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큰비를 만나 사진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이제 잔비에도 지레 겁을 먹고 내 완소 카메라를 집에 모셔두고 온것이
끝끝내 후회되었다.
세컨 카메라 라이카는 명성만큼 화려함과 선예함을 담아내지 못한다.
요즘은 훨씬 더 재주가 많은 카메라가 나와 내 지름신을 자극하는데
조강지처를 섬기는 일념으로 똑딱이라도 들고 나왔다.
사진을 찍는 기분이 왠지 시큰둥하다.
무르익은 가을 풍경에 물빛이 내려 농밀함을 더 하는가운데
시간의 소실점을 향해 서서히 걸어가는 한 때.
사진이 좋지 않아 참 미안합니다.
학창 시절이었다면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하게되네요.
다음번엔
꼭 진료실에 걸어둘만한 사진을 찍어드릴께요^^*
"병구는 참 장가 잘들었다."
사모님들의 관록
anti-aging
부석사 배흘림 기둥을 바라보듯
쩍벌남
여~서 보이 태가나네 ㅋㅋ
우수한 DNA의 부부
설악산 천불동에서 찍은 사진이라 우기고 싶은 풍경이었습니다.
백운산
"좋습니다"
세월의 무상함을 가장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이
단체 사진입니다.
왕년은 잊어버리고 오늘을 즐깁시다.
카르페 디엠
12시 55분 발 로프웨이를 기다리며.
무슨 사정인지 개장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케이불카 운행을 내일부터 중단한다네요.
타임이 절묘하지요.
날짜를 미루었다면 케이블카도 못타볼뻔 했습니다.
자 올라갑니다.
오르는 중에 변득스러운 비바람이 마중을 나옵니다.
오리무중으로 주위는 온통 비구름 뿐.
개성 넘치는 승무원의 안내 멘트를 들어며
8분만에 1000m급의 산에 쉽게 올랐네요.
일행은 케이블카에서 내려 비옷을 꺼내 입습니다.
바깥에는 심술난 비바람이 아주 성질 사나운 아이처럼
제멋대로 붑니다.
이런 환경에 익숙치 않은 분이라면 당연히 당혹스러웠을겁니다.
비바람에 익숙한 저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아무것도 내 놓을게 없는
궁색한 살림을 들켜버린 신혼 부부처럼
회색구름 말고는 아무것도 보여드릴께 없었습니다.
하지만 보이는것이 없다고 하여
느끼는 바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산행이란 새로운 느낌을 이끌어 내는것입니다.
인절미를 천천히 씹을 때처럼
그렇게 느낌을 즐기는것입니다.
일행을 선도해 샘물 산장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몇달 사이에 데크가 꾸며지고
산길이 많이 정비되었네요.
길이 편해 걷기에는 큰 불편이 없을거라 생각하고 걸어 나갔는데
뒤따라 오시는 분들에겐 내 발걸음이 좀 빨랐나 봅니다.
궂은 날이라 아무래도 감상할 풍경이 없어서인지
다들 걸음이 빨라집니다.
우리 일행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갑자기 비가 퍼부어 맞추어 새롭게 계획을 짜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아무래도 진행이 일사분란하지 못합니다.
산행 중에는 늘 남들 뒤 따라가며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나 올려 놓던 내 실상을 모르시는 분들이라
눈을 멀뚱 멀뚱 뜨고 나늘 쳐다봅니다.
비를 감안해도 한시간이면 족할 거리인데도
정상 도전을 하시겠다는 분이 몇 되지 않아
억지로 사람들을 불러모아 15명을 채웠습니다.
샘물 상회에는 예상한바 대로
비를 피해 들어 온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그래도 새로 들어서는 사람들 보다는 배낭을 챙겨 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을것 같아
내심 막걸리나 마시고 오뎅이나 드시며
한시간만 시간 보내주신다면
얼른 천왕산에 다녀와 함께 하산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나무 때는 냄새,막걸리 냄새,땀 냄새등등이
뒤섞인 난생 처음 맡아보실 퀴퀴한 악취를 견디시기에는 아무래도 힘드셨는지
오래 버티시지를 못하고
남은 일행들은 임도를 통해 하산하셨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산정에 오른 우리 일행을 기다린것은
거친 비바람이었습니다.
이런 자연의 훼방이야말로
우정을 결속시키는데는 그저 그만입니다.
준비해간 막걸리를 너나없이 한모금씩 마십니다.
바람소리에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입니다.
똑딱이를 잡고 있는 내 몸이 흔들거립니다.
이런 기막힌 장면을 흐린 촛점으로 망쳐놓을 수 없다는 일념에
두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잔뜩 움추리며
셔터에 손가락을 그야말로 살며시 갖다댑니다.
이 한장의 사진
wuthering height을 상기시키는 그 얼씨년스러운 바람 속에서도
이렇게 웃음을 잃지않는 강한 결속을 보고
나는 자랑스럽게 이 사진을 올해 내가 찍은 최고의 사진으로 뽑습니다.
볼수록 재미있고 자랑스러운 모습이네요.
길이 길이 기억될 추억의 한장면입니다.
올라오는데 35분
내려가는데 25분
딱 한시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가지는 힘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무정하고 냉혹하지요.
한시간의 고생을 감내한자의 감동이 이러했답니다.
삶이 진작 이런것인 줄 알았다면
내 청춘도 더 눈부신것이 되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샘물 상회로 돌아오니 장내가 정돈되고
가게를 떠나는 몇몇 사람만 남아있었습니다.
냉기를 녹이는데는 오뎅 국물만 한게 있나요.
비는 그쳤고
사방은 조용합니다.
일행들은 오뎅을 먹으며 술잔을 기울입니다.
먼저 하산해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해
너무 오래 여유를 부릴 수는 없습니다.
임도를 따라 우리도 서둘러 하산합니다.
함께 불도를 닦는 벗을 도반이라고 합니다.
불도를 닦는것은 아니지만
의업의 길로 나아가는 벗이기에 도반이라 하여도 무방할것입니다.
나는 한 도반을 샘플링하여 그들 뒤를 따라갑니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이
발걸음을 통해 느껴집니다.
상상의 재미란 이런거지요.
들리지는 않아도 이야기를 같이 듣는 기분이 드니까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철봉 이 친구는 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참 반듯합니다.
발걸음 조차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 진흙탕 길을 걸었는데
마치 바지 끝이 마른 운동장을 걸은것처럼 깨끗합니다.
걸음걸이 하나 하나가
새댁 발걸음처럼 조신해 보입니다.
그러나 조심스럽다하여
서투르다는뜻이 아니라
고수가 쓴 글은 날려쓴 글임에도 흐트러짐이 없듯
한걸음 한걸음에 허트러짐이 없습니다.
반면 윤석환군의 걸음은 그의 모토인 정면돌파 정신답게
과연 씩씩합니다.
걸음걸이로만 따지자면 한쌍의 남녀같습니다.
도반의 발걸음은 모름지기 이래야만 한다.
제가 뒤에서 걸어가기를 좋아하는것도
이런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 여러분이 걸어오신 바로 그 모습이겠지요.
후미들도 다 내려가고.
참 변덕스러운 날씨였네요
하산길에 파란 하늘은 피멍처럼 선연히 드러나고
산들은 설거지를 마친듯 개운한 얼굴을 내밉니다.
간월산 신불산 능축산의 능선이 우련하게 떠오릅니다.
길을 가다 일행을 멈추어 세웁니다.
제가 주고 싶은 마지막 선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남 알프스 여러 산길을 오르내리며
내가 벗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지요.
먼저 하산하신 분들을 기다리게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잠시만의 시간이라도 좋으니 꼭 그풍경을 주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비가 그치고 구름도 걷혀
어쩌면 산들을 바라볼 수 있겠다싶어
나는 가방을 지키고 가벼운 마음으로 얼른 다녀 오라했습니다.
다녀 온 일행들은 어떤 산을 보았을까요.
만족스러운 풍경은 아니었겠지만
꼭 마음에 드는 풍경이었으면 좋겠네요.
우리가 다녀온 천왕봉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마 이날 날씨가 맑았다면 누구 할것없이
다 저 산을 올랐을것입니다.
양산에서 개업하고 있는 이병구 동기는 삶의 터전이되는 자기 뒷동네 산이 많이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저기 정면에 보이는 산이 간월산이고 간월산 너머가 신불산입니다.
신불산 우측 초가지붕같은 산이 영축산,바로 통도사의 거주지가 되는 산이지요.
가령 영축산 통도사처럼 말입니다.
그 옆으로 죽바우등 시살등을 품은 영축 지맥의 능선이 이어집니다.
내년 가을 억새 무성한 가을날에는 꼭 이병구 동기 내외와 저 길을 걷고 싶네요.
그때는 꼭 멋진 사진 찍어 드리겠습니다.
백운산 너머 운문산이 보이고 그 너머로 억산과 구만산에 이르는
운문지맥의 제산들이 이어집니다.
가지산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그 뒤가 운문산입니다.
이처럼 능동산에서 재약산에 이르는 능선은
영축 지맥과 운문 지맥의 가운데 위치해
마치 학익진처럼 학이 양 나래를 활짝 펴고 나는 모습을 이루고 있습니다.
산에 올라 양팔을 벌리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마치 마음이 새와 같고 구름과 같고 바람만 같은
그런 묘한 평화가 느껴집니다.
한시간 반의 시간에 맞춰 하산했습니다.
나상 동기는 이제야 내 말에 믿음이 간다고 했습니다.
내가 오늘 오신 분들께 뭔가 산행에 베테랑같은 아우라를 주었을까요.
사실 저는 전혀 산을 잘 타지 못하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상대적이긴 하겠지요.
산을 좋아하는것과 산을 살 타는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오히려 저는 산을 빨리 타는 사람들을 별 달가와 하지 않습니다.
산에 왔으면 산을 즐길 일이지 빨리 내려가서 어쩌자는 겁니까
오늘 산행이 산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해서 산을 탓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산은 처음부터 우리를 초청한 바 없으니까요.
그래도 산을 즐기지 못한만큼 더 값진 우정을 나누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그 목표를 위해 산을 차용한것에 불과하니까요.
올라야할 산은 많고
기회는 또 얼마던지 있습니다.
느긋한 산꾼이야말로 좋은 산을 즐길 수 있습니다.
내년 가을에는 정말 맑은 산, 맑은 하늘에 처연히 걸린 구름 한번 봅시다.
감사합니다.
다음 산행이 벌써 기다려 지내요.
Adagio for Oboe, Cello, Organ and Strings
Pierre Pierlot, Oboe
Anne- Marie Beckensteiner, Organ
Bernard Fonteny, Cello
Jean-Fransois Paillard, Cond / Orchestre de Chamb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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