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티마을 주막에서 주적거리며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모처럼 시간을 마련해 나선 산행길인데 비가 온다.
그냥 오다말 가을비가 아니라 쏟아붓듯 내리는 큰 근심의 비다.
화명동 거리에는 이미 비가 넘쳤다.
재작년 설악산 산행이 그랬고
작년 동기회 산행 때도 그랬다.
이 늦은 가을에 하필이면 이런 모진 비가 내릴까!
내일이면 비가 그친다는 일기예보에 희망을 걸었다.
은티마을 그 유명한 주막 이층에 마련된 숙소에서
준비해 둔 백숙을 데워먹었다.
금새 숙소가 따뜻해져 온다.
하룻밤 머물 곳 치고는 손색이 없다.
방을 빼곡 메운 낙서에 내 낙서를 보탠다.
"다음번엔 백두대간이다"
내 희망이 그렇다는거다.

붉은색 길을 이탈없이 따라 걸음
만원짜리 숙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머리 속에서 음악이 밤새 맴돌았다.
한곡이 끝날 때 마다
새로운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음악에 따라붙었다.
바깥에 나가니 비는 이미 그쳤고
마을을 지키는 큰 키의 나무는 낟가리처럼 비를 물고 서있다가
잔 바람이 불적마다 부스스 몸을 털어
물기를 날리고 있었다
비거스렁이에 몸이 싸늘해 왔다.
비안개가 덩이를 이루며 지나가는 모양으로
금새 정신이 수정처럼 맑아졌다.
그렇게 잠을 보내고 새벽닭이 울 때까지 물소리를 벗삼으며 밤을 지샜다.
5시에 일어나 주막에서 준비해 준 버섯찌게로 아침을 먹고
산행에 나섰다.
어둠속에서 초입을 찾지 못해 잠시 고생했지만
그 뒤부터는 별 어려움이 없는 외길이었다.
산길은 지난 비에 물이 넘쳐 길과 개울의 구별이 없었고
악휘산- 마분봉 갈림길을 지나자 비로소 가파른 산길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제일 먼저 얼굴을 내민것은 이웃한
구왕봉과 희양산이었다.
어스름에 드러난 모습은
그냥 범부의 인상 그대로였다.
저 질박하고 결곡한 산세 중에
어찌해 나를 그토록 강하게사로잡는
알싸한 매력이 잠재되어있을까?
그 열정의 답을 구하기위해
나는 전인미답의 새벽 산길을 뚫는다.
말똥바위 능선
산고개 하나를 넘자
또 하나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색동처럼 단풍을 입은 산 줄기 하나가
설익은 새벽 안개 속을 떠다녔다.
마치 열성을 다하여 그린 그림처럼
그 은근한 빛이 더할 나위없이 아름다왔다.
부지런한 자를 위한 성찬같았다.
어제밤 불면이 가져 온 몽롱함을 일시에 날려버릴
현묘한 기분이었다.
마음이 소년처럼 들떴다.
마법의 성
마법의 성이라 적힌 소나무 아래에 서니
정말 칼날같은 능선 위에 내가 서 있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흰 화강암이 성곽처럼 봉우리를 둘러 쌓고 있는 마분봉이 보인다.
흡사 이곳에서 마법의 성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정말 잘 짜여진 오밀조밀한 구성의 산길이다.
명품 소나무에 의해
경치가 더 발하는 마분봉
산이 입을 막고 울었다
작은 손을 벗어난 소리들은
비맞은 나뭇잎처럼 구슬펐다.
산은 그렇게 울 줄을 알기에
낙엽은 마른잎인채 말라간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슬픔으로
가을은 그렇게 간다.
이렇게 온 몸으로 가을은 앓고있다.
그 깊고 깊은 상처들을
가을은 제 스스로 치유하는 셈이다.
아무도 없는 등산길을 선도하며
소리내지 않으리라 아무리 조심해도
사각거리는 발자국이 다 세어나오는 가을의 울음 소리만 같다.
마분봉
"열정으로 살아가는 자가 행복하다면
지금 나는 행복하다네.
그것이 광기라하여도 상관없네.
나는 마음의 키만큼 내 행복을 맞춘다네.
그러니 나를 내버려 두게.
나는 달라지고 싶지 않아
내 행복에 맞추어 키를 늘릴테야."
희양산과 구왕봉
아침이 밝아 올수록
마치 순수시처럼 한방울의 눈물조차 방해 할 수없는
맑은 빛이 숲 뿐만 아니라 내 마음마져 맑게했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발걸음을 통해
나는 내 내부에 도사린 무서운 야만과 관성에 목숨을건 투쟁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을 부정하고 조롱한것에 대한 응분의 과보일까.
내 영혼은 바람에 걸린 현수막처럼 어수선했다.
세상을 부정한것도
세상의 섭리에 순종한것도
다 내 잘못인걸까.
이 거대한 혼돈 속에
아침은 마음을 다독이는 위로같았다.
말똥바위에 비가 묻으면 연풍 사람들은
비설거지를 한다고 한다.
연풍지역의 비는 늘 이곳에서 시작된다.
산이 우뚝하여 비구름이 머물기 쉬운 모양이다.
오늘은 어제의 그 가당찮은 비구름 다 걷히고
산들은 맹랑할 정도로 해맑다.
은총처럼 하늘에서 빛이 내린다.
새날의 풋기운이다.
저 빛나는 씨줄로 세상은 새로와 진다.
기적처럼 세상이 깨어났고
우리는 비로소 불순함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해방의 세레모니는 요란하고 화려하였다.
불꽃처럼 산중에 빛이 살아났다.
베토벤의 7번 교향곡같았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아침에는 운명이란것이 없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듯
바위 위에 또 밧줄 하나가 달랑거리며 내려온다.
복잡한 인생을 풀어보라는 하늘의 계시같았다.
밧줄타기에 이미 이골이 난 일행들은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밧줄을 잡고 암벽을 기어오른다.
수없이 오르내리는 절벽.
이 구간 산행의 특징이다.
마분봉 UFO바위
지금에야 UFO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영락없이 말똥이라 불렀음직하다.
아침
마침내 빛이 우리를 찾아내었다.
아침이었다.
하얀 화광암에 금빛의 아침이 입혀졌다.
잠자리의 날개처럼 빛은 가벼웠다.
잠시 접어 둔 여유의 시간을 더듬어
오늘을 채색한다.
칙칙한 밤그림자는 이미 저만치 물러났다.
조금씩 조여가는 조리개처럼
오늘이 선명해진다.
그 아침에 나를 새겨 넣는다.
몇 고개를 넘었을까
별로 험해보이지 않던 능선이 톱니처럼
요철이 심하다.
그래도 젊은이들을 선도해하는 산행이어서인지
즐겁되 지치지는않는다.
오르는 길이 신명나고
내려서는 길이 또한 즐겁다.
좇기지 않는 산행.
느긋한 아침.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말잔등처럼 부드러운 능선 위로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오매 단풍 들겠네"
누이의 마음은 나를 보고있을까
하나는 미국으로
또 하나는 서울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누이.
수줍게 내려앉은 햇살 아래
아련히 빛을 우려내는 단풍이
누이를 향한 그윽한 그리움을 끌어낸다.
개암나무처럼 그리움이 쌔록하다.
문득
산행은 行에서 시작해 心으로 끝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맑고 따사로운 아침 햇살
골붉은 단풍잎이 마음에 날아들었나 보다.
빛들이 지난날의 사랑으로 계곡을 가득 채웠다.
인간의 가슴은 피로 가득한 고랑이라는
희랍의 글귀가 생각났다.
세상을 떠나 버린
내가 사랑한 모든 사람들은
기억의 고랑에 몸을 던져 피를 마시며 소생한다.
그 붉은 피처럼 산비탈은 처연한 단풍빛이 가득했다.
아침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이 아침 나는 그리움 중에서도 가장 선명한 그리움으로 꿈을 꾼듯하다.
마분봉 정상 근처에는 멋진 소나무 아래 말똥처럼 바위 몇개가
늘려있어 누가 봐도 영락없이 신선들이 바둑이나 두고 놀았음직한
명당으로 보인다.
설마 이를 두고 馬糞峰이라 불렀을까.
바위야 보기에 따라서는 다 말똥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아무턴 산중에 주인없는 정자처럼
너무나 태평스럽고 농밀한 평화가 깃던 풍경이어서인지
자꾸 눈이 가게된다.
바람에 휩쓸린 구름이 끊임없이 제 모습을 바꾸어 가는것처럼
산의 면모 또한 바뀌어 갔다.
오늘 나는 또 새로운 모습의 산 하나를 대면한다.
껍질을 깨고 태어난 새처럼
한방울의 물이되어 대해에 떨어진 기분이들었다.
길을 마감해야한다는
새로운 열망이 가슴을 달구었다.
해가 어둠을 찢고 나오듯
나는 또 다른 세상으로 막 들어설 모양이었다.
삼형제봉
마분봉과 악휘봉을 가르는 안부다.
시대를 이어주는 전설처럼 길위에 시간의 느낌이 완연하다.
이미 깊은 가을이었다.
완숙한 과일에서나 맡을수 있는
농밀한 달콤함이 느껴졌다.
감탄을 묘사할 상상력이 쇄락한 탓에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으로 표현되지 못한 채
길 위에 마냥 머물렀다.
그런 아쉬음을 대변하는듯
낙엽 앉은 벤취가 나를 대신해 세월을 은유했다.
은티재에서
나무의자에 내려 앉은 가을
마분봉의 뾰족한 봉우리가
부더러운 능선위에 생뚱스럽게 솟아있다
그래서 말똥같다는 불명예를 얻었나보다.
이편 능선에서 건너 편 능선을 바라보는 재미가
위험이나 죄악에서 멀어진것처럼
마음을 가볍게했다.
서둘것도 안달할것도 없는
충실한 심장의 리듬.
그 자유의 心音이 들린다.
유리산누에나방고치
참 엉뚱한 녀석이다.
왜 이녀석은 초록색을 보호색으로 택하였을까
잎이 떨어지거나
세상이 온통 붉고 노란 색들로 가득한 이 때
초록처럼 눈에 잘 띄는 색깔로 위장하다니
행여 요놈도 모르고 지나치는 이들이 있을까.
힘차게 걸어 온 능선길
악휘봉 지킴이 선바위
이 바위 덕에 산 아래 입석마을 지명이 생겼을까?
내가 가야할 산은 저 멀리 서쪽에 있는데
남녘의 산들이 나를 또 꼬득인다.
저 늠름한 능선길은 또 왜 입산 금지인가.
금단의 능선 멀리 문장대가 수줍게 걸려있다.
산들의 파도가 몰려다닌다.
밀려오는 파도를 나는 피하려 하지 않고 다 맞았다.
산들의 파도에 몸이 흥근하고
마음이 또한 촉촉했다.
진정한 행복이란
이처럼 젖는 기분을 느끼는 것일게다.
야망도 無요
성취도 無다.
야망이 없으면서도
무언가에 흠뻑빠진듯한 이 오묘한 느낌이야말로
행복의 진수가 아닌가.
아련히 떠오르는 속리산 능선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그래도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것.
산을 사랑하되 산에 주눅들지않는것.
산을 오로지 行을 위한 경전으로 사랑하는것.
태양을 머리에 이고 양팔에 산을 끼고 걷는것.
많이 생각하고 적게 고민하는것.
나의 신념.
마분봉 너머 저 끝으로 조령산이 운무에 가려 희미하게 보인다
산길은 참 공정하다.
돈으로 산길을 열 수 없다.
산길을 열기위한 렛슨도 필요 없다.
진정한 산길의 열쇠는 자신의 마음에 속에있다.
마음이 곧 길임을
나는 이번 산길을 걸으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남으로 이어지는 능선 끝자락이 속리산 문장대이다
악휘봉 너머로 더디어 보배산의 모습이 보인다
악휘봉 지나 대슬랩
대슬랩구간을 올라서면 또 하나 밧줄이 기다리고있다.
악휘봉의 뒷모습
악희봉으로 부터 마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가다 물었다
이 봉이 시루봉입니까?
약간 머뭇거리던 사람은 호주머니에서 지도를
펴 보더니
"네 시루봉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일치하면
사실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사실로 굳어져 버리고만다.
허술한 지도와 거짓정보가 만들어 낸 허위
산길에서 제일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시루봉: 덕가산-칠보산 갈림길에서
마침내 칠보산을 향하여 서쪽으로 길을 틀었다.
얼마나 반가왔던 서쪽 땅인가.
문제의 발단은 시루봉이었다.
악휘산 너머 봉우리를 두개 넘자 북으로 시그날이 여럿 걸려있었고
서쪽으로도 시그날이 두개 붙어있었다.
덕가산은 북쪽에 있으니 우리는 당연히 칠보산이 마주보이는
서쪽으로 향해 나아갔지만 어이없게 길은 사라지고(처음부터 없는 길이지만 시그날을 믿은게 잘못이다.)
난데없이 벼랑이 나타났다.
어쩔도리가 없이
지금 우리 일행이 있는 곳이 시루봉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종종걸음을 치며 걸었다.
마침내 갈림길 표지판이 나타났다.
안도의 한숨도 잠깐
우리는
단숨에 칠보산을 향해 미끄러운 낙엽길을 달려나갔다.
발아래를 미끄럽게 하는것은 낙엽이었지만
그냥 밟고 지나가기에 아까울 정도로 낙엽은 고왔다.
알록 달록 아름다운 단풍잎이 자꾸 발걸음을 잡는다.
유혹이다.
생의 마지막 뉘앙스가 이처럼 아름답다면
아예 죽음 앞에 마음을 놓아버리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아름답고 예쁜 여자들을 향한 곁눈질이 허락되듯
아름다운 광경에 시간을 빼앗겼다고
누가 이 느리디 느린 산행을 탓할 수 있으랴
희양산
유혹의 본좌 희양산.
사실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이 희양산에서 비롯되었다.
장성봉에서 그랬고, 대야산에서도 그랬다.
열망의 단초요, 그리움의 시원이었다.
697봉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는 와중에
마치 해가 지지않는 동쪽 하늘에서 우연히 발견한 낮달처럼
동쪽 하늘에 희양산이 복스럽게 떠올랐다.
마치 희망의 빛같기도 하거니와
열망의 화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금강처럼 견고한 바위가 백련처럼 아름다왔다.
흉중에 숨겨둔채
두고 두고 사모하는 옛애인처럼 친근해 보였다.
697봉 가는 길에서
칠보산 주인처럼 서 있는 소나무를 만났다.
봉을 하나 넘으면 될 줄 알았는데
산은 다가가면 달아나는 연인처럼 또 한발자국 멀어진다.
입산 금지의 팻말을 보고서야 마침내 칠보산에 다다른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편하고 여유있는 표정이련만
우리만 마치 뭐에 홀린듯 바삐 걸어왔다.
목적지를 눈 앞에 두자
긴장감이 일시에 풀려 내렸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칠보산은 눈 앞에 한치 흐트름없이 딱 서있는데
스위스로 탈출하기 위해
알프스를 오르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트랩 일가처럼
나도 사력을 다해 마지막 산을 올랐다.
칠보산 정상에서 첫 단체 사진
칠보산은 산행을 위한 산이라기 보다
공원같다는 인상을 더 많이 받았다.
인공미가 가해질수록,
인간과 더 친밀해 질수록 더 그런맛이 강해지고
자연의 신성함은 빛을 잃는다.
앞서 지나간 영산들의 위력에 가려
괴산 칠보산의 매력은 물에 풀어 논 한지처럼 맥이 없어 보였다.
엉금 엉금 기듯 계단을 오른다.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얼른 사진 한장 찍고 하산길을 재촉한다.
보배산과 멀리 군자산
보배산과 군자산을 마주보며
청석고개에서 문수암 골을 향해 내려간다
오늘 산행의 대미를 장식하듯
멋진 자태를 뽐내며 응원군처럼 산들이 도열해있다.
걸음이 바빠졌다.
산중에서 노닥거린 시간이 너무 길었나보다.
하산길은 순탄했다.
긴 산행에 무릎이 약간 아팠지만 참을만했다.
멋진 산행에 걸맞는 피로였다.
마침내 큰 안도감이 몰려왔다.
문수암골 하산길
神들은 우리를 위해
특별한 방식으로 만찬을 준비해 주었다.
오색의 단풍이 샹들리에처럼 하오의 해살에 화사하게 빛났다.
잎새 하나 하나에 등불을 밝혀 놓은듯
계곡은 황홀했다.
꿈결같았다.
대지는 어쩌면 인간의 심장과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있는건지
부란덴부르그 협주곡이 흐르는듯
개울물은 정교한 화성을 이루며 흘렀다.
고향집 뒤란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수미 상응처럼 시작과 끝이 다 좋았다.
인생을 깡그리 소진하고
빈털털이가 되어 돌아온 탕아를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고향집처럼
오색의 단풍길은 편안했다.
그 부드러운 위로로 인해
대지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느껴졌다.
세상이 베푼 기대만큼 나는 善해 진것일까?
계곡을 비추는 신성한 불빛만큼
세상을 따사롭게 데울 수 있을까?
"웃으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것이다
울으라
너 혼자만 울것이다."
엘라 휠러 콕스의 고독처럼
오늘은 나 혼자만의 슬픔으로 울고 싶다.
그것은
환희의 눈물일지도 모른다.
입을 막고 소리 죽여가며 우는 울음이 아니라
누구엔가 내 슬픔을 알려주고 싶은 울음.
그 울음처럼 가을은 생의 마지막 빛으로 빛났다.
내가 소망하고
간절히 열망한 바를 이루었기에
그 기쁨이 말할 수 없이 크다.
그 기쁨을 이루어낸 공백 뒤로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새로운 꿈을 향한 재촉같기도 했다.
선한 산들이 거북의 눈처럼 아른거렸지만
구체적이지는 않았다.
희망이 곧 길이다,
나는 갈망한다
또 새로운 산들을.
가을이 물든 강물 위로
시커먼 소문과 온갖 잡념들이
돌무더기처럼 무성하다.
그리고 그 위로 또 비리디 비린 바람이 지나다닌다.
산행이 아무리 삶을 순수하게 치장하여도
세상은 그 뜻을 수용할 채비가 되어있지않다.
거꾸로 걸어가듯
세상을 살아볼까.
오늘의 고생이 덜 위선적인 삶의 담보였으면 좋겠다.
세상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나는 오로지
남으로 향한 문만을 열어두겠다.
큰 산이 듬직하게 보일것이다.
- 후 기-
좁은 고통의 통로를 지나듯
나 혼자였던 삶.
술잔을 곁들이니 오늘따라 새롭다.
홀로 마시는 한탄의 술처럼
고독이 병이되어 마음의 문을 닫아 걸 때면
나는 걷는다.
걷고 또 걷고 싶다.
그렇게 시작한 오늘의 산행
이제야 능선 아득한 언저리에
자기 연민에 매몰되어가는 내가 보인다.
내가 나를 구하러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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