접근을 경계한다.

산을 오르는 어떠한 방법론도

산행이 지니는 이런 본질에 우선할 수없다.

 

 

 

 

 

무너지지 않으려 기를 쓰며 껴안고 있는

진딧물처럼 만물상을 이룬 바위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다.

 

사람이 모여 세상을 만들듯

바위들도 마찬가지다.

 

오늘 비로소 울산 바위의 진면목을 본다.

거친 속살의 바위다.

 

저 멀리서 상아빛 주걱처럼 보이던 一石의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다.

거칠면서 순수하고

다양하면서도 통일된 모습.

 

울산바위는 설악의 대문 바위로서의 멋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직하의 위용을 오를 때는 몰랐는데

아득한 계단 아래를 내려다 보니 바위의 장엄함이 새삼스럽다.

 

끊임 없이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격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조마조마함을 억누르며 롤러코스트를 타는 기분으로 산을 내려간다.

 

내가 처음 울산 바위에 올랐던 지난 날.

나는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경험이 일천했던 지난 날 나는 어떤 비유로

감탄을 꾸며냈을지가 궁금하다.

 

 

 

 

바위 사이로 수줍게 이어지는 철 계단이

아침 햇살에 빛을 순화시켜

花蛇의 비늘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이른 아침이 아니면 볼수 없는 아름다운 빛이다.

그 美光의 축복을 카펫처럼 밟으며 우리는 하산했다.

 

계단 너머로 아직 익지 않은 가을이 정원수처럼 가지른히 놓여있다.

산 하나를 두고 천불동 계곡과 여기의 가을이 확연히 다르다.

 

도수 낮은 소주처럼

가을의 뒷맛이 멀뚱했다.

 

 

 

산 너머 너머의 가을도 아직 이르다.

대청봉의 가을만 성미가 급한 걸까.

 

방송에서는 연일 하강하는 단풍 소식을 전하기 급급한데

여기 울산 바위의 가을은 산위에도 아래에도

조미료만 가득한 밥집의 나물처럼 그저 그렇다.

 

산 너머

또 그 너머에는 정말 가을이 왔을까

행복을 찾는 파랑새처럼 단풍을 찾고 있다.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고대도시 페트라를 상상하며

계단을 내려간다.

 

 은은한 아침 햇살에 난반사하는 화강암의 아이보리빛이

경건하고 단아한 느낌으로 결속된다.

아침이 차분하다.

 

거대한 바위 기둥이 주는 역사적 이미지.

한없이 흘러내리는 인파가 주는 시간적 인상.

이 두 이미지가 묘하게 조화된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통해 어린시절을 좇아가듯

긴 계단과 석주의 추억이 나를 잠시 과거로 되돌려 놓았다.

 

학창 시절의 기억은 아주 깡그리 사라졌거나

잘못 각인된것이었다.

 

나는 낡고 잘못된 기억의 흔적을  사십여년을 지니고 살아온것이다.

기억이 계곡물처럼

먼 과거로 재빨리 헤엄쳐 갔다.

 

멀리 일망무제 속초 앞바다를 바라보며

소년이었던 나는 무엇을 꿈꾸었을까?

 

인생에 대한 꿈도

건축가의 희망도

지금은 크로아상의 하찮은 껍질처럼

나로부터 떨어져나갔다.

 

옛추억으로의 귀환이

그동안 일상적인 삶을 내가 얼마나 어리석게 살아왔던가를

상기시켰다.

 

내 삶의 편력을,어리석음을

관조한다.

나는 이미 외로운 노송이 되어버린 걸까.

 

 

 

 

 

 

 

북한산 백운대 모습의 달마봉이

기지개를 켜며 아침을 맞는다.

 

 

 

 

 

 

 

 

 

 

 

 

 

 

 

찾는다고해서 찾아지는것이 가을인가

가을은 행복과는 다르다.

 

어느결에 다가와 세상을 적신다.

늘있는것이 아니라

불식간에 스며들듯 찾아 온다.

 

행복은 느끼는 순간 커져가는것이지만

가을은 느끼는 순간 소멸된다.

 

가을은 신기루이고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사랑이다.

 

떨구고 흩어지며 사라진다.

그래서 가을은 노스텔지아다.

 

 

 

 

 

어디를 가야할지도 모르면서

좀 싱거운 산행을 아침 일찍 마무리하고

흔들바위를 지나 하산 한다.

 

예나 지금이나 허풍스러운 모습으로 바위 위에 공깃돌처럼 바위 하나가 얹혀져있을 뿐이다.

시끄럽기만 한 계조암의 바위 동굴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산행이 끝나버린 심통을 기껏 희미한 추억 위에 분풀이 하듯 쏟아내었다.

흔들릴리 없는 바위를 흔들어 보는 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한다.

다음번 울산 바위를 찾을 때도 똑같은 짓을 하고말 내 자신이 우스꽝스럽다.

사람이란 본시 이런거다.

 

 

 

 

 

계획이 변경되어

다시 달마봉으로 가게되었다.

 

달마봉 등로를 일방통로로 만들어 목우제에서 사람들을 입장 시키기 시작하였다.

달마봉 트레킹은 일년에 꼭 한번만 있는 행사이다.

이 날만 달마봉이 개방된다.

 

우리는 일단 달마봉까지 가서

다시 되돌아와 신흥사로 하산할 예정이었다.

 

달마봉 가는 길에 부산에서 같이 올라 온

울타리 산악회와 통일 산악회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은 일찌감치 이 코스를 택해 벌써 달마봉에 갔다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우리 산사랑 산악회 회원들도 있었다.

 

산중에서의 만남은 훨씬 각별했다.

이 넓은 땅, 그 수많은 산중에

하필 이 길에서 조우하게 되다니

산중의 인연이란 이런것이다.

 

확율의 문제가 아니다.

인연이다.

 

 

 

 

 

달마봉 가다 만난 울산바위의 모습.

 

발톱처럼 정겹고

면류관처럼 장엄하다.

 

그 당당한 모습에 마음을 이미 빼앗겨

고개돌려 산길을 나아갈 수 없다.

 

행여 더 고운 모습을 담을새라 쉴사이 없이 셔터를 누르건만

뿌연 대기의 심술로 좀처럼 맑은 모습이 담기지 않는다.

애쓴 공이 아깝지만 天氣를 내가 어찌하겠는가.

 

 

 

 

 

멀리서 보면 열두폭 치마처럼 그리움이 여실하다.

견줄수 없는 상아빛 고아함이 하늘에 가식이 없는 바로크의 음악처럼 걸려있다.

 

 당당한 위풍

비할데 없이 단아한 귀품.

 

눈을 뜨며 마시는 시원한 아침 공기처럼

폐장에 상쾌함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산 너머 계곡에는 물기를 듬뿍 머금은 단풍이 절정이라는데

여기서 보는 설악의 단풍은 아직 성글기만 하다.

 

외경이 허접하다.

설악의 외경을 허접하다고 말해버리는 내 오만은 어디서 나온걸까.

 

산은 스스로를 증명하려는듯

흔듯 흔듯

드러내고 싶지 않는 알몸을 은근히 내비쳐

이따금 본디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뭄에  방울 방울 떨어지는 비처럼 풍경이 간절하다.

 

 

 

 

먼 발치

아니 그다지 멀지는 않은 곳에서

멀어지는 울산바위를 바라보는것은

달의 지평에서 지구를 바라보는것만큼

신비롭다.

 

혹은 우주에 외로이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마음에 비치는 자연의 관능적 아름다움.

나 자신의 내면에 떠오르는 유미주의의 결정.

새벽달의 인상.

그런 느낌의 바위 하나를 보았다.

 

 

 

 

말간 민낯의 아름다움은

저런 순수함이 주는 감동을 말한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진주 도립병원 앞 콩나물 해장국이 생각났다.

 

공보의 시절 밤늦게 노름을 하고

담배 연기에 까슬해진 혓바닥과 목구멍을 축이며

한모금 한모금 조심스레 떠넘기던

그 맑고 깔끔한 맛.

 

그런 맑은 맛이 우러나오는 풍경이었다.

 

 

 

 

 

 

 

 

중년의 머리에 반백이 어울리듯

극성스럽지 않은 은은한 단풍이 바위와 어울리며

산정을 적시고 있다.

 

어우러지는 것은 단지 단풍만이 아니라

백악의 바위며

푸른 하늘, 한을 머금은 구름이다.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면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경쾌함이 가을의 애조 띤 서정과 어울리며

서서히 짙은 커피향의 미쟝센을 만들어낸다.

 

가을산은 종합 예술이다.

 

 

 

 

아름다운 네 그루의 소나무

 

 

 

 

 달마봉을 오르며 만난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인 풍경이다.

 

 

 

 

 

 

 

 

 

 

 

 

 

 

 

 

 

산의 흐름과 그 물결 사이로 교차되는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교차점을 보는듯 하다.

 

끊임 없이 사라지고 변화하는 삭막한 시간 속에서

영원한 그 무엇이 우리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어둠 속에 흘러 들어 좌초한 우리의 불우한 시절.

그 각박함의 미로에  숨어있는

불꽃같은 추억을 음미하듯 또 먼 산 하나를 마음에 두게 된다.

 

 

 

 

 

 

 

 

 

 

 

 

 

 

 

 

 

 

 

 

 

 

 

설악산 달마봉

635m

 

 

 

 

 

망각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순수한 기억인지 모르겠다.

 

잊혀져 이미 바스락거리는 낙엽처럼 말라버린 무의식들이

산길 한 고비를 넘을 때마다 기억을 새삼스레 되살리며 살린다.

 

놀라운 경험이다.

 

붉은 낙엽과 울산바위의 백악이

천불동을,

 

천물동이 오대산 노인봉의 소금강 계곡을,

그 말라버린 계곡물이

고향 장안사의 가을을,

장안사의 느린 풍경의 흔들거림이 아버지의 기억을,

나는 도무지 얼마나 많은 기억들을 이 산 꼭대기에 풀어놓고 가야만 할까.

 

기억이 기억의 홍수를 이루며

산정을 가득 메운다.

 

시간은 나를 파괴하고

기억은 나를 회생 시킨다.

 

나는 생과 멸의 대척점에서

소용돌이치는 회오리 바람처럼

혼란에 빠졌으나

그것은 즐거운 혼란이었고

아직 파괴되지 않은 나의 일부를 되찾아가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달마봉의 정상부

 

등반을 허락한들 누가 저기에 오르고 싶으랴

 

 

 

 

 

달마봉 아래에서

아무른 감흥이 없음.

 

오르고

마침내 오른다는것이 오늘은 아무른 의미가 없다.

올랐을 때의 벅참이 차압당한 기분이었다.

 

설악 공룡을 지나갈 때의 느낌 그대로다.

걸음의 유장함은 있으되

성취의 극적인 감흥이 없는

밋밋하게 탄산이 빠진듯한 싱거운 맛이다.

 

 

 

 

 

 

 

 

 

 

 

 

 

 

 

 

 

 

 

 

 

멋대가리라고는 없는 민대머리

 

 

 

 

blue moon의 은근한 모습

 

 

 

 

산의 속살을 들여다 보면 볼수록

어찌할수 없는 가을이다.

 

세상은 이미 가을인지라

공부 잘하는 아이가 한번 잘못 본 시험으로 책망 받을 수 없듯

설악산을 책망해서는 안된다.

 

나는 재작년인가

천불동에서

 한이 스린 가을 단풍을 보았다.

 

그날 대청봉에는 첫눈이 내렸다.

그렇게 서리 머금은 단풍빛이 진짜 단풍이다.

 

세상의 부화뇌동에 귀기울일 필요가 없다.

나는 오늘 은근히 달아오르는 취한 얼굴의 설악을 본다.

 

기분좋은 얼굴

은근한 수줍음의 붉은 빛.

 

무지개의 스팩트럼처럼

나는 오늘 가을 단풍의 한 면모를 보고 가는것으로 그만이다.

 

 

 

 

토끼의 두 귀처럼 쫑긋하게 보이는

달마봉.

 

 

 

 

 

 

 

 

 

 

 

 

 

 

 

화채능선

 

신비한 화채능선

금단의 구역.

 

그래도 기어이 들어서는 자가 있기에

그들이 얄미울정도로 부러운

능선.

 

오늘은 아예 휴점을 한 가게처럼

그 앞 모습이 쓸쓸하다.

 

 

 

 

 

아내에게 미안하다

아내에게는 견디기 벅찬 긴 길이었다.

 

아내에게 미안하지 않다.

나는 그녀에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원소를 심어주었다.

 

원망도,뜻밖의 경험도

강열할수록 깊은 기억으로 남는 법이다.

 

그녀는 그녀의 힘으로

포기하지 않고 길을 걸어 오늘 산행을 완성하였다

 

그녀의 역사다.

더 고마운것은 동시에 우리의 역사이기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인상은 두겹이다.

 

 절반은 꽃이요.

다른 하나는 줄기요 뿌리다.

 

세상의 얼굴인 꽃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않는다.

보이는것이 전부이니까.

 

세상의 또 다른 절반인 줄기와 뿌리는 마음으로 연장되어있다.

이 마음이야 말로 세상을 조화롭고 풍요롭게 만드는 두뇌이다.

 

나에게 산행은 세상의 반을

사려 깊게 바라보게 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진정한 실체란 비록 우리가 알지못하는 사이에 죽어버릴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그 또한 순전히 우리 삶이기도 하다.

 

이 절반의 세상을 알지못하고

사는데 급급하다면

이야말로 삶으로부터의 도피인 셈이다.

 

산에 오른다는것은

세상을 떠난것이 아니라

삶으로 비로소 귀화하는 과정이다.

 

 

 

 

 

 

- 후 기-

 

 

산을 오르는것은

진실로 산을 오르는것은

유혹인 동시에 고통이다.

 

내가 공들여 산을 오르는것에대한

객관적 믿음조차 버려야한다.

 

산을 오르는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포옹하고 입맞추고

 깊이 깊이 사랑하는것과 같다.

 

산을 꿰뚫어 이해하는것은

섹스가 끝난 후의 일이다.

 

 

 

 

 

 

Humoresque Op.101 No.7 / Dvor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