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에 청도는 언제나 풍요의 상징이었다.
넉넉하고,알차며 윤기나는 모태의 흙내음이 가득한 가나안과도 같은 땅이었다.
그것은 아마 찰기가 흐르는 청도 쌀과 풍성하고 달콤했던 과일의 기억에 연유한 것일 것이다.
산님들이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기어이 비는 내리고 만다.
나는 마치 최면에 걸린듯 그들의 뒤를 밟고있다.
그 들의 뒷꿈치를 줄기차게 뒤따르며 나는 다짐한다.
아득하면 되리라!
빗속의 우의가 이채롭다.
비오는 숲을 걷는다.
숲에는 오직 나 자신이 만들어 내는 발자국 소리,빗방울 소리,그리고 나의 거친 호흡음이 있을 뿐이다.
저 깊은 숲속 심연에 빨려 들수록 나는 도마뱀처럼 조금씩 나를 잘라낸다.
숨이 목 끝에서 거칠다.
일행은 이미 아득히 먼 곳에 있는듯 하다.
나는 마침내 길을 잃는다.
귓전에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0번이 줄곧 나를 괴롭힌다.
느리디 느린 안단티노의 2악장.
고독하고 쓸쓸한 순례자가 황폐하고 적막한 거리를 걷고 있는듯한 멜로디.
그러나 나의 무겁디 무거운 걸음은 안단티노 마져 놓치고 만다.
멀리서 걱정스레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의 외침은 숲속 어딘가에서 맥없이 사라진다.
그들은 내 소리를 듣지 못한다.
나는 매번 오기로 산을 오른다.
쉰을 넘어 맛들이기 시작한 산행의 즐거움은 내 심장과 다리의 부실함을 보상하지 못했다.
그 부족함을 오히려 내 머리 속 오기가 대신했다.
나의 매 한 걸음은 고통과 극기의 연속이다.
나는 줄넘기를 하듯 목 끝까지 차오른 숨과 다리의 통증들을 뛰어 넘는다.
언젠가는 이 지긋 지긋한 고통들로 부터 자유로와 질것이다. 이 얼마나 달콤한 착각인가.
오르막이 길수록 발 밑에서 모질게 통증들이 차오른다.
산님들이 한가로이 산채를 뜯고 있다.
산길을 걷노라면 정말 아는 것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러나 나같은 아둔패기들에게는 보는것 만큼 보인다는 말도 사실이다.
그래서 산길을 걷는 나는 채워지지않는 앎의 욕구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매번 산행 마다 정상에 올랐다.
채 몇번 되지 않는 산행 경력을 고려할 때 이것은 오만이고 욕심이다.
이 나의 오만과 욕심이 얼마나 동행들에게 피해를 줄 지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겸손해야한다. 이것이 나의 소중한 산방님들께 빨리 다가가는 왕도이다.
이렇게 산은 매번 나를 가르치고 고행의 함정에 빠트리지만 산정에 서는 나의 마음은 가볍기만하다.
이것이 섭리이다.
나무의 역사성과 원시적인 힘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목 근처에 신채를 짇고 나무에 줄을 감아 치성을 드린다.
연극 에쿠우스를 보면 사물에 신성을 부과하는것이 인간의 오랜 습성이었음을 알수 있다.
산중에 만나는오래된 나무에서 역시 묘한 신성을 느낀다.
언젠가 나도 배병우를 뛰어 넘는 소나무를 찍고 싶다.
구름이 걷히자 멀리 산 아래 기적과도 같이 소박한 마을이 드러났다.
있는것과 없는것.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것.
결국 그것은 앎과 지혜의 차이이다.
무거움의 관념들을 버리니 문득 몸과 마음이 가벼워 진다.
시야가 시원하고 한가하다.
나무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숲에 서면 나무의 시간들이 켜켜히 내몸속에 쌓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의 유장함은 결국 오욕에 물든 육신을 정화할 것이다.
善業을 향한 정갈한 마음이야말로 숲을 걷는 자의 의무인 것이다.
카펫을 밟는것처럼 발 아래가 순하고 평화롭다.
기린초
이름 모를 버섯.
사물에 無名을 붙이는 것은 사물을 바라보는자의 올바른 습관이 되지 못한다.
모르는 것과 더불어 그것을 알려 애써는 가운데 앎의 역량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은 지혜의 도량이다.
(뒷날 다시 보니 목이버섯이네요^^*)
두꺼비. 이전에는 두꺼비는 소주의 상징이었다.
그 흔한 두꺼비도 이제는 보호종이 되었다.
산 신령의 화신인지 인기측에도 도망을 가지 않는 대담함을 보인다.
개망초에 둘러 쌓인 앤디 대장의 모습이 사춘기 소년같다.
사진을 찍는 그 순간 그의 마음도 그리 순수 하였으리라.
산중에 나를 찾던 급박한 마음들은 이미 식었을까.
나는 사진을 찍으며 그에게, 그와 동행들에게송구함을 표현한다.
나를 보고 세상을 수월하게 산다고 해도 할말은 없다.
나는 골치를 썩이기위해 산행을 하는것은 아니니까.
그래 다왔다.
불과 여섯 시간 전의 그 아득함이 마침내 이루어진것이다.
미친소!
광기와 적의가 가득한 세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과실은 조용히 익어간다.
풍진을 빗겨 서 있는 지금의 내 현실은 일순 얼마나 다행인가.
이 풍요를 안고 나는 인욕의 세상으로 회귀한다.
꿈을 꾸듯 청도는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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