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화악산 후기1

poll™ 2008. 12. 16. 10:31

 

산을 향해 떠나는 아침.

서편으로 저무는 둥근 달을 만난다.

구름에 모습을 가린 달의 모습이 무척 서정적이다.

날씨가 포근해 정상에서 맞고 싶은

귀를 시리게 하는 알싸한 겨울 바람은 만나지 못할 것 같다.

운이 좋으면, 아주 운이 좋으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떠올릴만한

벌거벗은 나목이라도 한그루 만났으면 한다.

 

 

 

 

낙엽진 숲길이 참 따뜻합니다.

일행들이 무수히 밟고 지나간 길 위에는

한 줌 흐트러짐없이 그림자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변하는것 위에

변하지 아니하는 무채색의 무게가

인생의 무게만큼 진중하게 느껴집니다.

 

 

 

 

삼면봉 우측으로 한재 고개가 뚜렷이 보입니다.

청도와 밀양을 넘나드는 교통의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 산 너머 청도 남산이 있을것입니다.

남산은 나에게 뼈저린 아픔을 안겨준 기억이 있읍니다.

그 추억이 너무도 깊이 각인되어

그 후 모든 산행의 좋은 전범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나를 찾아 산골짝을 울리던 그 외침들이 귀 에 선 합니다.

 

 

 

길에는 왠지 모를 외로움 같은것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길이 주는  깊은 삶의 현장감 때문일것입니다.

저 차마고도나,실크로드 하물며 골목길에 이르기까지

길은 곧 삶이요, 인생입니다.

 

저 길을 지나 다녔을 무수한 나그네들의 이미지에

어느듯 내 이미지가 오브랩되어

그들이 가던 길을 내가 걷고 있다는

가벼운 환상에 빠집니다.

 

 

 

 

 

 

 

 

 

 

 

 

 

 

겨울이 오면 벌써 봄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래서 겨울은 불임의 상징이 아니라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휴지기입니다.

차가운 겨울이 뼈에 사무칠수록

세상의 모든 추락하는것에

날개를 달고 싶은 이상이 있듯

더 따듯한 봄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밤티재.

 

 

 

삼면봉 너머 멀리 영남 알프스의 제산들을 설핏 보입니다.

지난 여름 저 산, 저 능선 위에 얼마나 많은

땀을 퍼붓고 다녔을까요.

한 해를 지나 온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대견해 합니다.

눈 앞에 바라보이는 온갖 산들이 다 포근하고

어미처럼 포근해 보입니다.

 

 

병풍처럼 쳐진 봉수대 능선 뒤로

운문산, 가지산,간월산 신불산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영축정맥이 죽 드러나 보입니다.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산을 조망하기에 너무도 좋은 날씨를 만난것 같습니다.

파도치듯 달려오는 산들의 너울에

내 가슴에도 만조의 큰 파도가 일렁입니다.

 

 

 

산 너머 머나먼 곳에 행복이 있다고 말하더라

 

행복이 있어야 할 재너머를 보니

첩첩 산중이네요.

쉰을 넘어서자 돌아 보아야 할 지난 세월이 너무도 깊고 멀어

이제 부득이 다시 앞만 보며 걷게 됩니다.

 

 

내 나이

 

좋은것과 나쁜것의 차이가 희미해지고

육체의 열망이 가라앉으며

정리와 포기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내 나이,

내가 나를 깨우지 않으면

아무도 잠던 나를 깨워 주지않아

그대로 길섶 어딘가에서 얼어 죽어 버릴것 같은 내 나이.

 

움직이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미련한 부활을 꿈꾸는것도 사실 내 나이입니다.

 

 

 

 

 

 

50대란 참 위험한 시기이구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얼핏 듭니다.

삶을 견딜만큼 견디고 나서야

비로소 거울 앞에선 나.

 

삶이란 것을 몸서리치게 체험한 남자들의

상처에서 내비치는 자기 성찰이야 말로

온전한 詩가 아닐까요?

 

 

 

간결한 몇 줄의 진실에서 오는 깊고도 긴 울림.

숨겨온 상처를 스스로 치료할 수 밖에 없는 절대 고독.

 

 

 

 그래서 나는 산길을 50대가 주는 절대고독에 비유하기를 좋아합니다.

그 간결하고 정돈된 의미들을

말이 아닌 느낌으로 얻어갑니다.

남 모를곳에 홀로 남아

제 상처를 제 혀로 햝아 치유하는 재생의 과정을 겪고나면

그렇게 힘들게 고통에서 벗어나게되면,

과연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는것일까요?

 

 

 

 

삶이 곧 처방이자,기도문이요,위로와 넋두리가 되어야한다는

현실에서,

그토록 신앙처럼 믿었던 가정과 직장의 허울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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