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8일
원래 이 날은 앤디의 덕유산 종주를 위해
차량 픽업을 해 주기로 한 날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 계획이 무산되자
앤디 일행은 2월에 나와 함께 가자던 태백산 산행 약속을 팽개치고
돌연 그들끼리 이번 주에 태백으로 가기로 했다고 통보를 해왔다.
물론 함께 태백산으로 가자고 청해왔으나
나는 이미 보령제약 직원과 덕유산 겨울산 출사를
약속했던터라 산행지를 바꿀 수 없는 처지였다.
새벽 6시에 출발한 차는 아직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전 진주간 고속도로에 들어섰고
간간히 내리던 빗방울은
산청이 가까와 지자 본격적으로 보슬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는 포근해 전형적인 이른 봄 날씨같았다.
"여기 비가 오면 덕유산에는 눈이 오겠지."
눈내린 덕유산을 상상했다.
산청 휴게소 지나자 차가 흔들렸다.
운전자는 바람이 세게 분다고 하였다.
하지만 차창에 비치는 풍경은 평화스러운 아침 분위기로만 느껴졌다.
경호강 4호교를 지날 때 다시 차가 요동치더니
운전자가 갑자기 앗! 하고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순간 길이 얼었음을 직감했다.
아! 겨울철 교량 위
터널 밖과 함께
겨울철 도로가 결빙되기 쉬운 지역 .
절대 감속 운전 구간!!!!
그러나 상황은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그가 급 브레이크를 밟아버린것이다.
순간 결빙된 교각 위에는
차가운 물리의 법칙만 존재하고 있었고
차는 뉴턴의 운동 법칙에 따라 질서있게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핸들 꽉 잡아! 놓치면 안돼!!" 하고 외쳤다.
육중한 쏘렌토가 핑그르르 피겨 스케이팅을 하듯 돌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어이 없게도
이번에 새로 산 150만원 짜리 24-70mm 렌즈가 장착된
내 완전 소중 카메라를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 뿐이었다.
나는 나의 완소 카메라를
격정적으로 애인을 끌어 안듯 가슴에 꼭 당겨 안았다.
이런 내가 스스로 놀라웠다.
"이 정도인가?"
"쾅!"
하고 마침내 차가 다리 난간에 부딪혔다.
아찔 했다.
바로 코앞에서 폭탄이 터진듯 했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내 머리를 피해간 기분이었다.
차는 성난 렉스처럼 벌떡 몸을 곤두 세우더니
곧 자세를 낮추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여 몸을 최대한 둥글게 말았다.
안전뻴트는 제대로 나를 동여매고 있었다.
머리도 확실히 보호되었다.
뒤집히지만 말아다오....
제발 제발.
운전석의 에어백이 터졌다.
아, 에어백은 저리 터지는구나.
그런데 내쪽 에어백은 왜 안 터지지?
쳇! 조수석 에어백은 옵션이었단 말이지.
너무 하네....
옆을 힐끔 보니
운전자의 낭패어린 얼굴 표정이 쓸쓸하다 못해 참담해 보였다.
엄청 젊은 분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잘못 같이 죄스러웠다.
부딛힌 차는 다시 핑그르르 돌며 2차 충돌지점을 향해 재빠르게 튕겨 나갔다.
" 쾅 "
2차 충돌 순간.
'"모든걸 신에게 맡깁니다."
"좀 살살 해 주세요!!!!"
"차 사고로 죽기 싫은데...."
"아침에 마누라하고 작별 인사도 못하고 나왔는데...."
"보험금, 주말 교통사고 특약"
서툰 방법으로 급조된 기도문이 인기 검색어처럼
뒤죽 박죽되어 머리 속에서 튀어나왔다.
다시 한번 차는 성난 황소처럼 "쾅"하는 소리와 함께 화끈하게 솟구쳤다.
가드 레일 뒤의 경사 끝에 얼핏 하얗게 결빙된 경호강이 보였다.
다음 순간 차는 크게 한번 원을 휘익 돌며 멈추었다.
"세상에 살았어. 살았어,끝났어"
옆좌석의 운전자가 내 안부를 물었다.
" 움직여져? "
그가 대답 대신 고개를 꺼덕였다.
낯빛이 사색이었다.
더디어 우리는 고삐 풀린 미친소로부터 벗어났다.
차 앞 머리의 파손이 심각했다.
보넷은 어르릉 거리는 개 이빨처럼 흉칙하게 일그러져있었고
차 아래로 핏물처럼 새까만 오일이 떨어져
도로 위를 기름 범벅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차는 연신 분이 풀리지 않은듯 허연 연기를 푹푹 품어내었고
차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아침에 사간 맥 모닝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정리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등산 가방을 챙겨
카메라와 함께 바깥으로 꺼집어 내 뒀다.
다행히 옆구리가 저린것 외에는 다친 곳은 없었다.
카메라도 무사했다.
운전자도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아이구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 순간.
다리 저편에서 우리 차의 사고를 보고
차량들이 급정거를 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했다.
연달아 8대의 어리석은 운전자의 차량들이 "핑글 핑글 쾅"소리를 내며
우리의 사고 차 앞으로 무습게 돌진해 왔다.
"야! 온다 온다."
우리는 혼비 백산하여
가드레일 너머로 몸을 피했다.
순식간에 도로는 차들의 공동묘지가 되어 버렸다.
참말로 아차하는 순간의 일이었다.
보험사에 사고 신고를 하는 동안
냉정을 되찾은 나는 사진기를 들고 사고 현장을 찍기 시작했다.
"어이 사진 찍는 양반 사진 그만 찍으시고 여기 와서 차 좀 치웁시다!"
라는 비난 섞인 고함 소리에
아차, 지금이 사진 찍을 상황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
그들을 거들었다.
도로는 금방 아수라 장이 되어버렸다.
고속도로 곳곳에 이런 빙판 길 사고가 발생해
출동 서비스는 완전 마비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경찰이 오고 그때서야 제설 작업 차량이 나타났다.
누구는 그자들을 원망하고 누구는 국가를 원망했다.
나는 속으로 둘 다를 원망하고 하늘을 원망했고
덕유산을 원망했다.
일행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가서 사고 경위를 이야기하고
각자 제 갈 길로 떠났다.
우리도 차를 산청 정비소에 맡기고
택시를 대절 해 진주로 갔다.
이 정신에 어떻게 다시 운전대를 잡을 엄두가 나겠나.
어짜피 산에도 못 갈 바에 맛있는 거라도 먹고 가자 싶어
유명한 진주 제일 식당으로 가 비빔밥 대신 해장국을 한 그릇씩 했다.
국은 명성에 걸 맞게 따뜻하고 담백했다.
점심으로 사가지고 간 유부 초밥을 따끈한 국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옆구리 저린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병원에 들릴까 말까 고민하다
부산 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회의 낮시간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일요일 낮시간에 내가 산에 있지 않은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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