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사 랑 -
봉화산 꼬부랑재 지나 광대치 가는 길에
조팝나무 향기가 좋아
길을 멈추어 섭니다.
구름에 가린 둥근 해는
무심한 하늘 위에
열쇠처럼 걸려있습니다.
너울처럼 길고 긴 길 봄바람에 풀려나와
가문 꽃들은 무리져 몸을 떨구는데
붉은 상처인 채 산은 시들어
해묵은 사랑이 쓸쓸합니다.
봄은 과연 봄인지라
어디서 왔는지
영글지 못한 사랑 하나가 꽃잎처럼 날아듭니다.
모든 사랑의 시작은
다 미완성이기에,
이룰 수 없는것이기에
내 첫사랑 또한
익지 못한 영혼처럼 떠돕니다.
낯선 길 중에는
그리움인것이 넘쳐
되새김한 기억들로 발 아래에 가득한데
나는 여전히
잠 못드는 새처럼 하늘을 넘나들다
어린 사랑 하나 이렇게 떠나보냅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 그대를 두고
삭지 않은 상처를 어루만지듯
그렇게 또 떠나 보냅니다.
한때의 사랑이 영원을 담보할 수 없는 까닭에
그대는 이미 봄 향기이기에...
꼬부랑재 너머 광대치 그늘까지
나는 오늘 검은 열쇠 구멍 속을
그렇게 미친듯 떠돌았나 봅니다.
봄이 들썩인다.
오월은 세상을 길들이지 못했다.
먼 하늘의 새가
하나의 티끌에 불과하듯
생을 다만 움직임 속에 버려둬라.
그냥 둬라.
가슴을 찢으며 들어오는
세상의 온갖 의심들은
그저 봄바람이다.
으름
노랑 솜방이 (풀솜나물)
홀아비 꽃대
- 후 기 -
세상의 모든 말러리안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아는 말러의 음악들은
너무 길고,시끄럽고,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러가 사람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의 음악 속에는
화해와 구원의 진지한 메시지가 녹아있기 때문일것이다.
오늘 산길이 꼭 그렇다
길고 시끄럽고 복잡했다.
말러가 떠올랐지만
말러의 편견들이 생각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꽃가뭄이 들어서인지 꽃은 미쳐 피지도 못하고 지고있었다.
지난 주 나를 황홓하게 했던 조팝나무는
향기조차 남기지 않고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지고 만것이 아니라
흔적없이 녹색으로 녹아들어 버린것이다.
꽃이 없다고 산을 나무랄수는 없다.
봉화산 산길은 꽃보다 더 포근한 숲을 가졌으니까.
나는 자궁에서 자라나는 태아처럼
포근한 숲길을 헤쳐나오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며 자라나는 그 무엇인가를 느꼈다.
그것은 괴로움 속에서도 늘 당당한 자유였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내 본연의 것.
그냥 길이어도 좋을 봉화산 종주길을
이 크다란 자각과 함께 한 멋진 하루였다.
01.Flying to the Moon / Utada Hik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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