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오름 산악회 100차 산행
단양 도락산
도락산의 道樂이란 산이름이 참 마음에 든다.
깨닫음에는 길이 있어야하고
그기에는 필수적으로 즐거움(樂)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라는데
아침 나절 시작한 일에 저녁무렵까지
시간을 잊은 채 파묻혀 보는일.
체력에 자신을 맏긴채
무한정 길을 걸어보는 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에 열중하는것.
이것이야 말로 道樂이 아닐까.
모란꽃들의 단체 사진
모란이 질 모양이다
붉은 꽃잎도
황금의 꽃술도 안녕.
모래 위에서 파닥이다 죽은
새끼 까치복처럼
그렇게
그렇게
사라질 모양이다.
오늘은 그대를 떠나 멀리
월악산 자락인 도락산을 오릅니다.
흰 상아빛 바위들이 초여름의 햇살을 머금어
벌써 뜨거워진 열기를 쏟아냅니다.
그런데 산을 얼마 오르지 않아
오늘의 산행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합니다.
지난주 설악산을 오르고 난 후의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겁니다.
큰 산을 타고난 후의 자만심이
도락산 산행을 얕 본 탓입니다.
다리가 후달거리고
가슴은 무겁기만합니다.
몇발자국을 옮기지지도 못하고
또 맥을 놓고 쉬기를 반복합니다.
3kg이나되는 카메라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미끄러운 바위길에 몸을 밀착시켜 옮겨놓기가 힘들어
자꾸 미끌어지는 다리를
나무를 잡은 손으로 겨우 지지하여
한발 한발 산을오릅니다.
사랑하는 이여
붉은 가지의 소나무 아래에서
또 휴식을 취합니다.
얻어먹은 오이를 질겅거리며 씹다
한 때는 나의 희망이었던 산그림자가
마치 나를 집어 삼켜버려라는 명령을 받은
어마 어마한 파도로 변해
쓰나미처럼 근심을 뿌려 놓고 갑니다.
사방의 푸른빛 위에
강렬한 햇살의 덧칠이 이어져
가벼운 현기증을 만들어 냅니다.
가득한 태양이
에메랄드빛의 푸른눈을 떠올립니다.
검은 여백들이 상상의 틈새를 막아 섭니다.
정말 덥습니다.
씀바귀의 단체 사진
세상 만물의 본성이 희미해지고
지식만이 난무하는 가운데
내가 정성을 다해 지키고자하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요함입니다.
고요함이란
제 본성인 마음을 바라보는 장치입니다.
꽃이 죽고
나비가 죽고
본성이 사라진 우주에는
소비적이고 경량화한 플라스틱의 물질들로 넘칩니다.
나는 세상을 도망쳐
산을 오릅니다.
산행은 이처럼 경량화된
시선과 감성을
녹여내는 과정입니다.
빠른 맥박
거친 호흡
서서히 다가오는 근육의 긴장과 고통.
이 모두를 본질로 되돌리는 과정입니다.
느슨하게 풀어진 태엽을 되감듯
플라스틱처럼 굳어진 심성을
본연의 상태로 녹여내는것입니다.
고요로의 회귀입니다.
신선봉
내 꿈이 쓰러진 자리에
또 희망의 새싹이 돋아나옵니다.
내가 다시 꿈꿀 수 있는것은
이 희망을,
희망의 새삭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끝이나도
길은 계속되는법.
나는 그 희망의 끝을 쥐고
길을 걷습니다.
길이 곧 희망입니다.
신선봉으로 올라가는 삼거리에서
나는 유혹과 조우합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내 스스로 산행을 포기한것은
딱 한번밖에 없었습니다.
요로 결석이 나를 괴롭힌 다음 날이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끌고 산에 오른것이 화근이었던 것입니다.
그날 나는 귀욤나무 아래에 누워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너가 포기한 것이 산이냐고
나는 대답했습니다
나 스스로라고.
나 스스로를 포기한 것이라고.
그 후로부터 나는 산을 오르는 하루를 위해
일주일 중 육일을 조심해야했습니다.
그리고 산은 더 경건하고
신성스러운곳이 되었습니다.
그대여
내가 혼신을 다해 산을 오르는것 같아도
늘 그런것은 아닙니다.
물론 나를 완전히 소모시킬 만큼
자신을 exhaustion시킬 때도 있지만
대게는 즐기듯 산을 오르는것입니다.
오늘 후미에 쳐져 걷는
호젓한 산길이 그러하였으므로
잘은 몰라도 사랑도 그러리라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하여
사랑에대한 나의 언행이 결코 경솔한것이거나 거짓된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되
그것이 언제나 다는 아니라는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에 나를 다하여 치열할 만큼
내 성정은 그리 적극적이지 못한 편입니다.
그렇다고하여 세상이 그리 견고하거나 팍팍한것도 아닙니다.
사랑도, 신을 향한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라한것은 초라한대로
치열한것은 치열한대로
그저 삶일 뿐입니다.
세상의 여백처럼
늘 느슨한 나.
사실 이것이 진정한 나일것입니다.
신선봉과 도락산 정상
신선봉 오르는 계단
도락산 정상
신선봉 꼭대기 너럭바위에는
조그만 샘이 있는데
이 조그만 샘은 금정산 위의 금샘이나
천관산 구룡봉 위의 샘처럼
일년 내내 사시사철 마르지 않아
무당 개구리의 집터가 되었습니다.
바위에 앉은 새벽 이슬이 모여 샘을 이룬것일까요?
저 개구리들은 대체 어디서 여기로 몰려든 것일까요?
킬리만자로의 표범같은 개구리란 생각을 하고
혼자 웃습니다.
신선봉에서
도락산 정상에서 본 시
산 경
도종환
하루종일 아무말도 안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말도 안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게 싫지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가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같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을 못되었지만
하늘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우리는
다행히
詩의 시대를 거쳐왔습니다.
도종환이 있었고
이해인이 있었고
서정윤이 있었다
내 시의 스승인 고은이 또 있었습니다.
사랑의 담론들이
詩語로 탄생된 세상은 아름다왔습니다.
시적 정화를 거친 언어들은
이슬같았고
별과같았고
비로소 느낌으로 다가오는 사랑이었습니다.
"하루종일 아무말도 안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말도 안했다."
언젠가 내가 노래한 구절
"내가 모르는 바를
산도 모른다."
산과 내가 일체감을 느꼈던 순간 떠오른 글입니다.
산중에 우연히 만난 시인의 싯귀가
내 모든 산행의 결구인듯
반가왔습니다.
우리는 또한 음악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일군의 통기타 부대는
처음으로 우리 정서에 맞는 노래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비로소 청춘의 고뇌가 노래로 불리어지기 시작한것입니다.
유재하가 있었고
김현철이 있었고
김광석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노랫말은 시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노랫말과 같은 사랑을 꿈꾸었습니다.
정치적 현실과는 반대로
사랑은 정말 기도서처럼 순수하고
간절한것이었습니다.
만삭의 배처럼 차오른 답답한 현실로부터
노래는 젊은이의 탈출구가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풍요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저당 잡힌처지였지만
가슴만은 정녕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설악 공룡을 연상시킬 만큼 부침이 심한 하산길입니다.
좁고 험한 소로를 따라 내려가는
여성 회원들의 발걸음이 위태 위태합니다.
그래도 용케 잘 진행하는 모습을 보니 발걸음에 힘을 잃은
스스로가 겸연쩍었습니다.
하산길에 본 신선봉쪽의 시원한 암벽
하산길의 위태한 암능
채운봉
암릉을 따라 난 소로를
힘겹게 오르는 등산객들이 보입니다.
도락산 끝자락에서
세상만물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것은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지향하는가를 보는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다음은 그 마음이 왜 그렇게 지향하는가를 살펴보는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의 흐름입니다.
인연이며 인과는 다 자신 속에 있는것입니다
마음이 다 그렇게 만드는것입니다.
꿈도 분별도 다 걸림인고로
그것으로 부터 벗어나기를 애쓰야 합니다
열반도 적멸도 결국 다 버려야할 거짓 방편에 불과합니다.
검봉
유달리 힘들게 오른 오늘의 도락산.
이제 나를 힘들게 여기까지 오게한 괴로움을 버릴 때입니다.
심신을 죽여 오늘 내가 얻은것은 오로지 一山일 뿐입니다.
나는 오늘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마음의 거짓 法力을 버립니다.
버리고 버려
고통도 괴로움도 내려 놓아야겠습니다.
차가운 물에 땀을 씻어내자
어느새 새로운 내가 나를 맞아 주었습니다.
이 아편과도 같은 자히르를
나는 승취라 부릅니다.
그러나 오늘만은 이 성취감조차 헛된 꿈처럼만 느껴집니다.
고통도 즐거움도
범벅처럼 뒤섞여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 혼돈을 혼돈으로 둔 채 산행을 마치려 합니다.
검봉 오르는 길
흔들 바위
그대여
나는 오늘 낡은 배를 타고 산을 올랐습니다.
간절할수록
간절한것이 다가왔고
또한 그것은 멀어졌습니다.
내 마음에 잠시 머물다간 바람처럼
머리속에 떠도는 온갖것들이
다 그런식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내 머리속에 마침내 남은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장황하게 늘려 쓴 글들도
다 생각의 껍질에 불과합니다.
내 생각에 책임이 없다는 생각이 들 무렵
하늘로 천천히 오르는 火燈처럼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쓱 그으진 자취처럼 그대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이 그림움이라면 그리움일것이고
그것이 사랑이라면 또 사랑일것입니다.
산것인지 죽은것인지
있는것인지 없는것인지의 분별조차 희미한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어쩌면 낡은 배였을지도 모를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불씨와 같은 마음들을 소중히 여깁니다.
희미한 우윳빛 유리와도 같은 이 낡은 기억들.
이 기억이야말로
도도한 세월의 흐름속에
나를 지탱시킬 유일한 힘임을 알기때문입니다.
- 후 기-
몸이 말이 아니었다.
출발부터 컨디션 난조에 빠졌다.
오기에 찬 산행이었다.
오기로 산을 오를수는 없지만
이런 종류의 산행을 내가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산행을향한 도가 넘치는 욕심이
내 육신을 괴롭힌것이다.
육신을 괴롭혀 내가 얻은것은 一山에 불과하다.
오늘 내가 얻은 교훈이다.
오 자히르
산행은 나의 자히르였다.
산은 나를 가로막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산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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