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속리산 : 문장대-천왕봉

poll™ 2011. 6. 20. 09:54

 

 

 

속리산 화북 분소 들머리

 

 

 

역설적이게도

정말 역설적이게도 말이지

에메랄드빛의 태양 아래를 걷는다는 것이

내게는 지극한 슬픔 이었다네.

 

딱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도 아닐것이야

내 내면을 흐르는 검은 강물과도 같은 쓸쓸함이

잘 익은 스테이크가 토해내는 육즙처럼

세상 밖으로 여과없이 드러날 때의 느낌.

우울과 분열이 뒤섞인 불편한 꽉 막힘.

그런 기분이었어.

 

 

 

 

 

문장대 쪽 하늘

 

 

속리산 문장대를 세번 오르면 극락에도 갈 수 있다는데

나는 중학교 수학여행 때 문장대에 오르지 못한 뼈저린 한이 있어

오늘은 기어이 문장대에  올라 볼 생각이다.

 

破邪顯正의 적덕없이 극락을 논하기는 좀 민망하지만

죽어서 간다는 극락이야 어짜피 身後의 문제.

나는 살아 생전  老軀가 허락하는 한

이산 저산 세상을 극락 삼아 周遊하련다.

 

극락을 알리는  靑明의 하늘 아래

멀리 수미산 처럼 문장대가 자리 잡고 있다.

 

 

 

 

길가다 조망 좋은 바위에 올라

 

 

 

 

잘 박힌 알심처럼 묵직한 바위들이

초록의 신록 사이에 위엄있게 박혀있다.

 

속리산의 인상은 무어랄까

설악산이 보여주는 장쾌함도 없고

한라산에서 느끼는 무한정의 포근함이나 평화스러움 같은것도 없다.

 

신앙으로 다가오는 둔중한 지리산의 위엄과도 거리가 먼것 같고

굳이 비유하자면

남도의 산하에서 우연히 만나는

화사하고 시원한 느낌의 악산 정도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냥 길을 걷다 지근의 친구집을 잠시 들러는듯한 그런 느낌의 산이다.

 

 

 

 

 

 

 

 

 

 

 

문장대 1054m

 

 

세조께서 꿈을 좇아 이 문장대에 오르셔서

책을 한권 발견하시고는

하루 종일 삼강 오륜을 읽으셨다고하여

지어진 이름이 문장대라는데

그 책 어디에도 아마

왕도를 위해 조카를 殺한 정의는 없었던 모양이다.

 

진종일 책을 읽다 낙심하고 하산했을

세조 임금의 뒷그림자가 얼핏 떠오른다.

 

 독서로 소일하기에는 너무 밝다는 흠결이 있긴하지만

 일상을 풍진처럼 날려보내기에는 더 없이 명당이 아닐까.

 

 

 

 

 

문장대에서 바라보는 풍경

 

문장대에 오르니 비로소 산세가 가늠된다.

산비탈을 가득메운 빛좋은 화강암들이

악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기를 쓰고 산을 덮은 6월의 수목이

풍경을 뜨겁게 달군다.

등뒤에서 연신 타고 내리던 땀이 문장대 바람에 시원히 말라간다.

 

別有天地의 山中에

有人間의 거추장스러움이 넘쳐난다.

 

 

 

 

문장대를 이룬 바위덩어리

 

 

말없는 바위가,

온통 푸르기만 한 하늘이

공연한 우울을 가져왔다.

 

다 잘된 일에 마가 끼듯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에 마음이 편치 않다.

 

왠 쓸쓸함일까?

주저앉고 싶은 자유도 빼았긴 채

바삐 발길을 돌려야하는것이 이유인가.

 

마치 돌이킬수 없는 기억이 되어버린듯

풍경에 쓸쓸함이 가득 베어있다.

 

티없이 맑은 가을 하늘이 노스텔지아를  토해내듯

한치 숨김없는 뜨거운 햇살이

감출수 없는 슬픔을 만들었다.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

 

 

 

문장대 서쪽의 전경

 

 

 

 

속리산 아래 증항이라는 곳은

남사고 선생이 말하는 이 나라 10대 길처라는데

상주와 보은이 만나는 저 아래 어디인지 싶다.

상스러운 푸른빛이

세상을 은은하게 감싼듯 보인다.

세상이 온통  吉處이다.

 

 

 

 

 

세속을 떠나왔건만

근심은 오늘 따라 왜 날 이렇게 괴롭힐까.

 

가슴이 횃질을 하는 수탁처럼 요동친다.

세월을 따라 나날이 빠져가는 이 음산한 무기력.

 

나는 맑은 물속을 헤엄치는 산천어처럼

뜨거워진 대기속을 죽을 힘을 다해 헤쳐간다.

 

낮게 꺼져가는 변성퇴적암의 자취를 따라

마음이 한없이 가라 앉는다.

 

그러다

풀무질을 하듯 다시 오기가 살아나

나는 또 미친듯 산을 오르내린다.

내 무기력에대한 저항일지도 모르겠다.

 

세월은 쇠를 녹인다는데

그 관용의 세월은 지금 어느 골짜기에 있는걸까.

나는 이미

마음에 끌려다니는 지친 소다.

 

 

 

 

관음봉

 

관음봉 너머 좌측 묘봉 우측 상학봉 능선

 

 

 

 

 

신선대-비로봉-천왕봉

 

 

 

 

맨 좌측 부터

 

칠형제봉-문수봉-신선대-비로봉-천왕봉

 

 

 

 

 

 

오늘 가야할 천왕봉이 선명히 보인다.

그러나 천왕봉이 오늘 산행의 끝은 아니다

길고 긴 내리막이 우리를 기다릴 터이니

큰산의 하행길은 언제나 갚을 날이 다되가는 빚과 같다.

 

무릎과 발목에 끔찍한 통증을 가져다 줄게 뻔하다.

나는 오늘 산길을 그런대로 잘 걷고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 한없이 위로받고 싶은 어린 마음을 쉽게 숨길 수가 없다.

마치 생의 마지막 산행인것처럼

아니 그것을 암시라도 하는것처럼

산행에 속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다 농밀한 유월의 햇살때문이다.

 

 

 

 

 

 

 

 

 

 

 

 

 

 

俗離

 

세속을 멀리한 산

.

그 이름을 떠올리게하는 두터운 산들의 회오리.

내 마음도 이 산처럼 깊이 격리되어 버렸으면.

 

이름 없이 떠있는 섬처럼

그 무엇으로 부터도 놓여났으면...

 

쫓기지 않는 걸음이었으면...

 

아프지 않은 다리였으면..

 

편한 숨결이었으면...

 

애초에 갈 곳조차 없었다면..

 

 

 

원숭이를 닮은 바위

 

 

 

 

곳곳에 기암 괴석을 품은 속리산.

천왕봉 가는 길은 오르내림이 심해 여름 등산객을 많이 괴롭힌다.

 

나는 잘 도배되지 않은 벽지 처럼

지상으로부터 들떠있다.

 

발걸음이 어지럽다

모래같은 마사 위를

해빙의 얼음판을 지나듯 걷는다.

 

이런 내가  한심해서 또 서럽다.

몸도 마음도 심란하다.

 

 

 

 

비로봉 고개

 

천왕봉이 손에 잡힐듯 가까와 졌다.

 

 

 

 

 

 

 

좌측 끝 관음봉, 그다음 젖꼭지처럼 튀어오른 곳이 문장대

 

 

 

 

 

속리산 제일봉 천왕봉

1058m

 

마침내 천왕봉

 

 

물이 말라버린 계곡

 

 

 

뜨거운 하산길

 

 

 

개망초

 

 

 

 

 

 

 

 

고려중엽의 장각동 7층 석탑

 

2층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올린 정형적인 고려탑이다.

고려탑은 수직적인 상승에 주안을 둔 나머지

신라 삼층탑이 주는 비례적 안정감이 떨어진다.

단출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탑이다.

푸른 하늘에 높고 큰 마리아 칼라스의 소프라노가 흐른다.

 

 

 

아무도 없는데

홀로 익어가는 앵두.

 

 

 

장각동 종점

 

- 후 기-

 

문장대에 올라

그대 떠나 보내고 왔네.

 

푸른 하늘에 저 혼자 떠다니는 구름처럼

그리 살라하고 왔네.

 

미움을 보낸것이 아니라

다시 볼 날 있으리라  기약하며

달을 보내듯

그냥  보내고 돌아왔네.

 

그대를 두기에

내 마음이 너무 좁아

그냥 달처럼 멀리두고 살기로 했네.

 

산처럼

구름처럼

그저 바라보며 살기로 했네.

 

 

 

 

 

Isao Sasaki - Ophe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