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폭포
전남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
산행 초입의 수락 폭포
水落이 폭포일진대 왜 이름을 水落이라 하였는지는 알수 없지만
봄가뭄에도 변함없는 폭포의 위용이
水落을 느끼게한다.
이른 봄 어느 골짜기 물이 저리 모여 흘러내릴까.
水樂을 경험한듯 마음이 즐겁다.
바람은 단맛이 아주 없는 자몽처럼 새콤했으나
소나무 숲은 뜻밖으로 잘 쪄낸 감자처럼 타박했다.
발아래 물기없는 감촉이
좋은 횟감처럼 감칠맛을 우려냈다.
밤나무로 에워싸인 무덤들을 지난다.
죽음의 군상 위로 봄기운이 설핏 떠다닌다.
쌀쌀함에 맞써 과용을 부릴만한 날씨는 아니지만
옷 안으로 스며드는 쌀쌀함을 견디기에 아주 좋은 바람이었다.
눈 앞에 봄풍경을 마주한다하여
세상이 다 봄이라 생각하는것은 잘못이다.
식어가는 죽처럼
봄의 중심에는 여전히 매서운 겨울의 여한이
또아리를 튼 뱀처럼 음흉히 자리잡고 있다.
삼월의 지리산 자락.
나는 사월의 지리산에서 눈바람을 맞은적도 있다.
세상은 늘 준비하는자의 것이지만
뜻밖의 상황이 만들어 내는 긴장과 수많은 변수들이
산행의 재미와 추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大鐘의 공명처럼 wuthering이 더 커진다.
나무는 이 바람 속에서도 봄을 느끼는것일까.
도무지 봄이라고는 볼 수없는 살풍경 속에서도
봄을 느낄 줄 아는 나무들의 예지가 신비롭다.
봄을 주우려는 손을 벌리다 말고
얼른 다시 집어 넣는다.
먼 산이 목신의 오후처럼 나른하다.
그 게으름을 믿지 말라는 경고처럼
바람 또한 매섭게 불어왔다.
산을 오로지 오른다.
사위가 紛紛하다.
만복대와 지리산 서북능
눈이 녹아 길은 진창을 이루고
뻘길은 다시 얼어
걸음을 위태롭게 했다.
안간힘을 쓰며 산을 오른다.
손에 잡히는 모든것들에 의지해
한걸음 한걸음 몸을 부축인다.
아내를 동반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안도감이
위험을 피해걷는 긴장만큼
간절히 머리에 맴돈다.
노고단과 코재, 종석대
솔봉과 우측 황산벌
作心을 보여주듯 바람이 불었다.
눈길은 얼음으로 몸을 포게어
제 고요를 과시했다.
새끼 손가락에 힘주어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E현 音처럼
높은 밀도의 바람이
빙어처럼 무리를 이루어 흩날린다.
귀를 닫아 그 소리로부터 도망친다.
소리가 바람을 따라다니며 시린이를 허옇게 드러낸다.
내 발자국이 앞서 걷는 이의 발자국에 더해지며
길을 흐트려 놓는다.
나무들의 봄은 언제일까.
잘못 자란 생각처럼
길이 어지럽게 휘청거렸다.
영재봉 1080m
만복대와 지리산 서북 능선
성삼재에서 작은 고리봉,만복대를 지나 정령치에 이르는 길을 걸어 본적이 있다.
그때 만복대에서 돼지수육에 막걸리를 마시며 노닥거리다
산행 대장에게 걸려 정령치까지 붙잡혀 내려왔다.
지금 생각하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재미난 사건이었다.
그후 세도치에서 바래봉에 이르는 구간을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런데 이 날의 인상이 어찌나 강렬한 것이었는지
지리산 서북능에대한 갈망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갈증이 되고 말았다.
실제 지리산 서북능은 이름 그대로의 능선길이다.
포근하고 우련하여
걷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그러나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만복대의 모습은 완전히 딴판이다.
만복대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산을 보고 또 바라보건만
가슴에는 이미 무쇠솟처럼 무겁게 산이 자리잡아
그 진중한 무게를 가늠할 길이 없다.
다름재 갈림길에서 본 지리산
반야봉-노고단-코재-장석대
태산 준령 위에서
고래를 키우듯
내 마음에 산을 키워보자.
바라만 보는 산이 아니라
자라서 큰 고래가되는
살아있는 산을 키우자.
산을 키우고 키워
어디 죽도록 한번 파묻혀 살아보자.
그렇게 푸새처럼 살다
가여운 주검이 된다한들
즐겁지 아니하랴.
지리산 만복대 봄
만복대
세상의 또 다른 측면 만복대.
그토록 부드럽고 완만한 모성의 산금도
다른 한쪽에서 바라보면
이렇게 남성적 위용으로 바뀐다.
과연
지리산의 또 다른 얼굴이요 오묘한 걸작이다.
산이란 과연 걷는자의 것인지,
아니면 바라보는 자의 것인지 도무지 혼란스럽다.
지금껏 품어온 만복대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하나의 대상을 두고 완전히 다른 면모를 가지게 된다는것은
이미 굳어져 버린 관념에 대한 도전이요
산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일종의 경이이다.
산이 가져다 준 모처럼의 심리적 해방감 때문이어서인지
산을 바라보고 걷는 내내
자유와 행복이
능선의 칼바람 만큼 후련했다.
一讀을 마친 뒤의 기분었다.
좌절 금지 만복대
만사를 제쳐두고라도
지리산 서북능을 다시 걸어야지!!
끝장 토론처럼
내 몸에 저장된 모든 에너지를 걸고
죽도록 길을 걸어야지.
지리산 서북능은 그런 길이다.
길 위의 길이다.
걷다 지쳐 짐승의 사해처럼 버려진다하여도
그만일것 같은
그런 길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마음의 문을 슬며시 열어 세상을 본다.
나는 눈이 나빠
세상을 아주 천천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는 내 마음을 믿을 수 없어
세상을 또한 오래 오래 바라보아야만 한다.
내 나쁜 눈과
내 의심많은 마음이 만나
세상을 오래 오래 바라보는 동안
내가 느낀 평화와 안도가
세상이 내게 준 사랑일까.
렌즈 너머로
갈릴리 바다빛으로 넘실대는 세상의 은혜를 보았다.
지리산 중앙역 노고단
노고단은 지리산 태극 종주의 중심이다.
나는 아직 서북능 종주를 완성하지못했고
천황봉 너머 대원사 길을 끝맺지 못했다.
미완의 숙제로 남아있다.
지리산은 큰 산이니.
세상 모든 길이 직선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롭다.
길의 기능적인 면만을 고려했다면
길은 곧게 뻗어나야한다.
그런데 산길은 늘 돌아가고 구비진다.
처음 길을 낸 사람들이 나무와 돌을 피해
길을 내었으므로
뒤따라 걷는 이들 또한 그 길을 그대로 답습하였으리라.
남해안의 공룡 발자국처럼
길은 行人이 남긴 마음의 화석인 셈이다.
오랜 세월로 인해 화석이 되어버린 발자취 위로
우리가 또한 흔적이 되어 걷고 있다.
유난히 조릿대가 많은 산이다.
무덤과 조릿대와 소나무가 많은 산길이었다.
벌채를 한듯
산등성이 한부분이 허물어지며
큰 길이 나왔다.
수직에 가까운 비탈길을 내려오는 동안
비탈에 서있었던 내 삶을 생각해 보았다.
위로를 필요로하지않는 지금의 삶.
주어진 삶에 대한 맹목적 수용 또한 재미없다.
평이한 삶
예상 문제집에서 본듯한 평이한 하루.
이런 삶에 지쳐
나는 산에 오르는걸까.
어느것도 위로가되지 않는 현실의 삶이 눈 앞에 존재한다.
지금의 내 삶은 칼등과 같다.
"사진 찍을게 없네요.'
"그렇다면 길을 한번 찍어 보시죠"
이렇게 말을 하고 보니
왜 하필 길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은 곧 삶임으로.
삶의 반영임으로.
내 삶의 반영은 과연 직선일까,
아니면 곡선일까?
직선의 삶을 보고서도
비틀거리는 오만일까.
모자를 쓴 자화상의 주인공처럼
나는 내 모습을 사진에 담기를 꺼린다.
어머니가 한사코 사진찍기를 싫어 하시는
심정을 나는 이해 한다.
금방 가련해지고 마는 사진 속 내 모습.
나는 왜 사진을 통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걸까.
내가 부정하고 싶은 것은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청춘이 씻겨져나간 내 비곤한 자아때문이다.
세월을 인정하지 않는 결사적 버팀이,그 오기가
아직도 가슴에 오롯한탓일까
나는 아직 세상의 편에 서서 나를 보듬지 못한다.
자아는 지울수 없는 무쇠다.
껌자국처럼,
새옷에 흘린 김치 국물처럼,
서녘의 초승달처럼,
한숨처럼 왔다가
돌이킬수 없는 상처로 눌러 앉은 가슴 속 채념처럼.
산동면 산수유 마을
우리나라에서 산수유꽃이 제일 먼저 핀다는 마을
집을 나오고
집을 들어서는 일이
산을 그토록 바라보는것처럼 외로운것이라는걸
나는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알게되었다.
느리게 흘러가는 구름처럼
비바람에 말라가는 들풀처럼
매일 매일 나도 모르게 변해가는것이
사실은 다 외로움이라는것을.
변화를 모른 채 변해가는것들이,
죽음을 모른 채 죽어가는 세상 모든 생명이
결국은 외로움이라는것을
산수유 저 밥알같은 꽃망울을 통해
오늘 알았다.
- 후 기-
겨울이면 눈덮힌 산을 보러,
봄이면 꽃을 보러
이산 저산 걷다가
내 마음 다독거려 글 한 줄 쓰고 싶었지만
늦바람에 아직 봄꽃이 피지 않아
가사도 없는 노래를
허밍으로 웅얼거리다 왔다.
백련사에는 동백꽃이 피었다는데
올해 피어나는 꽃인들 무어가 다르랴.
맥빠진 각설이 타령을 뒤로
꽃을 두고 돌아오는 길이
다 마시지 못한 술처럼 쓸쓸했다.
때를 맞추어
하늘에는 수성과 금성을 눈물처럼 품은
새로나온 초승달이
슬픔을 과장하며 걸려있었다.
두손에 고이 담아 온 봄 소식을
나비처럼
하늘로 날려 보낸다.
내일은 더 따뜻해진 봄을 볼것이다.
세상을 보되 제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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