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한라산 성판악 : 겨울 소나타

poll™ 2009. 1. 12. 11:37

 

 

 

 

 

 

 

눈 덮인 겨울 숲의 세계는

빛과 그 빛들의 그림자가 만드는

영묘한 선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그림자는 무엇이고 빛은 또 무엇인가?

빛도 그림자도 바람처럼 사라지는 한 순간의 꿈과 같거늘

바람이 고요한 날

가지 위에 잠든 한 조각 그 빛을 보고 싶다.

 

 

 

 

 

 

 

 

-아내와의 첫 산행-

 

 아내와의 첫 산행 길에 큰 눈이 내렸다.

처음 계획했던 영실 어리목 구간이 막혀

성판악 기점의 긴 숲길을 따라 걸을 수 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아쉬웠지만

아내의 전무한 산행 경험을 고려할 때 어쩌면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동안 아내에게 꽤 큰 빚을 지고 살아 왔다.

나의 해방은 가족의 희생 위에 자유로왔고

아내는 봄나비를 바라 보듯 자유를 향해 퍼덕이는 나를 살며시 놓아 주었다.

 

 

 

 

 적요의 세상에서

색은 허영이다.

 

빛이 사라진 세계에서

나는 또

빛을 기다린다.

 

 

 

 

 

 

 나무가 주는 관능미는 결국

線의 아름다움이다.

 

성판악 숲의 아름다움은 선과 선의 조화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에 있다.

 

선은 얼마나 고요한가.

겨울 숲에서 만나는 이 중성적 관능에

주체할 수 없는 정념이 묻어 난다.

 

 

 

 

 

 

아내를 대할 때 나는 

기차길 처럼 나란히 마주보며 살아 왔다고 생각했지만

살다보면  흔들릴 일 한 두번은 있었겠지....

문득 아내가 눈과 같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찬 눈으로 식힐 만한 격정은 없었다.

격정이 없었다고하여 무미했던 생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크랙커처럼 건조한 삶은 나 자신 부터 견디기 힘들테니까.

그래서 가정사의 無味는

질 그릇같은 투박한 맛이라 생각한다.

은근하면서도 찰진.

 

눈 속에서 들여다 보는 아내의 눈 속에서

적설과 같은 포근함이 베어있다.

나는 '눈과 같은 아내' 속에서 죽 살고 있었다.

결국 평행이 아닌 집합의 세계였다.

 

 

 

 

 

 

 

 

 

 

절제.

정결.

다 사라지고 남은것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끊어낸다는것에는 아픔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 희생이 있었기에

절제된것에는 고졸한 아름다움이 남게된다.

애잔한 침묵이 스미게 된다.

 

 

 

 

 

 굴거리 나무와 단풍나무의 군락이 희미해 지면서

멋진 삼나무 숲이 등장한다.

삼나무림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저 유명한 제주 구상나무 군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판악에서 백록담에 이르는 길은

이런 수종의 천이현상을 쉽게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변화란 내 것을 내어 주고 새것을 취한다는 것이다.

버리지 않는다면 새로운것이 어찌 더 새로와 질 수 있겠는가.

내 삶 속에는 얼마나 많은 묵은것들이

옻칠처럼 눌러 붙어

나를 과거 속에 살게했을까.

바람에 흩날리는 눈처럼  훌훌 털어버리고 가벼워 지고 싶다.

 

 

 

 

 

 

 

 

삼나무가 주는 수직의 경쾌함은 이루 형언하기 힘들 지경이다.

순백의 설원으로부터 쑥쑥 솟아 오른

이 기적같은 대지의 힘.

이 얼마나

우주의 강건함을 일깨워주는 풍경인가!

길 양편으로 높이 솟은 삼나무 길을 걷다보면

마치 갈라진 홍해 바다 속을 건너가듯

장엄함을 느낀다.

그래서 좋은 숲길은 늘 서사적이다.

 

 

 

 

 

 

 

 

눈에 늘어진 나뭇가지들이 만삭의 몸처럼 무겁다.

이 둔중함과 중력을 이기며 솟구치는

나무들의 힘 속에서

자연의 원초적 힘이 느껴진다.

눈 덮인  겨울 숲,

이 창백한 모노크롬이 주는  페이소스.

숲 저 너머로 원시림을 따라가던 시선은

풍경들을 맥없이 놓아버린다.

회색 하늘 또한 무겁디 무겁고 숲은 한 없이 깊다.

 

 

 

 

 

 

 

 길은 길을 불러 세우고

숲은 숲을 불러 모은다.

모든것이 멈춘듯 한 자리에 서 있다.

가도 가도

눈 덮인 겨울 숲은 외길이다.

 

바하의 칸타타 " 만인의 소망이신 주" 가 흘러 나올것 같은

장엄한 숲이다. 

 

 

 

 

 

 

수평과 수직의 조화.

누우려는 것과 일어서려는것의 조화.

순응과 역동의 조화.

허무와 실존의 조화.

이런 조화야 말로

 곧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아닌가.

 

 

 

 

 

 

 

 

 

 

 

 

 

 

 

 

 

숲은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숲에서는 고요함 마져도 변화한다.

숲에서는 죽은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검조차 살아있다.

숲은 생명의 완벽한 순환 고리이다.

저 깊은 눈속에서도

생명은 새록 새록 봄 꿈을 꾸고 있을것이다.

  

 

 

 

 

물이 흐르듯 길들이 흘러 든다.

끊임없이 풀어 헤쳐진 길의 끄트머리에서

발 끝에 전해지는 팽팽한 긴장감을 느낀다.

아직도 걸어야할 길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인생을 길에 비유한다는 것은 이제 진부하다.

길은 인간의 역사요,동시에 사역의 역사다.

언젠가 나도 이 지루한 사역의 고통에서 이탈해

나 혼자만의 세계로 나아가리라.

 

그 길이 외롭다 하여도 어찌할 수는 없다.

외롭거나 기쁘거나 하는 것도 다 관념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날 또한 맑으리라.

꽃피고 새 울고, 젊은이는 사랑을 나누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리라...

 

 

 

 

 

 

 

 

 

 

 

내가 혼자 우주로 내 영생의 길을 가는 날

나는 아내가 마중 나와 주기를 갈망한다.

아내와 나의 인연은 얼음이 만든 상고대처럼

복잡하긴 하겠지만 분명한것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에게 이 분명함을 더 명확히하는 삶을 살아갈것이다.

수정처럼 투명하게.

 

 

 

 

 

 눈이 내리지 않아도 가지에 쌓인 잔설들이 분분이 날린다.

싸락눈들이 이슬비에 썩여 뿌리는듯

피부에 미치는 감촉이 유달리좋다.

 

 

 

 

 

 

 

 

 

 

 

 가지를 얼린 얼음 조각들이 루미나레처럼 빛난다.

아내는 그야말로 보석처럼 빛나는 존재가 아닌가.

굵은 줄기와 눈부신 가지가 이루어낸 이 놀라운 앙상블

자연의 경이 그 자체이다.

아내와의 인연도 따지고 보면 경이로운 것이다.

인연이 경이를 빛나게 하나보다.

 

 

 

 

 

 

아내는 글감이 아니다.

그녀는 늘  아침 바다처럼 고요하다.

 아내에게도 당연히 열정이 있지 않을까.

아내의 열정은 막 고아낸 물엿같기에

더 없이 부드러워 보이는걸까

내면의 뜨거움을 애써 감추고.....

나는 아직도 이 아내의 뜨거움을 들추어낼 용기를 가지지 못한다.

내가 뜨거울 때 아내여 뜨거워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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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오른다.

오른다.

익룡이 날기 위해

지상에서 얼마나 수많은 뜀박질이 필요 하였겠나.

오르고 또 오른다면 나도 마침내 고공 높이 날 수 있을까.

나는 말한다.

나는 앞만 보며 걷지않았다고.

위를 보고

위를 향해

내 1%의 능력 조차 소진했다고.

 

 

 

 

 

 

 

 눈은 색채의 희망이요 죽음이다.

눈이 죽음에 대비되는 많은 영화와 소설 속에는

죽음은 눈처럼 아름답고 간결하여 죽음과 눈이 동질화 된다.

눈 속에 언제까지나 파묻혀 살 수가 없는것처럼

눈은 마침내 떠나가야할 운명의 네래이션이다.

그러나 순백은 반대로 희망이기도 하다.

눈 덮인 새해 첫 아침.

서설

얼마나 희망적인가.

 

나의 겨울 숲은 희망일까

그 반대일까?

나의 숲이 죽음을 지향한다해도

염세적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나의 감각은 여전히 심미적이다.

아직은 감각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부활의 소나타- 

 

 숲 속의 세상에서는 모든것이 모든것을 사랑하며

포용하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것이 조화입니다.

부드럽고 온화한 나무들의 자태에서 풍겨나오는

오묘한 정적 울림이

조화와 공존의 정신을 일깨워 줍니다.

 

 

 

 

 

 

 

 

 

 

 

 

 

 

 

 

 

 

 

 

 

 

 

 

 

 

 

 

 

 

 

 

 

 스케르쬬.

 

 

 

 

 

 

 

 

 

 

 

 

 

 

 

 

 

숲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마치 현실속에 자신이 존재할 시공간을 찾지 못했거나

마치 찾기를 열망하는 사람들 같이 보입니다.

무언가를 찾기위해 살아가야할 삶만이 성공적이라면

참 인생은 허무한 것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미치자

숲과 나 자신 사이에 놓여 있던 이 설명할 수 없는 이데아라는것이

결국 허무였음을 깨닫게됩니다. 

 

 

 

 

 

 

 -허무-

 

세상의 모든 허무는 파괴적인가.

아니면 심미적인가?

허무는 저 나무와 나무사이의 빈 공간처럼

생의 매 순간을 메우고 있는 일종의 질료이다.

허무는 삶의 배경이요, 공간과 같은 것이다.

허무의 세상이 있기에 생은 얼마나 담백한가.

생이 완결된것이라기 보다는

우연히 펼쳐진 한 페이지의 책장처럼 여겨라.

그리고 책을 읽고 천천히 책장을 넘겨라.

책장과 책장 사이가 허무이니라.

 

 

 

 

 

 

 

 

 

 

 

 

 

 

 

 

 

 허무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눈.

그 순백의 세상이 종교적이다.

나는 염세적이지 않으므로

나의 허무는 無常에 가까울 것이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듯...

허무는 결국 내 사유의 한 체계이다.

 

 

 

 

 

 

 

청결하고 싸늘한 설국의 이미지를 좇다

카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고 맙니다.

은하수가 흐르는 밤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사랑하는 여인의 주검을 마주하게 됩니다.

주인공 시마무라가 눈을 든 순간 그의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가던 은하수.

나는 불기둥과 같이 높이 솟구쳐오르는 원시의 수목을 마주하며

내 눈속으로 쏟아져 내려오는것이

다만 저 한무더기의 눈만은 아닐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져봅니다.

집에 가면 설국을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내 사랑은 이제 뜨겁지 않아도 좋습니다.

눈처럼 정결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묵은장처럼 그렇게 익은 것이었으면 합니다.

 

저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을 아내를 찾으러

종종 걸음으로 달려갑니다.

너무 늦지나 않았으면....

 

 

 

 

 

 

 

 

 

-후기- 

 

아내를 눈 속에서 다시 만난다.

눈 속에서 만난 아내의 얼굴이 어쩐지 단호하다.

이 여인은 아직 나를 더 데리고 살 작정인 모양이다.

기왕 사는 김에 한참을 더 데리고 살아줬으면 좋겠다.

아내와 내가 첫 사랑을 나눈 제주.

유채꽃 피던 봄.

지금 아내와 걷는 눈길이 봄길처럼 포근하다.

아내의 눈꽃이 서툰 바람 타고 자꾸 내 몸 위로 떨어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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